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잠재고객 육성용으로 커뮤니티 시작하려는 분들께도 도움이 될 이야기
22년 6월 22일은 제가 호스트로 있는 B2B 마케팅 커뮤니티 HUSTLE의 시작일입니다. 3살 하고도 6개월을 지나고 있는 이 어린이(?) 커뮤니티는 어느덧 370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하는데요. 횟수로 따지면 약 마흔 번의 모임을 거쳐 왔고요. 어떤 날에는 5명이 모이기도, 또 어떤 날에는 30명 안 되는 사람들이 방을 북적이며 채우고 있습니다.
최근 처음 모임을 찾아주신 분들이 늘어나면서 '어떻게 이 모임을 시작하게 됐는지', 혹은 '어떻게 이 정도의 분위기를 유지하며 지속할 수 있는지(Positive)'를 질문 주시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개중에는 본인이 담당하는 비즈니스에서 잠재고객 육성을 위해 커뮤니티를 기획해 보고 싶다는 분들도 계셨고요.
사실 저는 뭔가를 팔기 위한 세일즈 방법론으로 커뮤니티를 시작한 게 아니다 보니, 상업적 성과를 기대하는 분들께 좋은 레퍼런스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커뮤니티는 마케팅보다는 '관계 형성'이 핵심인 액션이고, 이를 단순히 사람을 많이 모아 관리하면 성과가 날 것이라는 나이브한 생각으로 접근하면 필패한다는 점입니다.
대신 저는 마케팅 타겟팅이나 모수 확보보다는, '단 한 사람의 구체적인 페르소나'를 상상하며 이 커뮤니티의 모든 규칙을 설계했는데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저는 HUSTLE을 시작하기 전, 타인이 운영하는 여러 커뮤니티의 멤버로 속해 있었습니다. 호스트가 굉장히 '하드워킹' 스타일인 곳도 있었고, 반대로 방임형으로 운영되어 '사실상 오픈채팅이 전부인' 곳도 있었죠. 거기서 저는 언제나 게스트였기에 운영진의 노고를 다 헤아릴 순 없었지만, '참여자가 그곳에 와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는 꽤 오랫동안 관찰하고 생각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소셜 스킬이 늘었지만, 제 DNA는 여전히 내향인에 머물러 있고 낯도 가리는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남의 행사에 가서는 기회가 생기지 않는 이상 먼저 입을 떼지 않는 편이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누군가 이야기하는 걸 지켜만 보다가 돌아오는 날들도 적지 않았고요. 그렇게 관찰자로만 남게 되는 커뮤니티는 한두 번은 가보았지만, 결국 다시 가야 할 의무감을 느끼지 못해 점차 멀어지곤 했습니다.
저는 모든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청자 중 가장 '알파(α)'에서 먼 사람, 즉 내가 이야기하는 주제에 대해 가장 낯설어하거나 심리적 거리가 먼 사람까지 고려한 친절한 방식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야 한 번을 이야기해도 메시지가 잘 전달되고 상호 만족할 만한 대화가 가능하고요. 커뮤니티를 기획할 때도 저는 이 기준을 사람에게 적용해보았어요.
B2B 마케팅에 관한 열의가 있어 이곳을 찾았지만, 정작 오프라인 현장에서는 가장 구석에 자리 잡을 사람. 용기를 내어 참석했지만,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 조용히 앉아만 있다가 귀가할지도 모르는 사람.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의 업에 대한 온도가 낮은 것은 결코 아닐 거예요. 다만 표현의 방식이 다를 뿐이죠. '학습에 대한 열의는 뜨겁지만, 관계 맺기에는 소극적인 그 한 사람'이 마음 편히 왔다 갈 수 있는 모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가장 소극적인 사람이 편안함을 느낀다면, 아마 그보다 에너지가 넘치는 분들은 자연스럽게 만족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낯선 환경에서 소극적으로 참여하는 이 사람이 단 10%라도 만족하며 돌아가 다시 모임에 나올 이유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첫 번째는 바로 '콘텐츠'입니다.
HUSTLE은 매달 주제를 바꿔 모임을 진행하는데요. 모임을 진행하는 모더레이터에게 딱히 거창한 규칙이 요구되는 건 아니지만, 되도록 해당 주제에 관한 본인의 경험과 배움을 작게라도 정리해 자료화하는 걸 일상적인 방식으로 가져가고 있습니다. 별도의 PDF 자료가 아니더라도 특정 주제에 대해 모더레이터 혹은 함께 참석한 이들의 자유로운 QnA 또한 훌륭한 콘텐츠가 됩니다.
