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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하 Jul 28. 2023

저출생 시대 생태사상으로서의 기본소득

계간 <기본소득> 2023년 여름호


계간지 기본소득 여름호에 글을 썼다. 기본소득은 이상처럼 보였으나 지치지 않고 말하는 김종철 선생님의 녹색평론이 있었다. 기본소득당이 창당됐고,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창설되었으며, 계간지 기본소득이 발행되고 있다. 


이상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을 경계한다. 주어진 조건에서만 사유해서는 현실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닿지 않아도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지향삼아야 가야 할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현실을 개선하고 넘어서야 할 이유는 내가 고생한 길을 후배와 다음 세대는 좀 더 평안한 방식으로 걸을 수 있도록 애쓰기 위함이다. 


0-2세를 보육하는 어린이집 교사는 교사다. 영유아도 학부모도 그들을 교사로 부른다. 그러나 체제는 그들을 교사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 바꾸어야 할 건 체제다. 존재하는 모든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그동안 국가가 방치했던 영유아교육의 틈을 실제로 메꾸어 왔다. 그들은 불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각 시기마다 정부가 제시한 기준을 충족하는 방식으로 존재했다. 유아교육의 질적 개선을 위한 유보통합은 상향된 기준을 제시하며 신규 유아학교의 수준은 높여야 한다. 기존 유아교육기관에게는 그것이 유치원이든 어린이집이든 그동안의 열악한 상황에서도 현장을 지켜 준 것에 대한 감사가 기본이어야 하고, 새롭게 상향된 기준에 도달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것이 유보통합의 과정이다. 


저출생을 문제라고 보는가? 그래서 개선을 진심으로 원하는가? 그렇다면 영유아와 관련된 많은 사항이 각각의 주체에게 불행으로는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이 땅에서 어린이집에서 0-2세를 보육하고,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3-5세를 교육하는 교사가 발딛고 선 땅이 불행하지는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0-2세를 살아 본 우리 모두가 그 시절의 교사를, 그 시절의 공간을, 그 시절의 부모와의 시간을 불행으로 더 많이 기억하지 않아야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다.


0-5세를 교육하고 보육하는 교사는 모두 학제 안에서 교원의 지위를 부여 받아야 한다. 예산이 부족하면 늘릴 수 있도록 한 목소리로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유아교육자가 해야 할 역할이다. 이상적이라고 비판하고 싶은가? 이상적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이 땅과 이 현실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비판하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기본소득에 대한 포스팅이니 기본소득에 대한 말을 해야 하는데... 다른 누구도 아니고 우리 스스로가 하는 말들이 아프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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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출생시대 생태사상으로서의 기본소득 


                                                                            김명하(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민교협 회원)


지난 6월 24일은 녹색평론 김종철 선생님의 3주기였다. 녹색평론은 김종철 선생님에 대한 대표적 수식어다. 녹색평론을 어떻게 읽기 시작했는지 처음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녹색평론에서 얘기하는 생태사상 뿐 아니라 숙의민주주의, 현대통화이론, 기본소득 등의 개념은 지극히 매력적이었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 2019년 10월 24일,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서평회에서 선생님을 처음 뵀다. 그리고 2020년 6월 25일 아침 선생님의 부고를 들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죽음이었다. 그동안 많은 글을 써왔고 대부분은 생태사상가 김종철 선생님의 영향을 받았다. 이 글에서는 그렇게 쓴 몇 편의 글을 소개하며 유아교육과 고등교육에서 생태사상으로서의 기본소득이 어떻게 논의될 수 있는지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2018년 4월 인천광역시 교육청 ‘유아교육소식지 40호’에 「4차 산업혁명과 유아교육, ‘사람, 장소, 환대’의 교육」을 썼다. 생산성 향상을 통한 풍요를 전제한 산업사회에서는 인간의 노동력이 성장의 주요 동력 중 하나였으나 빅 데이터, 인공지능 등의 기술을 바탕으로 한 4차 산업사회에서 인간의 노동력에 대한 요구는 축소되고 있다. 노동자의 세수로 유지되는 국가는 더 이상 대안이 되기 어렵고 데이터와 기술을 소유한 소수에게 부가 극단적으로 편중되어 가는 것 또한 불가피하다. 노동력은 축소되지만 부를 유지하기 위한 소비는 지속돼야 하므로 4차 산업사회는 지속적 소비 창출을 위해서도 안정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 역설적으로 더욱 중요하고 그런 의미에서도 기본소득은 논의될 수 있다. 더 이상 노동자에게 기대기 어려운 세수는 로봇세, 구글세, 부유세 등 사회변화에 맞춰 재편될 수 저출생시대 생태사상으로서의 기본소득김명하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민교협 회원계간  《기본소득》 2023. 여름77밖에 없다. 2018년에 쓴 이 글에서는 2017년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을 소개했다. 2020년 결과보고서가 나온 이후 다양한 평가가 있었으나 당시에는 기본소득이 개인의 삶의 회복 뿐 아니라 공동체 회복에도 기여하리란 전망을 말하고자 했다. 당시 국내에서도 시도된 성남의 청년배당, 서울의 청년수당, 부산의 청년디딤돌카드 등도 함께 소개했다. 유아교육을 비롯, 4차 산업혁명 시대 교육의 방향은 기본소득 등 익숙한 기존의 관행을 넘어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상상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식이어야 함을 사회학자 김형경씨 책 제목 ‘사람, 장소, 환대’를 빌어 말했다. 


