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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옥 Oct 29. 2024

미래를 원한다면, 증명하세요

쵸비는 이번에도 증명하지 못했다

[T1은 롤게임 월즈 4강에서 젠지를 이기고 3년 연속 결승에 올랐다]


하루가 지났지만, 경기 이후의 여운은 아직도 남아있다. 이제 게임이 스포츠가 되어 국가 대항전이 되고, 아시안 게임 정식 종목으로 당당히 국민적 환호와 지지를 받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게임을 부정적 이미지로 보고 있는 건 사실이다. 게임이든 스포츠든 어떻게 부르고, 어떤 식으로 부정하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한 분야에서 10년이 넘도록 정상에 서서 자신을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고, 위대한 업적인 것이다.


지난 27일 저녁 10시에 시작한 롤게임 월즈 4강전인 T1과 젠지의 5전 3승제 게임이 다음날 새벽 2시에 끝났다.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시간인데다 새벽인데도 국내 실시간 유튜브 방송의 동시접속은 80만에 달했다. 그만큼 두 팀의 경기는 핫했다. 현재 존재하는 게임 중 세계 최고의 팬과 인기를 누리고 있는 롤게임에서 올 해 최고의 팀을 뽑는 월즈의 4강 전인데다, 국내 리그 1위 팀과 전 년도 월즈 챔피언인 T1이 붙었으니, 그럴 만하다. 나도 저녁 약속을 미리 마치고, 한 시간 전부터 기다렸던 경기이기도 하다.


사실 스타크래프트를 비롯, 컴퓨터와 손으로 하는게임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 정상급이다. 롤게임도 한국과 중국이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고, 전 세계 1위 팀이 한국의 젠지(파워랭킹 1위)이다. 그런 젠지는 올 해 국내 리그에서 단 한 번도 T1에게 진 적이 없고, 최근 2년 간 10번의 교전을 내리 진 T1이 아무리 디펜딩 챔피언이라 해도 젠지를 이기기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T1이 젠지를 3:1로 이기고 결승에 올라 중국팀과 이번주 토욜 저녁에 운명적 대결을 한다.


[정점을 탈환하려는 쵸비는 이번에도 페이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어떠한 경기이든 라이벌이 존재한다는 것은 흥행면에서도, 당사자에게도 선의의 경쟁에 따른 발전과 역사를 만들기에 좋다. 롤게임 역사상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올라간 '페이커(FAKER)'와 현재 전 세계 최고의 미드라이너라 불리는  '쵸비(CHOVY)'는 역사적인 월즈 4강전에서 맞 붙었다. 그동안 두 사람은 100번 이상을 게임에서 맞 붙어, 53승과 52승으로 호각새를 보이고 있다. 한 쪽은 현존 최고의 게이머로 롤의 미래라고 하고, 한 쪽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미래에도 여전히 내가 최고라 하며, "미래를 원한다면, 증명하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스포츠는 전성기의 나이 때가 있다. 프랑스의 스포츠 연구소인 '이르메스(IRMES)'에 의하면 대부분의 운동선수들은 10대 후반부터 역량이 점점 향상되기 시작해 평균 26.1세에 절정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바둑도 초 절정기는 10대에서 20대 중반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롤게임도 예외는 아니다. 게임에 등장하는 챔피언들의 스펙과 유틸이 수시로 바뀌고, 게임 룰과 기준이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신예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곳에서 30을 바라보는 페이커가 여전히 절상에서 내려올 생각을 안하고, 나를 밟고 올라가려면 '증명하라'는 자신감은 가히 최고의 도파민을 만들어 낸다.


[T1의 구마유시는 게임만큼이나 인터뷰도 최고다]


페이커도 그렇고 그가 속해 있는 T1은 이번 젠지전 승리로 3차례 연속 결승 진출이란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결승전 무대인 영국 런던으로 향했다. 전 세계 최강의 리그에서 선발된 20개 팀이 지난 9월 25일부터 독일 베를린, 스위스 제네바, 프랑스 파리를 거쳐 이제 영국 런던에서 1경기만 남겨놓고 있다. 작년 월즈가 한국에서 있을 때부터 흥미를 느낀 롤게임을 시작한지 벌써 1년이 지났다. 롤게임의 초보 게이머로써 그들이 얼마나 위대한 서사를 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작년에는 페이커가 4명의 동생들을 이끌고 결승에 올랐다면, 이번에는 4명의 동생들이 페이커를 앞세워 밀고 올라온 듯하다. 


롤은 5명이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들의 몫을 다해야 하고, 한타(한방 타이밍 : 게임에서 승패를 가리는 대규모 싸움)에서는 서로의 조합과 유기적인 협조가 있어야 승리하는 게임이다. 순간적인 판단력과 촉각을 다투는 움직임 속에서 한 사람이라도 제 역활을 못하면 승리하기 어렵다. 그런 측면에서 5명 모두 같은 멤버로 3년을 연속해서 월즈 결승에 올라왔다는 것은 전무후무한 기록이 될 것이다.


실제로 작년 월즈 우승이후 T1은 팬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상대적으로 약한 팀에게도 허무하게 지고, 젠지, 한화, 기아 등에게 무참하게 패하면서 국내 리드 6위까지 떨어지는 기복을 보이며, 팬들로부터 맹비난을 받았다. 그 중심에 있는 '페이커'는 "노병은 후배들을 위해 이제 사라져라"라는 야유와 말도 안되는 억지 속에 꿋꿋하게 버텨왔다. 그리고 가장 최고의 무대에서 자신이 여전히 정점에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어제가 큰 아이 생일날인데, 생일 선물은 내가 받았다. 이번 주 결승전을 강변CGV에서 볼 수 있는 티켓을 얻은 것이다. 롤게임을 즐겨하는 아빠를 위해 아들이 선물을 준비하다니, 이게 현실인가? 가격도 가격이지만, 이 티켓마저도 구하기 쉽지 않다. 비록 영국 런던에서 직관을 할 수 없지만, 롤을 즐기는 사람들과 같이 극장에 모여 같이 응원할 수 있어 좋다. 이번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팀과 중국을 대표하는 팀간의 국가 대항전 형식으로 진행되니, 오랜만에 애국심도 발휘할 좋은 기회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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