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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밍안양 Jul 04. 2018

[전시] 성좌의 변증법 :  낯선 곳에서 찾은 안양

Frame On

플랫폼엘의 개관 2주년 특별전
<성좌의 변증법 : 소멸과 댄스플로어>에서
반가운 안양의 흔적을 발견하였다.

바로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박보나 작가의 작업.

전시 개요
일시 : 2018.04.06 - 2018.06.10
장소 : 갤러리 2, 갤러리 3, 아넥스, 머신룸, 플랫폼 라이브, 중정
참여 작가 :
박보나, 임영주, 정세영, 최원준, 아라쉬 나시리, 다이가 그란티나, 요헨 덴, 롤라 곤잘레스,
미모사 에샤르, 올리비에 돌랭제, 페포 살라자르, 피에르 게냐르, 사미르 람다니




전시 소개
<성좌의 변증법: 소멸과 댄스플로어 The Dialectic of the Stars: Extinction Dancefloor>

세계화로 인해 우리는 엔트로피 법칙에 따른 무질서한 현실에서 살고 있으며, 오랫동안 이것을 근대화의 위협에 따른 확산으로 간주하였다. 광대한 문화 전체에서 보면 사실상 예술작품의 축적은 거의 불가능한 것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작품들을 별들이라고 상상해보자. 전시란 임시로 하나의 성좌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시는 이성(理性)의 절대적 권능보다는, 감각적이고 정신적인 형상에 가까운 하나의 지형도를 그린다. 따라서, 전시에서 사용하는 비유의 방식은 작품이 전시의 주제를 위한 설명이나 묘사가 되는 것을 경계하며, 작품이 전시 안에서 자유롭게 표류하도록 이끈다. 《성좌의 변증법: 소멸과 댄스플로어》는 예술작품이 잠재력을 능동적으로 펼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작품들을 구성하는 방식을 총칭적으로 일컫는다.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는 최근 『어디로 착륙할 것인가? 정치의 올바른 방향 설정에 대하여』(Où atterir? Comment s’orienter en politique)(2017)에서 언급했듯이 ‘새로운 보편성은 땅이 굴복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며, 세계(Global)와 지역(Local) 사이의 대립에서 벗어나 생태학의 위급한 상황이 정치를 재정립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성좌의 변증법: 소멸과 댄스플로어》는 현세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 참여 예술 형식이 아닌, 예고된 재앙과 생명력을 향한 격렬한 욕망 사이에 존재하는 양면성에 대한 예술 방식을 다룬다. 그리고, 각 작품들 사이를 연결하는 유의미한 망을 통해 후기 자본주의에 질문을 던지고, 비록 예술이 이 질문에 직설적인 답을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결국 우리의 사상을 해체하고 정동(情動)을 발현시키기 위한 훌륭한 도구로 지속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_파비앙 다네시(Fabien Danesi)



이 복잡하고 어려운 설명 속에서
뽑아본 한 문장이 있다.

세계(Global)와 지역(Local)
사이의 대립에서 벗어나
생태학의 위급한 상황이
정치를 재정립해야 된다고 주장

마치 자유롭게 유영하는 별자리들처럼,
세계화된 지구에서의 예술은
특정한 정체성을 갖지 않은 채 떠돌다가
관객인 우리와 우연히 마주한다.
본 전시에서 강조하는
글로벌-로컬의 경계에서 벗어나
미국-안양을 소재로 작업한
박보나 작가의 작업을 소개한다.



박보나 (1977, lives & works in Seoul)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의 커미션 작업으로 제작된 <패러다이스 시티>는 안양시민 4인이 미국의 락 밴드 건즈 앤 로지스의 노래 <패러다이스 시티>를 서로 다른 악기  네 파트로 나누어 연주하는 퍼포먼스 영상작업이다. 하나의 전체로서의 곡과 각기 다른 악기가 연주하는 부분들은 사회의 구성원과 공동체 간의 이상적 관계를 암시한다.

