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솜씨 Sep 25. 2020

기분 그대로의 그림

(c)손현정 | 손솜씨


“작가님~ 예전에 하셨던 작업 중에서 이런 스타일과 비슷하게 부탁드려요.”


작업이 들어왔다. 레퍼런스도 나의 예전 그림이다.

비슷하게 그려내기만 하면 되는데 결과적으로 나는 또 다른 그림을 그려냈다.


“아. 너무 고생하셨는데 조금 더 밝고 명랑한 분위기로 해주실 수 없을까요? 그때 말씀드린 그 그림처럼.....”


자신도 모르게 그리 되어버려 조심해야 하는 자기 복제도 못하는 바보 같은 인간. 그게 바로 나다.

기분이 그대로 드러나는 내 그림 때문에 나는 당혹스럽다. 어째서 일에 감정이 자꾸 실리는지.

그렇다고 영혼 없이 감정 없이 그리면 작가가 아니라 그림공장이 된 거 같아 우울해진다.


사실 클라이언트들이 말하는 ‘그때 그 그림’은 그때 그 순간만 나올 수 있는 그림이다. 비슷하게는 그릴 수 있지만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또 그림은 보는 사람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다르기 때문에 클라이언트의 ‘좀 더 밝고 명랑하게’라는 코멘트가 내게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해질 수도 있다. 클라이언트가 흡족해할 정도의 밝고 명랑하게는 하트 백개 정도를 그림 속에 박아 놓는 것일까? 아마 클라이언트 자신도 모를 것이다.


손작업 -어느 정도 수정은 가능하나 고칠 부분이 많아지면 그냥 다시 그리는 편이 수월한-을 하기 때문에 방심하거나 반대로 너무 긴장을 하면 안 하던 짓, 하면 안 되는 짓을 하기 십상이다. 나도 오늘 그리는 그림이 내 평생 ‘처음 그리는 그림’이지만 ‘그림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되기로 한 순간 그런 말은 다 변명이란 걸 안다.


아 결국 심각해져 버렸네. 고작 그림 한 장 때문에.

오늘도 기분 그대로의 그림이 그려질 확률 200%!!!




작가의 이전글 U U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