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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용규 Apr 29. 2020

편견

2019년 5월 19일의 일기.




일요일 새벽까지 거제도 프로젝트 도면작성을 완료하고 점심이 다 되어서 잠에서 깨었다. 샤워를 하고 맥북을 챙겨서 기분전환도 할 겸 집 근처 카페에 가서 작업을 하려고 준비를 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수집 미학"이라는 책을 한 권 들고 나섰다 옷은 간편하게 검은색 무지 반팔티에 유니클로 회색 반바지를 입었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도 별로 없고 한적했다. 그렇게 터덜터덜 걸어 카페베네로 향했다.


우리 동네는 이상하게 대학교 앞인데도 불구하고 카페가 많지 않다. 개인이 운영하는 형태의 카페 3곳과 프랜차이즈인 카페베네를 합쳐 4곳이 있다. 그나마 커피 한잔 시켜놓고 눈치 보지 않고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베네를 선택하는 편이다. 커피와 인테리어 모두 내 취향에 맞지 않지만 카페 불모지인 우리 동네에서는 선택권이 별로 없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잔 주문을 하고 적당한 자리를 둘러보았다. 카페에는 이미 몇몇 손님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그들과는 좀 떨어진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기존에 있던 손님들은 책을 보거나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던 중이라 카페 안은 오로지 제목과 가사를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음악만이 가득했다. 차분히 책을 읽기에는 나에게 최적의 상태였다. 그렇게 주변을 살펴보고 있을 때 커피가 나왔다는 진동벨이 울렸다.


커피를 받아와서 호호 불어 한 모금 마신 뒤에 들고 왔던 책을 펼쳤다. "수집 미학"은 저자가 평상시에 수집한 물건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다. 그 속에서는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조금이나마 작가의 취향을 느낄 수 있으며 사물의 존재하는 이유와 의미를 담고 있다. 약간의 수집 욕구를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책이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어가며 읽다 보니 어느새 주변이 붐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미지근해진 커피를 마시고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오브제가 되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이 순간부터는 좀처럼 책에 집중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시선은 책을 향해서 글을 읽고 있는데 귀는 주변의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한 페이지를 다 읽었는데도 책 내용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주변 사람들의 대화 내용들이 생생하게 들려왔다. 평상시 주변 환경에 민감한 편은 아니지만 이날 따라 다른 사람들의 대화 소리에 관심이 갔다. 그렇게 한참을 듣고 있자니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같은 자세로 책을 읽다가 목이 뻐근해서 잠시 스트레칭을 하는 척하며 주위를 빠르게 관찰했다.


내가 앉은자리의 맞은편에는 여자 2명이 앉아 있었다. 20대 후반 정도로 되어 보였고 옷차림은 굉장히 세련되었다. 분홍색 블라우스를 입은 사람과 흰색 재킷을 입은 사람의 만남이었다. 일요일 오후 동네 깊숙한 카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아마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의 예식장을 다녀왔다거나 종교활동을 마친 후 들린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들었다. 분홍색 블라우스를 입은 사람의 얼마 전 소개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의 왼쪽 자리에는 인상이 좋으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앉아계셨다. 부부임이 틀림없는 사이로 보였다.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 정도로 예상되었다. 커피를 한잔 하시면서 누군가를 기다리시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전날 저녁 부부동반 모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어제저녁 기분이 좋은 일이 있으셨는지  모임 1차에서 한턱을 크게 내신 것 같았다. 그 일을 가지고 할머니께서는 왜 가만히 있지 나서서 돈을 쓰냐고 핀잔을 주시는 대화였다. 그렇게 한 30분 정도 후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나이는 30대 후반 정도로 되어 보였는데 어깨에 큰 카메라 가방을 들고 있었다.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지만, 그 남자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아들일까? 아니다. 아들이라면 집에서 볼 수 있다. 굳이 부모님을 카페에서 30분 동안 기다리게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고민을 하던 사이에 그 남자는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며 나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알고 보니 그 자리는 오프라인 중고거래의 순간이었다. 사진을 취미로 가지시려는 할아버지가 카메라를 중고로 구입하시며 판매자인 남자와 직접 만나 사용법 등을 여쭤보셨다. 남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남다른 애정이 있었던 카메라에 대해 남자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마지막 인사 정도로 생각되었다.


이제 다른 자리에는 어떤 사람들일까 하고 대화에 귀를 기울이려 하는 순간 갑자기 카페 문이 아주 대차게 열렸다. 머리 위로 선글라스와 한쪽 팔에 핸드백을 걸치신 분들이 들어오셨다. 느껴지지도 않는 짙은 향수의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인원수가 적지 않아서 음료 주문 전에 빈자리부터 찾으셨는데 자리가 애매했다. 하필 내 오른쪽 자리 테이블이 비었고 나만 양보해 준다면 그분들은 인원수에 맞게 앉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평상시에 카페를 자주 가는 편이라 이런 경우가 굉장히 많았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하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역시나 일행 중 한 분께서 나에게 오셔서 자리 양보를 부탁하셨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시작되었다. 그 부탁을 하시는 태도가 너무나 정중하고 매너가 있으셨다. 너무나 뜻밖이라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대략 이런 말씀이셨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저희 일행이 자리가 없어서 그러는데, 불편하시겠지만 선생님께서 양보와 배려를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이 부탁도 나에게 가까이 오셔서 허리를 살짝 굽히시고 귓속말에 가까운 작은 음성으로 하셨다. 일행분들도 다시 밖으로 나가셔서 기다리셨다. 때문에 내가 거절을 하여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렇지만 오히려 난 아주 기분 좋게 자리를 양보해 드렸고, 더욱더 정중한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 자리를 양보해 드리자 마자 일행분들은 모두 들어오시면서 나에게 눈인사로 감사 표시를 전해주셨다.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지켜 보신 카페 사장님께서는 나에게 디저트 하나를 서비스로 주셨다. 디저트를 먹으며 양보를 해드렸던 분들은 어떤 대화를 하시는지 귀를 기울였지만 조용히 말씀들을 하셔서 알아들을 수 없었다. 가사를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음악만이 흘렀다.


조금 전 나의 순간적인 예상대로라면 이 일행분들은 카페에 들어오자마자 큰 소리로 주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어야 한다. 그리고 나에게 무례하게 자리를 강요했어야 한다. 난 기분 나쁘게 자리를 뺏기듯 양보를 해줘야 한다. 끝에 가서는 일행분들의 시끄러운 소리를 견디지 못해 책을 덮고 카페를 나갔어야 한다. 다시는 이 카페에 오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나는 왜 지레짐작했으며 잠시나마 이에 따른 스트레스를 스스로 유발했을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타인들의 암묵적인 강요를 심심찮게 받아왔고, 그것을 피해라고 느꼈던 내가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인 것일까? 아니면 모든 것을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 눈에는 색안경이 써져 있었던 것일까?

예상 밖의 정중한 부탁과 감사의 표현이 아주 낯설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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