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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정연 Dec 30. 2019

설득의 심리학, 설득당하지 않기 위한 방법들

로버트 치알디니의 책 설득의 심리학을 읽고, 나의 생각들.

   

   작년 말, 4학년 2학기의 끝무렵에 많은 조언을 얻고 가르침을 받았던 교수님이자 선배인 분께 [그동안 너 많이 나태했던 거 같아. 공부 좀 하고, 책 좀 읽어!]라는 쓴소리를 듣고, 지난 나의 나태함에 대한 반성과 뭔지 모를 끓어오르는 오기로 꾸준히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다. 그 후 지금까지 1년 동안 대학생활 내내 읽었던 것의 몇 배는 될법한 책들을 읽었다. 몇몇 책들은 자세한 서평을 적어놓기도 하였고, 간략히 나의 생각과 내용을 요약한 것들도 있다. 앞으로 책을 좀 더 오래 기억하고 공유하기 위해 그간 적어놓은 것들과 함께 책에 대한 리뷰나 독서록을 남기고자 한다. 그 첫 번째 기록이다.


 




[설득의 심리학]

[저자:로버트 치알디니]



   나는 디자인을 전공했고 지금도 공부 중이다. 디자인을 하는 데 있어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심리학에 대한 관심과 흥미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설득의 심리학 또한 그런 학구적 호기심 속에서 찾아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의 원제는 'Influence'로 영향력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처음, 책의 국문 제목을 들었을 때 설득자의 입장에서 '사람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설득시키는 촌철살인의 비법'이 들어있으리라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달리, 주로 피 설득자의 입장에서 '나를 부정한 의도로 설득시키려는 사람들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비법'에 가깝게 설계된 내용을 보면서 원제가 꽤나 적절한 단어를 골랐구나 싶었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살면서 내가 설득자들에 의해 어떤 영향을 받아왔는지, 그 영향으로 인해 어떤 행동을 왜 취해왔는지에 대해 낱낱이 설명해준다(물론 이를 통해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통찰을 얻기에 충분하다. 다만, 책의 전체적 흐름이 그렇다). 




실제로 책을 읽다 보면 그 영향력이라는 것의 막강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그 숱한 영향력에 매가리없이 줄곧 굴복해왔다는 사실이 뒤통수를 강하게 가격하고 지나가는 느낌이랄까. 그때의 그건 분명히 속은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에 분하기도 하고, 속아 넘어간 내가 참 어이없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그 모든 기제들이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단 1초도 하지 못했다니 놀라울 수밖에. 이렇게 꼭꼭 숨어서 나의 선택에 은근한 그러나 강력한 영향을 준,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여러 기제(법칙)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 법칙은 상대가 호의를 베풀면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게 된다는 상호성의 법칙. 두 번째 법칙은 사람들에게 일단 어떤 입장을 취하게 하면 그 입장에 자신을 끼워 맞춰서라도 일관성을 유지하고자 한다는 일관성의 법칙(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셋째는 흔히 군중심리로 이해하고 있는 사회적 증거의 법칙. 그다음 넷째는 호감이나 친분이 있는 상대에게는 더욱 설득당하기 쉽다는 호감의 법칙. 다섯째는 권위자에게 복종하려는 인간 심리를 이용한 권위의 법칙. 마지막으로 공급이 적을수록 그것이 제품이든 정보든 수요가 증가한다는 경제적 원리를 이용한 희귀성의 법칙이 있다.


느꼈는가? 이 책에서 저자가 우리들이 설득자에게 '네'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던 책략으로 꼽은 이 여섯 가지는 사실 우리가 학술적 전문 용어를 몰랐을 뿐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다. 잘 뜯어놓고 들여다보면 특별한 내용이 조금도 없는 책이기에 누군가는 책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야말로 이 책의 강점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아는 것이 힘이며,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정확히' 아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다양하지만 쉬운 예시를 통해 아주 탁월하게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다만 책을 읽으며 조금 아쉬웠던 것 하나는,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이 책략들에 대한 방지 전략이 '주의를 기울입시다' 정도의 뻔하고 원론적인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대로 맞는 말이며 지당한 전략이기는 하나 빠르게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에 주의를 기울이기란 참 쉽지 않아 보인다. 


그 시점에서 나는 넛지에서 이야기하는 행동경제학 속의 해결책인 '선택설계(인간이 다소 직관에 의존해 깊은 생각 없이 선택해도 그 결과가 최대한 경제적으로 이롭도록 default 값을 설정하는 것)'가 떠올랐다. 저자인 로버트 치알디니의 잣대가 행동경제학의 분석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두 시각 모두 인간의 자동화된 행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앞에서 소개했듯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기제에 반응하는 자동화된 행동을 통해 어떻게 이용당하지 않을 것이며 어떻게 유리하게 활용할 것인지가 이 책의 주제이다. 행동경제학에서도 인간이 경제적 인간으로 분해, 이성적으로 여러 경로를 거쳐 판단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직관에 의존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저자가 이야기하는 자동화된 행동과 행동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직관은 거의 같은 개념으로 봐도 무방할 텐데, 저자가 내놓은 심리학적 방지 전략의 맹점에 대한 경제적 보완책으로 '선택설계'가 고안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그 방지 전략에 있어서는 다소 아쉬운 감이 있었지만, 우리가 그동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굉장히 과소평가하고 있던 설득의 기제들, 그리고 그것의 막강한 영향력에 대해 여실히 일깨워준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서문에 쓰여있던 어떤 독자의 [이 책이 얼른 절판되었으면 좋겠다, 이 모든 내용을 나 혼자만 소유하고 싶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정말이지 그 모든 영향력에 대한 지식을 혼자만 끌어안고 싶다. 오로지 나 혼자서만 그 영향력을 손에 쥐고 흔들고 싶은 욕심이 자리한다. 


그러나 지금 이 책을 소개하는 나는 그 욕심을 잠시 꺾어두고 작은 아량을 베풀기로 했으니, 글을 읽고 있는 그대들은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이 책을 들여다보기를 권한다. 그동안 속아왔던 숱한 사건들이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올지 모르나, 사람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주고 또 받는 인과관계에 대하여 그만큼의 통찰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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