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관계이론(24년 5월 이후)
작년에 제목만 적어두고
저장해 놓았던 글이다.
분홍 소시지.
아버지는 내가 오면
항상 밥을 차려주셨다.
작년 초만 해도
파킨슨은 앓았어도 거동이 되셨다.
그래서 본인이 직접 차려 주셨다.
분홍소시지를 식용유에 부쳐 주셨다.
맛있었다.
계란을 씌우지도 않았고
밀가루나 튀김가루 옷을 입히지도 않았다.
그저 분홍빛의 소시지였다.
맛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서울집에 간다고 미리 얘기해 놓으면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과 음식을 사서 냉장고에 쟁여두셨다.
삶은 계란, 사과, 오징어채, 두부, 삭힌 홍어, 꼬막, 각종 해산물 등등 많았다.
반찬이 많아도, 분홍소시지가 안 보이면
나는 늘, 소시지를 찾았다.
아빠, 소시지는?
그래.
하시고는 손수 식용유에 부쳐 주셨다.
맛있었다.
그런데 어머니 집이나 다른 곳에 있으면
분홍소시지는 생각나지도 먹고 싶지도 않았다.
아버지 집에만 오면 분홍소시지가 먹고 싶었다.
아빠, 나 소시지.
그래.
소시지가 그렇게 좋냐.
응.
몇 달을 내리 그랬다.
그러고 5월 집단상담을 참여했다.
대상관계 이론에 주안을 둔 집단이었다.
리더 분은 자기의 중간대상은 팥죽이라며
자기 얘기를 해주었다.
아, 분홍소시지가 내게는 중간대상이었구나.
아빠와의 관계에서 내가 심리적으로 직접 들어가지 못할 때
중간대상을 통해 내면화시키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이 되었다.
분홍소시지는 아빠에게 얻을 수 있는
내가 필요로 하던 따뜻한 정, 그리고 안정감이었다.
이혼 소송 중 치닫는 불안과 걱정,
새아버지와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편감들
그밖의 등등
안정감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이때 참 아버지에게 짜증도 많이 냈다.
분홍소시지가 중간대상일 수 있겠구나 느낀 뒤로는
분홍소시지를 찾지 않게 되었다.
아빠는 쓰러지기 며칠 전
홍어 좀 사봐야겠다, 하셨다.
일이 년에 한 번씩은 삭힌 홍어가 먹고 싶다.
다음에 먹어요, 했는데.
어제 대모님에게 톡을 보냈다.
대모님,
아빠가 배고프다고
상추쌈에 멸치젓갈 먹고 싶다면서
말 안 듣는 딸이라고
저보고 꼴통이라고 했어요.
아버지에게 전해 주세요.
대부님이 아버지 드릴 홍어무침
완치되면 대접하겠다고요.
와, 아버지가 무척 좋아하겠어요.
감사합니다.
사실 내가 더 좋았던 것도 같다.
왜 이리 오늘은 먹는 타령만 할까.
아빠 옆 보조침대에서 간병한 12일 동안이
그립고 벌써 아련해진다.
대변 기저귀 가는 게 도저히 안 되어서
계속 간호사님들에게 도움 요청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간병사 분을 모셔야겠다 생각한 것도 있었다.
물론 면접도 있고 할 일들이 있었지만 말이다.
아버지랑 밥 한 번을 먹는 게
소소한 아니 사소한 거라 생각했는데
같이 밥을 먹는 행위가
소소한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구나 알게 됐다.
아버지랑 밥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