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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브메 Oct 22. 2023

어른에게 감동받는다는 건 (2)

고맙다는 말의 무게

입사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팀에서 오랫동안 섭외하길 희망했던 분이 있었다. 다만, 오래 전부터 거듭 거절 회신을 받아오던 상황이었다고.


그러던 와중 그 분의 SNS를 살피던 리더가 “이 분 지금 당장 모시면 좋을 것 같은데, 다시 한번 더 연락해보자”는 오더를 내렸다. 나는 사실 이전보다 아무런 조건이 나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또 연락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은 마음이었기에,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그 분께 메일을 썼더랬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드려 송구하오나, 저는 제일 좋아하는 웹툰이 꿈의 기업 인데요. 해당 웹툰을 보며 인공지능과 테크놀로지에 압도당한 인간의 삶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어라도 간절함을 보이고 싶어 좋아하는 웹툰 얘기도 서슴치 않았다. 그렇게 메일을 보내고 몇 시간 뒤, 답장이 왔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거절. 시간적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게 이번에도 아쉽게만 끝나는 컨택인 줄 알았다.


그러나 며칠 뒤, 그 분으로부터 메일이 한 통 왔다. 개인적으로 진행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에 대한 도움을 문의하는 내용이었다. 이건 기회다!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결론적으로는 틀리지 않았던 감이었다. 결국 그렇게 도움을 드린 것이 계기가 되어 최종적으로는 섭외에 대한 긍정 회신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리더의 말에 따르면 ‘나의 호스피털리티에 감동했기 때문’이라고.


그치만 사실, 감동을 받은 건 나였다.


-


단체 메일을 받았다. 도움을 드린 일이 성료해 마무리 인사를 담은 메일이었다. 그리고 그 메일 말미에는 작지만 내 이름이 포함돼있었다.


"그리고, 도움을 주신 소브메 님께도 감사합니다."


내가 한 게 많이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감사하단 말을 들어도 되나, 싶을 찰나 연이어 전체 메일이 도착했다.


“소브메님, 감사합니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브메님”


그 분이 메일에 내 이름을 언급하자 다른 분들도 내게 감사함을 표한 것이었다. 감사하단 말이 이렇게 여운이 오래 남는 말이었나, 줄줄이 소세지처럼 들이닥치는 고맙다는 말에 나는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내가 한 일의 크기에 비해 황송한 고마움들을 받아서일까? 아니면, 내가 이제껏 일하며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들어본 것이 처음이기 때문일까? 여러 갈래로 생각이 뻗어나갔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내가 고맙다는 말에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 그 무게가 여실히 느껴진다는 것.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 있다.


“지금 하고 계신 일은, 미안함을 쌓아 사람을 움직이는 일이에요.”


하지만, 나는 이제는 이렇게 생각해보련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고마움을 쌓아 사람을 움직이는 일'이라고.


손해 보기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 상 무척 어렵겠지만, 앞으로의 나는 더 베푸는 사람이 되기를, 작은 도움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고맙단 말로 고마울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감사일기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감사일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되는 것도 인생에 참 중요한 일인 것 같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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