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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학자P Aug 07. 2020

나를 나답게 하는, 잠 못 드는 밤

나를 키운 8할은 불면의 밤들이다


 어제도 두근거리는 가슴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 이유는 단순했다. 생이 버거워서였다. 빨리 성공해서 은혜 갚고 싶은 이들도 많고, 나의 무대를 넓혀 외국에서 공부도 하고 싶고, 이제 8개월 된 아이가 있는 몸인지라 내 자식도 잘 키워보고 싶다는 등 온갖 간절함이 엄습해온 것이다.

 나는 꽤나 예민해서 마음에 고민이 있을 때에도, 기쁜 일이 있을 때에도 잠들기를 어려워한다. 물론 이 불면의 밤들이 나를 키운 8할임을 알고 있다. 이 밤에 잠을 자는 대신, 나는 책을 읽기도, 무언가를 공부하기도, 준비하고 '노력'하기도 했다. 그 덕에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늘 빠르게 인생의 미션을 해치워 온 자로 통했다.


 얼마 전 수어 년 만에 대학 친구를 만나고 왔다. 내가 이른 취업으로 학교 수업을 힘겹게 출석할 때, 내가 해보고 싶었던 교환학생이며 과 생활이며 대학생활을 알차게 해낸 친구였다. 친구가 스타트업을 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간 어찌 지냈고, 사업은 얼만 키웠는지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나는 말이 프리랜서지 사실상 공부와 육아를 병행하느라 정신없는 처지였다. 친구는 내게 소고기를 사주었다.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온 아이를 맡기고 나온지라 허겁지겁 먹으며 친구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친구는 굉장히 멋진 길을 가고 있었다. 사실상 비혼까지 선언한 상태였다. 사업이 커가는 재미에 밤잠을 잊은 지 오래라고 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탑스타들을 광고주로서 만나고, 해외시장으로 더 키워나가며 일반인은 접하기 어려운 많은 비즈니스 세계의 경험을 몸소 배워가고 있었다. 넓어진 그 친구의 세계는, 그저 건너 이야기를 듣는 나까지도 무척 자랑스러웠다. 다른 길을 가고 있는 나의 세계는 그 친구만큼이나 넓어질 수 있을지, 눈을 반짝이며 그간의 고생담을 들었다.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이렇게 진심 어린 호기심과 동경을 나 역시 받을 수 있을까, 그렇게 또 가슴이 두근거렸다. 결국 그 날 뜻 모를 들뜸에 역시나 뜬 눈으로 새벽을 맞았다.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봤다. 대학교 3학년 스물두 살이던 해에 누구보다 일찍 취업했고, 그로부터 5년 뒤 친구들이 취직할 무렵 일찍 번아웃을 경험했다. 그리하여 또 일찍 인생의 다음 단계를 준비해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모든 것이 경주마처럼 달려온 생이라 육아로나마 잠시 멈춘 듯한 나의 하루는 너무나 낯선 것이었다. 결국 또 쉼을 모른 채 석사를 따고 공부를 시작했다. 내게는 일종의 심폐소생술에 가까운 절박한 선택이었다. 그제야 다시금 조금씩 두근거렸다. 이 두근거림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다. 원하던 일을 하게 되었을 때에도, 그리고 좌절을 만났을 때에도 나는 줄곧 두근거렸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공부라는 길을 가고 있고, 육아와 줄타기를 하며 아슬아슬하게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요즘 들어 부쩍 두 가지 다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만 같은 긴장이 엄습해와 나를 불면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무엇 하나라도 해내려면, 무언가는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이어지는 고민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무엇을 포기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른다. 나는 내가 선택과 집중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경주마를 달리게 하는 것은 눈 옆으로 시선을 차단시킨 가림막 때문이라 믿어왔다. 오로지 목표물만 보고 달리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라 생각했다. 이 불면의 밤마다 나는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려고 버둥거리며 살아왔다. 나는 친구와의 만남을 곱씹으며 내가 포기해 온 것들을 생각했다. 뭐든지 빠르게 미션을 성공하면 될 줄 알았는데, 불어닥치는 생의 파도는 내 속도와 상관없이 쉬지를 않으니 의미가 없는 듯했다.


 그러나 이번 밤은 달랐다. 다른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포기하고 싶지 않아 졌다, 그 어느 것도. 이제 속도전 할 나이도 아니고.


 '이젠 얼마나 걸리든, 다 해보고 살자.'


 생의 언덕마다 늘 잠들지 못하는 내가 약하게만 느껴졌었다. 개복치도 이런 개복치가 없구나 싶었다. 스스로를 얕잡아봤다. 그러니 다른 것들을 쉽게 포기한 것도 사실이다. 문득 포기만 헤아려오던 나의 초점을, 해내고 싶고 누리고 싶은 것들의 목록으로 옮겨가 본다.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은 뜻 모를 용기로 자라난다.


 물론 오늘 밤도 내일 밤도 나는 같은 고민을 계속할 것이다. 생의 버거움에 허덕이며 절망을 그리다, 다시 희망을 발견하고 합리화하며 용기를 내려고 할 것이다. 이미 지나온 그런 밤들이 있었기에 나는 아직 살아있다. 그래서 그다음 날 행동을 했고, 여기까지 나의 생을 끌고 왔다.

 이앓이를 하는지 오늘 새벽잠에서 깬 아기를 토닥거리며 생각했다. 물론 엄마라는 이름 뒤에 숨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살아갈 많은 날들에서 네가 느끼게 될 두근거림이 엄마는 기대된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라.

그 밤이 너를 키운다.

나를 나답게 해준 잠 못 드는 밤 @무단복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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