회사 밖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나 시행착오를 공유 받는 것만으로도 1번의 참석이 2번 혹은 N번의 참석으로 이어질 명분이 됩니다. 특히, B2B 비즈니스 마케팅 실무자는 대체로 조직의 소수자에 속하는 경우가 많고, 이 때문에 사수나 회사로부터 알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으러 나오는 분들이 많은데요. 실제로 모임에 나와 열심히 뭔가를 노트 테이킹하신 다음, 실무에 적용해보고 다시 돌아와 본인의 배움을 공유하시는 분들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HUSTLE이라는 커뮤니티 자체가 저 개인이 시작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광고비 없이(?) 오직 브런치와 SNS 공유만으로 사람을 모아야 했습니다. 매번 제가 실무에서 경험하고 배웠던 것을 글로 적어 올리는 과정에서 콘텐츠가 자연스럽게 발생했고, 업무적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제 글을 찾아 들어온 분들이 멤버가 되는 선순환으로 이어졌습니다. 또 나름대로는 외부 채널(브런치, 링크드인)에 공유하는 자료와 커뮤니티 내부(채팅방, 오프라인)에서만 공유하는 자료에 선을 그어 두어, 이 커뮤니티에 '연결되어야만 할 첫 번째 이유'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운영 방식은 단순하게 말하면 '실명제'입니다. 사실 정말 많은 커뮤니티가 익명으로 운영됩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커뮤니티를 운영하게 되면 무조건 이름과 소속까지 공개하는 실명제로만 관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거기에는 2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심리적 안전감입니다. HUSTLE은 온라인 대화와 오프라인 모임을 병행합니다. 모임이 없는 날들은 온라인에서의 대화로 유지되는데, 텍스트는 휘발되기 쉽습니다. 이때 '이전에 내가 대화한 그 사람이 맞는지'를 명확하게 인지하는 게 관계 유지에 중요합니다. 익명이 주는 자유로움도 있겠지만, 저는 '내가 누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 때 더 유익하고 깊이 있는 정보가 오간다고 믿습니다.
두 번째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성악설(ㅎㅎ)' 때문입니다. 사람은 타인의 시선과 기대치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운 존재이기에, 제가 모든 걸 통제할 수 없다면 사회적 지위(소속과 이름)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를 포함해 누구에게나 별로인 모습은 존재할 수 있으니까요. 현재는 인원이 늘어 실명제와 레퍼럴(추천)을 통해서만 입장이 가능하지만, 초기 150명 정도는 모두 제가 직접 명함을 받아 입장시켜 드렸습니다. 호스트로서는 번거로워도, 이 방식 덕분에 이 커뮤니티에는 '검증된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참여하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프라인 모임 현장에서도 여러가지를 고려하는데요. 모임에 처음 오는 분이라면 호스트인 제가 먼저 기억하고 있다가 인사를 건네는 것부터, 자리 배치까지 고민합니다. 주도적인 분들(e.g. 스타트업 대표님들)은 어디에 계셔도 잘 어울리시지만, 처음 오신 분들은 호스트 옆자리 혹은 이 커뮤니티가 익숙한 분들과 섞여 앉을 수 있게 배치합니다.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모임을 진행하는 모더레이터 외의 사람들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연결되는지가 다음 모임에 그 사람들이 다시 올 이유가 될 수 있으니까요.
사실 'Pay it forward'라는 표현은 처음엔 몰랐고, 커뮤니티 '스여일삶' 운영자 분의 브런치에서 읽었던 'Pure Giver'라는 표현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제게 많은 귀감이 되었던 곳이기도 해요.)
HUSTLE을 시작할 때 저는 B2B 마케팅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었기에, 'Pure하긴 하지만 Giver로서 드릴 게 많을까'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콘텐츠가 중요했고, 누군가 먼저 손들고 공유하기 전까지는 호스트인 제가 마중물을 부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일하며 겪은 시행착오를 긁어모아 공유하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초반에는 공유할 게 없으면 아티클이라도 소화해서 매일 채팅방에 공유하는 루틴을 유지하기도 했고요.
글을 쓰고, 모임 주제를 정하고, 때로는 커피챗을 열어 사람들에게 시간을 쓰는 일. 지나고 보니 이 모든 게 Pay it forward의 과정이었습니다. 회사에서의 소속감이 희미해져 고민이 많던 저에게는, 이 과정이 새로운 소속감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바쁘게 지나쳤던 일을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위해 회고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은 호스트인 저를 가장 많이 성장시켰습니다. 이력서 한 줄로 끝나거나 실패로 잊힐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되는 값진 경험으로 변했으니까요.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세심하게 관리해도 관계는 드문드문해지기도 합니다. 여기에 '세일즈'까지 얹으려 한다면 훨씬 더 어렵겠지요.
그럼에도 커뮤니티 마케팅을 하고자 한다면,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호스트는 반드시 타겟하는 잠재고객과 같은 업무(포지션)를 하는 실무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혹 "회사에 마케터는 없지만 저희가 컨설팅을 하니 공감대가 있다"며 대표님이 직접 운영하려는 경우를 봅니다. 하지만 진짜 관계는 '동료 의식'에서 나온달까요. 마케팅 컨설팅 회사라면 마케팅 AE가 아니라 인하우스 마케터가, HR SaaS 회사라면 솔루션 영업 사원이 아니라 실제 HR 담당자가 리드할 때, 비로소 유의미한 관계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HUSTLE에서는 저와 함께 이 '학습하는 관계'를 만들어갈 공식 운영진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B2B 마케팅에 대한 Learning Share 활동에 관심이 있거나, 커뮤니티 운영에서 기쁨을 얻고 싶은 분이라면 지원서를 제출해 주세요. 연락 드리겠습니다 :)
모집 기간 : 2025년 11월 12일 ~ 12월 31일
지원하기 : ✅운영진 모집 신청 폼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