2020년 5월 프레시안 민교협의 시선에 〈혐오, 반값등록금, 그리고 대학의 미래〉를 썼다. 2020년 4월 29일 이천 물류창고 화재참사로 38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예견된 인재였으나 반복된 참사 때마다 혐오는 정부가 아니라 유가족과 사망자를 향했다. 영유아, 장애인, 난민 등 약자에 대한 혐오의 원인을 공공성이 무너진 자본화된 교육현장에서 찾고자 했다. 서열화된 대학 졸업장이 안정된 삶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은 경쟁을 통한 각자도생을 일반화했다. 초중고등학교는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무상교육임에도 교육내용의 공공성이 담보되지 못한 채 대입을 위한 경쟁의 장으로만 기능한다. 고등교육도 막대한 정부자금이 투입되나 대학에 대한 평가를 사적 자본이 선점하고 잠식하며 대학 또한 개인의 사적 욕망 실현을 위한 공간으로만 작동된다. 결국 사회적 약자나 국가관리부재 혹은 국가과잉권력으로 인한 피해자 등 공적 담론으로 고민해야 할 사안까지도 개인의 능력문제로, 경쟁에서 도태된 실패자에 대한 혐오로 귀결하는 문화는 민주주의, 시민 등 공적 담론이 부재한 학교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반값등록금을 기본소득과 같은 보편복지에서 사고하고자 했다. 소수의 학생에게 국가가 직접 지급하는 장학금 대신, 반값등록금으로 모든 학생에게 혜택을 주되 그 재원을 사립대학에 직접 지원하여 사립대학이 공적 담론을 재생산하는 교육과정을 기획하고 대학을 공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고등교육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소개했다. 


2020년 8월 프레시안에 〈화폐는 거대한 사기극이었나... ‘현대통화이론’ 따라잡기〉라는 글을 썼다. 이 글은 화폐의 기원을 소개하고 화폐가 국가가 아니라 민간은행에 의해 신용화폐로 창조되는 과정을 소개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민간은행에 부채를 지고 막대한 이자를 지급한다. 그러나 국가가 화폐를 직접 발행Basic Income Magazine  Issue No. 16 78한다면 공적 자금으로 지급되는 이자가 은행의 사적 자금이 되어 개인의 부로 축적되는 대신 기본소득, 기초자본 등 공적 화폐로 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대안통화이론을 소개한 글이었다. 


2021년 1월 안산뉴스에 쓴 〈당신 인생의 이야기〉와 경인일보에 쓴  〈“그래도 애써보자”, 말의 무력함에 대하여〉는 모두 안전장치 없이 삶의 벼랑에 몰린 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특히 등록금을 벌기 위해 일 년 단위로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거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학교를 떠날 수 밖에 없는 학생들에 대해 썼다. 온 종일 일해도 어떤 일은 최저 시급에 머무르고, 아무리 원해도 누군가는 배우고 안정된 직업을 갖는 것이 어렵다. 개인의 나태와 무능이 원인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불운을 개인의 능력으로 치부하는 구조의 나태와 무능이 이유다. 언제까지 기본적 생계를 이유로 청년이 밥벌이를 최우선하는 상황에 놓여야 하는지, 과연 이것이 능력주의로만 치부돼야 할 당연한 일인지 질문하고자 했다. 


