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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 Nov 27. 2019

작가는 알바 중

진짜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오늘 나는 정확히 아침 8시 반부터 오후 3시 반까지 거의 쉬지 않고 노트북을 쳐다보며 남의 글을 고쳤다. 이는 조금 나쁘고 오래된 나의 일하기 습관인데, 한번 꽂히면 중간에 조금도 쉬지 않고 장시간 그 일에만 몰입한다. 심지어 화장실 가는 것도 잊는다. 오늘은 눈이 너무 아프다 못 해 약간 앞이 안 보이는 느낌까지 와서 멈췄지만 만약 집에서 일을 했다면 조금 쉬다 바로 다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다 순식간에 깜깜한 밤이 될 때도 있고 또 그러다 어느새 새벽이 되기도 한다.

  이러면 그 하루에는 당장 해야 할 일을 많이 할 수 있지만 이렇게 몰아서 하면 몸 어딘가가 혹사되고 그러면 다른 일들이나 다음 날에 지장을 주기도 한다. 어차피 하루에 해 내지 못 할 일이라면 중간중간 다른 일도 섞어서 할 수 있을 텐데 나는 이상하게 한 번 제대로 꽂히면 멈추기가 힘들다. 그러다 어떤 때는 오히려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을 못 하는, 스스로 생각해도 좀 이상한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또 이런 에너지를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쏟은 것이라면 몸은 좀 상했어도 마음이라도 뿌듯할 텐데 오늘은 그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당분간 계속해야 하는 알바에 너무 심하게 매진해 버린 것이다.


  내 글을 계속 쓰기 위해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처음부터 각오는 했지만 막상 현실이 되고 보니 기분이 묘하다. 책만 팔아 돈을 버는 사람은 정말 몇 안 된다는 것을 주변을 보고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실제 내 일이 되니 또 느낌이 남다른 것이다. 예전에는 작가가 되는 그 날까지 일단 다른 일을 하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작가가 되었지만 계속 작가로 살기 위해서 또 다른 일들을 한다. 일단 맨 처음 들어온 글쓰기 외의 일은 바로 서점이나 도서관, 어떤 단체에서 제안하는 행사들이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나와 내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 이후 일정 정도의 돈을 주신다. 물론 그 액수는 그리 크지 않지만 돈도 받으면서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나 역시 깨닫고 느끼는 바가 많다. 그러니 하고 나면 뿌듯한 일임은 분명하나 이는 그리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그다음으로 들어온 일은 바로 어떤 행사의 소책자를 만드는 일이었다. 사실 이 일은 내가 전에 했었던 편집 일 중 하나와 비슷했다. 그런데도 편집자가 아닌 굳이 작가에게 이 일을 맡긴 이유는 일을 준 쪽에서 특정 문구와 내용을 작성하고 수정할 때 보다 작가적인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 그게 뭔지는 아직도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성격의 일은 생전 처음이었는데 막상 해 보니 기분이 영 이상했다. 편집자일 때도 하던 일인데 작가가 되고 나서 하니 정말 내 글을 어디다가 파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책을 내고 그것을 파는 것도 어찌 보면 똑같은 일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내 의지로 쓴 글을 파는 것과 남의 주문에 맞춰 글을 써서 파는 일은 뭔가 달랐다. 내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었을 때 계속 부러워하던 작가들의 다수가 쭉 이렇게 살아왔구나 싶으니까 괜히 뭉클해지기까지 했다. 그 당시 나는 나만 별로 재미도 없는 일을 어쩔 수 없이 계속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도 역시 그 일을 계속하기 위해 별로 재미도 없고 기분도 찝찝한 일을 하고 있었던 거였다. 역시 겪어 보지 않고는 쉽게 다 알 수 없다.


  그래서 요새 새롭게 시작한 알바는 어떤 프로젝트의 백서를 만드는 일인데 안에는 온갖 형태의 글들이 들어 있다. 보고서에나 들어갈 만한 각종 수치나 그래프, 딱딱한 문체의 문장들이 담긴 표도 있고, 어떤 상황에 대해 자세히 풀어 말한 설명문도 있다. 또 당시에 느낀 감성이 듬뿍 담긴 감상문도 있다. 이렇게 각양각색의 글들을 내용은 거의 건드리지 않고 말이 되게 다듬고 있었는데 - 이는 정말 교과서 편집 일과 논술 첨삭 일의 이중주 느낌이다. 역시 뭐든 과거의 경험은 현재에 쓸 데가 생긴다. – 갑자기 스마트폰에 알림이 떴다. 내가 일 년 반이 넘게 월수금 밤마다 춤을 배우러 나가고 있는 학원 쌤이 페친 신청을 한 것이다. 인별과 달리 페친은 내가 실제로 아는 사람이나 혹은 알 만한 사람과 차근차근 맺고 있는 중이라 혹시 동명이인일까 싶어 쌤 맞냐고 톡을 보냈더니 맞다고 하면서 그는 나에게 이런 톡을 보냈다.

“오늘 합격자 발표 났습니다~~ 합격입니다~~ㅋㅋ”

  나와 동갑내기인, 그리고 한 아이의 아빠인, 그리고 몸이 허락하는 그 날까지 계속 춤을 추고 또 가르치고 싶다는 그가, 요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따고 싶어 하는 어떤 자격증을 따고 기뻐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댄서가 자격증을 딴 것이다. 시험 준비를 위해 늦은 시간까지 수업을 하고 나서도 근처 카페에 책을 싸들고 가서 한참 공부한다는 그의 얘기에 진정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응원하는 마음이 절로 들어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합격 기원의 의미로 찹쌀떡을 사서 건넸는데. 그리고 시험이 끝나고 나서는 같이 후련한 마음에 여럿이 모여 술도 한 잔 하고 합격자 발표 날짜를 기다렸는데. 결국 그는 합격을 한 것이다. 그것이 정말 기쁘면서도,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기 위해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지금 당장의 내 모습과 너무 비슷한 것 같아서, 순간 마음이 복잡해졌다. 분명 기쁜데 왜 마음 한쪽이 짠해 오는지. 그도 나도.


  생각해 보면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무엇을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며 살았다. 이따 텔레비전을 더 보기 위해서 당장 하기 싫은 숙제를 했었고, 용돈을 더 받고 싶은 마음에 공부에 매진하기도 했었다. 대학에 가서 자유를 얻기 위해 – 알고 보니 완전한 자유란 없는 것이었는데 속아서 - 고3의 긴 1년을 버티기도 했었고, 월급을 받기 위해서 일을 하기도 했었다. 또 어떨 때는 사랑하는 사람과 계속 함께 하기 위해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참고 하기도 했었다. 그래서일까? 그래서 인생은 결국 다 쓴 것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래도 이런 쓰디쓴 인생에서 정말 하고 싶은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은, 물론 그것 때문에 괴롭기도 하지만, 다행일 수도 있다. 그러니 종일 알바에 시달린 마음을 이렇게 요새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로 풀고 있지 않은가. 물론 이 일도 여전히 노트북을 들여다봐야 해서 눈이 빠질 것 같고, 등이 아프고, 쓰고 나서도 계속 퇴고하느라 머리가 아프지만, 그래도 말이다. 

(오늘은 수요일이므로 또 학원에 가서 쌤을 만나는데 있는 힘을 다해 축하해 줄 거다. 왜냐하면 쌤이 그렇게 좋아하는 춤을 어느 한쪽은 편한 마음으로 계속 출 수 있게 된 것이니까.)

해는 져 있기 일쑤

매일의 이야기는 @some_daisy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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