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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선 Jun 22. 2022

고장 난 시계

  너머로 옆집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작고 미세한 진동이 간지럽힌다. 그러다 화가 나서 잠이 깼다. 누워서 발로 벽을 퍽퍽 쳐댔다. 잠이  옆집 사람이 궁시렁거린다. 숨죽이고 있다가 아침에 출근하는 명희(엄마)에게 짜증 내며 일렀다.


 코 고는 소리를 피해 거실에서 잤다. 어둡고 적막한 거실에서 조명을 켜고 책을 읽었다. 그러다 집중력이 줄면 폰이나 아이패드로 영화를 봤다. 새벽에 보는 영화는 암전 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왓챠, 넷플릭스에서 영화관에서 일하면서 놓쳤던 영화들을 봤다. 자연스럽게 자는 시간이 늦어져 새벽 1시, 새벽 3시, 돌고 돌아 새벽 6시에 출근 준비하는 명희를 깨우는 고장 난 시계가 되었다. 명희가 출근하고 난 오전에는 새들만 지저귄다. 활기차고 고요해서 고요한 오전에 달달하게 잠들었다.


 오후 1시. 꿉꿉한 기분으로 주섬주섬 일어나서 창문을 연다. 이불을 갠다. 각 잡힌 이불에 기대 폰을 조물거리다 속죄하듯 무릎 꿇고 이 방, 저 방을 빗자루질한다. 짧은 한숨을 쉬고 일어나서 씻는다. 씻다 보면 꿉꿉함도 우울함도 어느 정도 씻겨 내려간다. 오후 4시. 카페에 가서 모닝 페이지를 쓴다. 모닝 페이지는 책 <아티스트 웨이>에 나온 것으로 일어나자마자 생각의 흐름대로 3쪽의 글을 쓰는 것이다. 3쪽을 쓰라고 하는데 1쪽만 쓴다. 나와 하는 아무말 대잔치다. '모닝'페이지를 모닝에 쓴 적은 드물었지만 매일 나와 아무말 대잔치를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니지. 오후에 일어나면 뭘 시작하기도 전에 망치고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래, 일어나서 기분 좋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그렇게 자위했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나를 달래는 게 하루의 중요한 업이 되었다. 오후 1시에 시작된 하루는 짧았다. 다른 사람들의 하루의 반만 살았다.


"이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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