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지 Jan 03. 2021

벌써 그 근처인지도 몰라

꽤나 합리적일 수 있는 의심

   나이를 먹을수록 뇌도 늙는다고 한다. 당연하겠지. 뇌도 우리 신체의 일부 아닌가. 그러니 갈수록 사고의 유연성도 힘도 떨어질 수밖에는 없다. 또 그것이 뇌뿐이겠는가. 전체적으로 체력도 줄고 그러니 마음도 약해지는 것은(아무리 겉으로 센 척해도 본질이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애 같아진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겠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팩트다. 어떤 생명이든 태어난 이후부터는 조금씩이라도 쭉 노화해 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니까.

  다만 그러한 변화를 잘 감추면서 늙느냐 아니냐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다. 전자의 경우는 많은 인내와 노력이 드니 갈수록 힘이 들지만 보상으로 품위나 존경 같은 것들이 따를 수 있다. 반면 에이 몰라 다 드러내고 산다면 순간마다 후련하고 세상 자유롭겠지만 나이 먹어서 왜 저러냐는 소리를 들을 확률이 높다. 물론 어떤 인생이든 각자의 것이니 누구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선택해 가면 된다. 남들의 평가야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절대 될 수 없으니 말이다.

  문제는 이런 어떤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 하고 자신이 스스로 택한 태도와 행동과는 영판 다른 결과를 원하는 경우에서부터 생긴다. 물론 살면서 뭔가 좀 앞뒤가 안 맞게 구는 것은 남녀노소 누구나 그럴 수 있지만 차이가 있다면 그래도 젊은이들은 '어리니까 그럴 수 있지', 혹은 '패기 있다'라는 소리라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안타깝게도 대개 그때만의 특권이다. 하지만 그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시기 또한 모두에게 한 때로 공평하게 주어지니 이미 그때가 다 지나갔다고 해도 그렇게 억울한 일만도 아니다.


  그런데 끝까지 이거 저거 다 놓고 싶지는 않고, 그러나 그 욕망은 삶이 지나갈수록 점점 더 완벽히 충족되기는 어려워지고. 그런 욕구불만에서 오는 각종 부정적인 감정들을 본인 스스로 다 삼키지도 못 해 여기저기 지르고 다니는 모습을 보게 될 때, 나는 저어기 어딘가에서부터 밀려오는 깊은 암담함을 느낀다. 그렇지. 결국 어쩔 수 없이 저렇게 되는 것이지 싶어서. 그래도 거기에서라도 끝나면 좀 나은데, 어떻게든, 심지어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해서라도(대부분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하지만) 내 이런 마음 당장 해소하고야 말겠다고 나서는 모습을 보게 될 때는... 아아.... 죽는 그날까지 정신을 꽉 잡고 있지 않으면 삶의 끝은 자칫 절망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다.

  나는 제발 훗날 거기까지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노력을 계속 하기는 할 건데. 하지만 글쎄...... 과연....... 이런 다짐들조차도 결국 그렇게 되어 버리는 과정 중 하나가 아닐지. 아니면 혹시 말이다. 나 역시도 이미 그 근처까지 다와 버린 것은 아닐까?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진다.

어쩌다 같은 시대에 함께 존재하고 있을 뿐, 결국에는 각자의 시간

매일의 이야기는 @some_daisy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생명을 지켜 나가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