2023년 3월 경인일보에 쓴 〈인공지능, 기본소득, 저출생〉은 어린 나이부터 생계 때문에 학교보다는 공단과 같은 일터가 편안하다고 말한 학생으로부터 시작됐다. 합계출생률 0.78명이 위기라는 말이 무게감을 가지려면, 이미 태어난 이들이 주어진 생을 제대로 살아낼 수 있도록 사회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어떤 학생은 생계 때문에 학교를 포기하고 일터로 간다. 값싸게 일할 수 있는 노동력이 많으니 어떤 일터는 목숨을 담보해야 함에도 여전히 누군가는 그 자리로 걸어 들어가 죽고 또다시 누군가 그 자리를 채운다. ‘헬조선’이라 불리며 안전망은 무너지고 모든 것이 각자도생인 경쟁 사회에서 저출생은 과연 누구에게 위기인가. 대량의 화석연류와 지하자원을 바탕으로 인간의 노동력을 사용해 성장하는 인구의 시대는 다시 오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사람이 할 일을 기계로 대체해 갈 것이다. 인구의 시대는 인간의 시대로, 착취와 파괴의 시대는 공유와 회복의 시대로 변화돼야 한다면, 저출생은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기본소득과 같은 새로운 문명으로 적응해야 할 도전이다. 


2023년 3-4월, 격월간 민들레 146호에 「저출생 시대의 유아교육」을 썼다. 저출생 시대의 유아교육은 이미 출생한 영유아가 무엇보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성장토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기존의 유아교육, 특히 어린이집은 노동하는 부모를 위한 돌봄 서비스의 성격이 강하다보니 노동자 편의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계간  《기본소득》 2023. 여름79우가 많다. 0~5세의 기본보육시간이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12시간이나 된다는 점, 부모가 원하는 경우 밤 12시까지 야간연장보육, 심지어 다음날 새벽 7시 30분까지 24시간 보육도 노동자에 대한 서비스로 제공된다. 대부분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부모의 출퇴근을 원활히 하기 위해 매 해 심각한 안전사고가 발생함에도 어리 영유아를 한꺼번에 스쿨버스에 실어 등하원 시킨다. 저출생 시대의 유아교육은 노동자 중심이 아니라 영유아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변화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양육중심의 노동환경 구축이 필수적이다. 기업과 자본은 자녀에게 노동자를 부모로 되돌려 주고, 노동자여도 부모가 자녀와의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부모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는 누구라도 양육 수당을 일정 시기까지 지급받아 자녀의 기본적 보호에 어려움이 없어야 하고, 적어도 자녀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파트타임, 재택근무, 육아휴직 등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노동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 


청년수당, 양육수당, 기초자본, 기본소득 등의 개념은 누군가에게는 이상적 담론으로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30년 전 생태위기가 공동체를 훼손하고 인류의 위기가 될 것이란 전망은 더 이상 공상과학이 아닌 현실이 되었고, 10년 전만해도 소수의 견해였던 기본소득은 코로나를 기점으로 한국 사회에 도입되어 청년수당 등의 형태로 적용되고 있다. 저출생은 위기란 담론 역시 기존 산업사회를 전제한 낡은 두려움일지 모른다. 더 이상 활용할 수 있는 화석연료와 지하자원은 풍족하지 않고,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인간과 인간 중심의 문명은 생태와 조화를 이루는 대신 끊임없는 착취와 파괴를 택했다. 저출생은 소외되고 착취된 이들이 선택한 필연이고 결국 우리가 살아온 삶에 대한 결과다. 극복을 원하거나 적응을 원하거나 기존의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할 수 없다. 기본소득은 우리가 상상해야 할 현 삶에 대한 극복, 혹은 새로운 적응을 위한 철학적 사상이자 실천이 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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