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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L May 01. 2022

가끔씩


 나름 잘 지내고 있어요.


 하루를 열심히 그리고 묵묵히 지내다가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다가도

 가끔, 아주 가끔 공허해 질 때가 있다.



 티비 예능을 보고 한참을 깔깔대며 웃다가 세탁기 알림음에 맞춰 소리나게 빨래를 널던 지금처럼.


 

 괜찮아요,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가 문득

 괜찮지 않아요, 라는 말을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적적한 작은 방안에서 축축한 양말을 널다가 떨군 시선에 들어온 나무바닥 무늬가 초라해 보이는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라는 유언을 따라 행복하게 살겠다고 다짐했는데 이젠 정말 내가 있을 곳이 어디에도 없구나를 느꼈던 나날들을 마주하면

 

 억울함보단 인정을 택해야하고

 외로움보단 쓸쓸함이 더 알맞은 것만 같고

 부러움보단 아련함이 걸맞는


 그런 시간이 조금 아픈 것 같기도 하다.




 쓴 후회는 보잘 것 없이 사소한 풍경에서 다가온다.


 김치라도 한 통 얻어올까 하고 들고 간 작은 김치통은

 피곤해보이는 이모의 얼굴 앞에서 차마 꺼내보이지도 못하고 답답한 가방 속에 그대로 간직한 채

 텅 비어버린 공기만을 가득 담아 들고 왔다.



 나름 신경써서 빳빳한 새 돈으로 챙겨간 사촌언니의 축의금은

 마음껏 먹지도 못한 비싼 뷔페를 뒤로하고, 이럴 필요 없다며 다시금 쥐어 준 하얀 봉투 속에 담겨 고스란히 돌아왔다.



 요즘은 어떤 일이 있었다고 얘기하고 싶어서 한껏 들뜬 채 찾아간 친척집은

 그들만이 공유하는 편안한 분위기에 끼어든 불청객이 되어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서둘러 자리를 일어나고자 했다.



 

 


 참 많은 시간이 흘러 언젠가 다시 마주한다면

 그 때에 내가 할 말은 미안하다는 네글자가 전부일 거라서,


 나는 참 못난 딸이 되어, 참으로 이기적이게도 아득바득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겠다 다짐했는데.



 이렇게 한 번씩

 잊고 있던 현실이 초라하게 다가올 땐

 다시 한 번 더 외로움보단 쓸쓸함이 걸맞는 비릿한 그리움이 울컥 차올라서


 

 한동안 마른 바닥을 두 어번 문지른다.





 이젠

 남은 빨래를 마저 널어야지.

 설거지를 하고, 운동도 하고, 다시 내일을 준비해야지.


  다시, 일어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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