 APAP 5 당시 안양역에 설치되었던 영상은 노래의 일부로, 네 개의 화면으로 이뤄진 광고판을 통해 연주자들의 모습을 한 번에 보여주며 기존의 광고들에 섞여 들어간다. 김중업박물관에서 선보였던 단채널 영상은

연주자들을 교차해서 보이며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준다.
 연주되는 건즈 앤 로지스의 노래는 경쟁과 편법이 난무하는 세계를 떠나 고향으로 상징되는 이상적 장소(패러다이스)로 가고 싶다는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안양(安養)이라는 지명이 자유롭고 아늑한 이상향인 극락정토(패러다이스)를 의미하는 만큼, 작가는 안양에서 이 곡을 연주하고 상영함으로써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고민하고 이상적 미래를 상상해 보고자 했다.

여가적 에너지 혹은 미래의 꿈을 위해

연주하는 퍼포머들이 보이는 개별성과

특수성이 안양의 이상적인 미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_by APAP





내가 보고자 했던 작업은 바로
<패러다이스 시티>였다.
5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에서
선보였던 작품을 플랫폼엘에서도
전시중이었다.



해당 작품이 전시된 위치는
아트샵 옆 전시동의 계단이 있는 통로 벽.

익숙한 안양예술공원 파빌리온 앞의
폭포에서 시작되는 퍼포먼스.

그리고 평촌학원가 한복판에서
이어지는 기타연주.

안양 우편집중국 내에서 촬영된
드럼 연주.

안양 엘리제빌리지 건물 옥상에서도.

엔딩 크레딧.


연주지도가 있던 걸 보면
아마추어 연주자분들과 함께 진행한 듯 하다.






익숙하게 보이는 안양을 배경으로 어디선가 한번쯤은 마주쳤을 것 같은 익숙한 사람들이 연주하는 건스앤로지스의 <파라다이스 시티>는 정말 낯설었다. (곡 자체도 워낙에 익숙한 노래가 아니긴 하다만)


시각적으로는 익숙한 배경인 '안양' 이기는 하지만 인물들이 '연주하고 있는 곡'과 '연주하는 행위 그 자체'는 낯선 경험이었다.


이러한 시청각의 괴리는 우리가 서구의 영화나 영상을 접할 때 흔히 발생하는 현상과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국내의 극장에 걸리는 해외 유명영화들에 나오는 관습과 미쟝센, 클리셰, 그들의 행동양식까지 우리는 모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그 배우들이 구사하는 언어는(대부분 영어) 동양인인 우리에게 여전히 낯설고 해석불가능한 영역에 속한다. 하지만 동양권의 사람들은 낯설게 들리는 언어마저도 자연스럽게 자막과 일치시키며 보는 데 이미 익숙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한 영화 속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일', 소위 낭만적이다 혹은 로맨틱하다는 수식어를 붙이며 감상한다. 하지만 영화가 촬영된 본토에서는 그러한 영화 속 어떤 장면들은 지극히 현실에 기반하여 쓰여진 부분도 다수 있을 것이다.

단지 다른 문화에 속할 뿐인데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꿈꾸고 동경하게 만든다는 지점에서, 이데올로기가 가진 지배력과 확장성을 다시금 실감한다.

 <파라다이스 시티>를 안양에서 일반인들에게 연주하게 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싶다. '편안할 안' 자를 쓰는 안양이라는 도시에서 연주되는 타국의 노래 <파라다이스 시티>를 보며 우리는 정말 낙원이 된 안양을 꿈꿀 수 있는가?


진짜 낙원을 보고 있는가?


오히려 우리가 원래 알고 있는 안양의 실제 모습과 영상에서 연출된 안양의 모습에서 생겨나는 괴리로 하여금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안양의 모습에 심리적으로 훨씬 가까워짐을 느꼈다. 어쩌면 낙원은 바다 건너 저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 붙이고 서있는 이 땅에서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로컬-글로벌의 간극은 이 지점에서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서로를 바라보며 이해하는 것이 아닌 그 자체를 인정하고,
또 나의 모순과 발전가능성도 인정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지역적 격차의 해소가 아닐까.







http://zoominganyang.blog.me/221312417093

이 곳에서 영상을 보실 수 있어요 △







Contents written by. 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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