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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이 Sep 11. 2023

갓생 살기를 그만 둔 이유

자신을 소진하는 삶에서 정성껏 돌보는 삶으로

몇 년 전부터 갓생 살기가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하루를 알차게 계획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려는 움직임을 '갓생'이라고 하는 것 같다. 그간의 나의 삶 또한 갓생 살기 그 자체였다. 늘 캘린더에는 빼곡히 일정이 차 있었고 해야 할 일들의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하나씩 지워나가는 쾌감을 즐겼다.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이 뿌듯했고 나아가 바쁨에 중독되어 조금이라도 일정표가 비어있으면 '어? 나 지금 뭐 하고 있지? 왜 아무것도 안 하지, 뭐 해야 되지?'라는 질문이 습관적으로 떠오르면서 불안해지기까지 했다. 쉬지 않고 늘 팽글팽글 돌아가는 삶. 나는 이러한 삶의 방식이 내 삶을 생산적으로 잘 운영해 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자신했다.


구체적으로 갓생의 삶을 들여다보면 8시부터 5시까지 업무를 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필라테스 1:1 수업을 듣고 이후 마찬가지로 일주일에 두세 번은 1:1로 영어회화 수업을 소화해 내는 스케줄이었다. 이동하는 중간에는 독서를 하거나 유튜브로 영어 공부를 하고 SNS 업로드도 빠트리지 않았다. 주말에는 배운 것을 복습하거나 정리해 두고 그때그때 생산적으로 여겨지는 이벤트들로 채워 넣었다. 틈틈이 루틴을 체크하는 어플로 중간 점검을 하고 하루를 마치면서는 오늘 하루 얼마나 생산적으로 살았는지, 계획한 일들은 다 수행했는지 엄격한 채점자의 눈으로 평가하며 허투루 살지 않았다는 감각을 느끼고 싶어 했다.  


돌이켜보면 숨이 턱턱 막히는 일상이었다. 퇴근하고 필라테스 수업을 가거나 영어회화 수업을 들으러 빠듯한 시간에 이동해야 했으므로 식사는 대충 때우는 식이었다. 수업 시간에 늦을까 봐 허겁지겁 뛰어가는 일도 잦았다. 누가 이렇게 살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나는 누군가의 지시를 받은 것처럼 매일의 태스크를 지키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만족감이 없었다. 오늘 하루를 열심히, 성실히 살았다면 자신을 기특하게 여기고 만족해야 하는데 하루의 끝은 늘 완전히 소진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점점 삶이 숙제처럼 느껴졌다.


사진: Unsplash의 Joice Kelly


나는 언젠가부터 이런 '갓생'의 삶의 방식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다. 늘 미래를 준비하며 오늘 하루를 생산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앞날을 준비하지 않고 있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아 불안해서 나를 최대한 가동하는 것으로 그 불안을 감추고 싶어 했다. 그러다 보니 아침부터 오늘의 해야 할 일들이 자동적으로 떠오르면서 늘 마음 한 켠이 짓눌리듯 시작하는 것이 익숙해져 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하는 일을 하면서 동시에 다음 해야 할 일을 떠올려야 했기에 오롯이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는 집중력이 없었다. 바쁘기 위해 바쁜 삶, 불안하지 않기 위해 불안한 삶이었다.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가는데 왜 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까. 오로지 투두 리스트만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다 보니 어느새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은 무시하고 내 안의 욕망에는 귀를 닫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자꾸만 내 마음에서 올라오는 것들을 한 켠에 치워두고 있었다. 그런데 무시해 버린 감정이나 욕구는 치워버린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몸에서, 때로는 마음에서 내 감정과 욕망을 알아달라고 신호를 보내왔다.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신호들이 다가왔을 때 나는 두 손을 다 들고 나를 먼저 돌보는 일에 애써야겠다고 다짐했다. 피곤하고 힘들면 정신력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몸이 회복할 때까지 충분히 쉬는 것, 대충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에 좋은 음식들로 채워주는 것, 나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 내 욕구에 반응하는 것. 나를 내가 정성껏 돌보는 것부터 챙겨나가기로 했다. 


사실 우리 모두 무언가를 더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열심히, 성실하게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서 안주하면 안 된다고 뭔가를 더 해야 한다고, 남들은 저만치 앞서가 있다고, 뒤처지면 밀려날 것이라고 자꾸만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목소리가 들려온다면 가만히 귀를 닫고 오늘의 나를, 내 일상을 살뜰히 보살피는 것부터 먼저 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므로.


사진: Unsplash의 Daniel Mingook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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