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에서 가장 잘생긴 사람은 해적이었어 - 해적 '칼리코 잭'
안녕하세요, 선생님. 지난주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는 날이 점점 따뜻해지다가도 도로 몸을 돌려 추워지는 하루를 보냈던 것 같아요.
선생님은 해적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인물을 떠올리시나요? 저는 두 명 정도를 떠올립니다. 유명한 만화 <원피스>의 루피, 오늘 소개할 뮤지컬 <해적>의 칼리코 잭입니다.
대학로에서는 이희준 작가의 작품들을 모아서 '희작'이라고들 부르는데, 희작의 가장 큰 특징은 호불호를 크게 탄다는 점이라고 해요. 이 <해적>은 그 희작의 대표 작품 중 하나입니다. 2021년에 아무 정보도 없이 '재미있대.' 한 마디만 믿고 가서 봤던 게 재연이었는데, 벌써 세 번째 공연이 올라왔네요.
해적은 대항해 시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극으로, 배우는 두 명이 출연하지만 주요 인물은 네 명입니다. 메리 역할을 맡은 배우가 맡은 다른 배역인 칼리코 잭은 언뜻 보면 생각이 없고 푼수 같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아주 다정한 어른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사회는 점점 아이들에게 각박해지고, 맘충이라는 단어부터 시작해서 온갖 미성년자를 낮춰 보는 시선이 유행하는 요즈음에도 17살짜리 소년 루이스가 주인공인 뮤지컬이 사랑받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은 하지만요. 설령 그렇다고 해도, 등장하는 인물이 그렇지 않다면 의미가 없을 텐데 칼리코 잭은 우리에게 어떤 어른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 같아요.
▲ 초연부터 삼연까지 '잭' 역할을 맡았던 배우들이에요.
잭은 사실 루이스의 아버지인 케일럽의 동료입니다. 그러니까 루이스와는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 인물이죠. 그런데도 루이스가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하지 않습니다. 루이스의 생각을 궁금해하고, 루이스의 의견을 존중하죠. 물론 극 초반에 항해를 떠나기 전 '넌 너무 어려'라고 말하며 항해를 만류하지만 그때는 항해 자체를 막기 위한 핑계를 찾기 위한 핑계였으니까 논외로 치고요. 어쨌든, 항해 내내 잭은 루이스를 친구이자 동료로 대합니다. 그런 잭의 모습을 보며 루이스는 조금씩 성장했고, 어른이 되었고, 이 극이 끝날 때쯤엔 어른이 되어 있었습니다.
루이스는 인생의 첫 항해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다양한 것들을 봅니다. 사실 그중 좋은 것은 거의 없죠. 아버지가 왜 마지막 항해에서 돌아온 뒤 술만 마셔야 했는지, 아버지는 어째서 보석을 하나도 갖고 돌아오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유도 알게 되었는데 설마 그게 좋은 이유겠어요. 그리고 하워드, 잭, 메리……. 너무 많은 인물들의 죽음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그 고난의 상황이 연속되는데도, 루이스는 자신을 사랑했던 아버지와 잭의 다정한 마음을 깨닫게 되고, 잭의 처형 장면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비로소 어른이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잭이 소원으로 노래를 불러 달라고 하는데, 그 노래까지 불러주죠.
우리가 루이스처럼 살 필요는 없겠지만,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자라는 과정을 응원하며 아이의 선택을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하지 않는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극에서 많은 이들이 루이스를 그렇게 대해주거든요. 심지어 루이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포세이돈'인 메리까지도요.
선생님, 저는 업에는 어울리지 않게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잘 대할 줄도 모르겠고, 공감은 너무 어려워서 남의 나라 이야기 같거든요. 그런데도 잭의 다정함을 배우고 싶은 이유는 어른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기 때문이에요. 우리 모두 아이라는 시절을 거치고, 그 시절 내게 베풀어졌던 다정 덕분에 조금 더 둥근 사람이 되었으며, 더러는 그것을 오랫동안 기억하기도 하니까요. 이 사실을 어른이 되면 왜 모두가 잊는 걸까요. 그걸 잊지 않고 산다면 우리는 칼리코 잭처럼 좀 더 다정한 어른이 되어, 다정한 어른으로 아이가 자랄 수 있게 할 텐데요.
저번 편지에서도 더 나은 사회에서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었잖아요. 기억나세요? 오늘도 결국에는 더 좋은 세상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하지 않고 이 편지를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선생님, 아이에게는 다정하게 대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갈 힘이 생기기도 한다는 걸 알았어요. 내일은 조금 더 다정한 어른이 되어 보겠습니다.
또 편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