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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 Mar 16. 2023

제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들어주실래요?

연극과 뮤지컬,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랑하는 캐릭터에 대해.

안녕하세요, 선생님. 앞으로 선생님이 받아보실 편지를 쓰게 될 A라고 해요.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이 대학교였어요. 대학 조교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당시 만나야 하는 학생은 500명, 교수님만 20명이 됐던 것 같아요. 진짜 많죠? 물론 지금도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이 업이 되다 보니 estj인데도 쌍방향의 만남보단 일방적인 만남을 좀 더 좋아하게 됐어요. 책을 읽거나, 공연을 보는 것 같은 일들 말이에요.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책을 즐겨 읽었어요. 부모님이 정규방송 외의 채널을 끊어주지 않으셨고, 자주 책을 사 주셨으니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때는 스마트폰이랄 것도 없었고, 모뎀을 이용해서 인터넷을 해야 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 직전까지 학교 도서관에서 살았으니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대학교 1학년 때도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을 빌려다 읽으며 밤을 새우던 사람이었으니, 얼마나 책 안에 있는 인물들의 인생을 좋아했는지 대충 감이 오실까요?      


그런데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잘 없어서 그런가, 어른들은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 다 비슷한 부류로 보시더라고요. 하지만 책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 같은 게 있어요. 바로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과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 사이를 가르는 강이죠. 저는 여전히 그 강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만큼이나 아득히 먼 곳에서 캐릭터가 중요하다고 울부짖는 사람이랍니다.     


그렇다 보니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라는 말은 곧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말이기도 해요. 그런데 저는 워낙 정신 사나운 취향을 갖고 있어서 정확하게 어떤 캐릭터를 좋아한다고 말씀드릴 수가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씀드릴 수 있죠.     


활자만 잡고 있던, 기껏 해야 영화 정도나 좋아하던 제가 뮤지컬과 연극을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한 건 2021년이었어요. 그해 4월, 첫 뮤지컬을 보고 나왔을 때 제 심정은 ‘이 좋은 걸 서울 놈들만 보고 있었단 말이야?’ 였을 정도로 짜릿했어요. 아직도 기억이 선명해요. 극장을 나와 편의점을 지나면서 이 극을 추천해 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건 도대체 뭐냐?’라고 했던 것을요. 고작 3개월 남짓 공연하고 사라져서는 언제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는 기약 없는 추억을 남기고,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내가 사랑한 배우가 연기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내가 좋아했던 대사와 장면이 그대로 있을지도 모르고, 넘버가 바뀌기도 하는 이 극한의 장르에 제가 발을 들인 거예요.     


저는 혜화역 인근의 중소 극장에서 올라오는 극을 주로 보지만, 꾸준히 대극장에도 다녀오는 편입니다. 처음에는 배우를 좋아하면서 배우의 차기작만 따라다니다가 재미있어 보이는 극을 입에 넣고 우적우적 먹어 보니 맛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매력적인 캐릭터가 나오기만 하면 어떤 배우가 연기하더라도 괜찮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1년이 넘게 입에서 뱉지 않는 극도 있답니다.     


사실 제 전공은 역사예요. 역사 서술의 한 방식으로 내러티브가 각광받고 있다는 것 정도로 이야기와의 접점을 만들 수 있을 만큼 큰 연관은 없습니다. 그저 좋아하는 마니아 중에 하나일 뿐이에요. 하지만 편지라는 건 원래 거창한 글이 아니잖아요. 새 봄이 왔고, 사랑의 도파민이 충만한 계절에 제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매주 한 번씩 선생님께 편지를 쓸게요. 이 이야기가 유쾌하시다면 선생님의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즐거운 이야기는 함께 나눌수록 더 재미있어지는 법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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