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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하 Jun 17. 2023

망설임의 윤리학

경인일보 수요광장



유아교육과에는 팀 작업이 많다. 팀 작업은 학생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서로 낼 수 있는 시간이 다르고, 각기 가지고 있는 능력과 기대도 다르고, 무엇보다 지향과 의견이 다르다. 갈등은 피할 수가 없다.



팀 과제를 안내할 때마다 학생에게 설명하는 팀 활동의 의미와 방향에 대한 지침이 있다. 팀 활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팀원과의 관계를 통해 교사로서, 혹은 누군가의 동료로서 자신의 경계를 확인하는 일이다. 동료의 어디까지를 견딜 수 있고 어느 지점에서 견딜 수 없는가, 상대에게 필연적으로 책임을 전가하게 될 자기확신은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가, 동료와의 협업에 대해 어느 정도의 책임과 성실함을 가지고 있는가 등 팀 작업은 여러 경험과 감정 속에서 자신을 성찰적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된다. 


유보통합 앞두고 유치원·어린이집
국공립·사립뿐 아니라 교권 침해


이러한 의미는 구체적 지침과 연결된다. 팀에 참여하는 학생이 서로 처한 환경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역할을 분배토록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학업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갖고 태어나기도 했고 누군가는 학업과 돈벌이를 병행해야 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평안한 마음으로 과제에 집중할 수 있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관계의 어려움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성실하게 참여하기 어려운 동료의 경우에는 그가 할 수 있는 만큼의 과제를 주는 것, 해내지 못해도 팀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과제를 부여토록 역할을 지속적으로 조율하는 것이다. 세상은 n분의 1로 몫이 정확하게 나뉘지도 않고 내가 늘 그 몫을 제대로 해내는 입장에만 서는 것도 아니라는 것, 그러니 n분의 1을 해내지 못해 가장 괴로울 그 이를 애써 금 밖으로 밀어내지 않도록 연습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여전히 팀작업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애써 그 시간을 협업의 지향이 가르치는 방향으로 묵묵히 걸어 성취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애써도 갈등으로 끝이 나 힘들고 어려운 감정에 직면하기도 한다.

그런데 실은 나도 그렇다. 나와 다른 이들은 도처에 존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시시때때로 생긴다. 상대의 어려운 처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당장의 내 이익이 앞선다. 왜 그런 방식으로 우리의 일을 처리하고 서로를 조각내는 행동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절망하거나 분노하며 누군가에게는 절연을 선언하고 누군가와는 어색한 거리를 유지한다. "도대체 이해를 할 수가 없어", "왜 상식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지 않을까" 서로를 금 밖으로 밀어내는 이 말들의 횟수는 점점 더 늘어 간다. 나이가 들어 선배가 되고, 선생이 되고, 관리자가 되어 더 큰 힘을 가질수록 이 말은 영향력을 가진다. 의도치 않게 서로를 구분하고 가르고 절대 넘어올 수 없는 선을 만들어 결국 누군가를 배척한다.

그러니 자신이 그어 놓은 일상의 경계를 확인하고, 내 경계가 뾰족한 무기가 되어 상대를 침범하지는 않도록, 자기 확신으로부터 시작된 결단의 언어와 행동 앞에서 머뭇거리고 망설일 것이란 말은 결국 누구보다 나를 향하는 것이다.

아동학대금지조항의 '교원 면책'
교사·학부모 등 자기 확신 '팽팽'
첨예한 논쟁 앞 필요한건 '윤리'


유보통합을 앞두고 유치원과 어린이집, 국공립과 사립뿐 아니라, 교권의 침해와 아동학대금지조항에 대한 교원 면책을 앞두고도 교사와 학부모, 학교와 가정, 결국 나와 당신. 각 입장에서의 자기 확신은 팽팽하다. 한 아름 상처 주고 상처를 받은 날 책장 속에서 '망설임의 윤리학'이란 제목의 책을 찾았다.

"죄 지은 사람을 앞에 두더라도 그것을 단죄할 자격이 자신에게 있다고 단언할 수 없는 주체의 망설임. 정의를 명쾌한 논리로 요구하면서도 막상 정의의 폭력이 집행될 때가 되면 정의가 너무나도 가혹하고 격렬한 것을 견디지 못하게 되는 유약함.", 결국 "자신이 모든 고발로부터 벗어나 있다고 믿기에는 너무나도 시대 전체에 얽혀 있는 자신의 공범관계를 숙지하고 있는 것의 불안."

첨예한 논쟁 앞에서 가혹함과 격렬함을 대하는 유약함과 자신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기인하는 망설임과 머뭇거림이 지나치게 당당하고 자신을 확언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윤리일지도 모른다.

/김명하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민교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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