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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na Jan 28. 2020

연휴 끝나고 화요일에 주세요

광고회사 일기 #3

광고회사 특 : 연휴에 못쉼.


설 연휴가 끝났다. 많은 광고회사들이 지금쯤 제안서든 보고서든 제출을 하느라 바쁠 테다. 연휴가 끝난 직후, 광고회사가 바빠지는 이유는 바로 광고주 때문이다.


"대리님,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연휴에 푹 쉬시고 연휴 끝난 다음에 제안서 보내주세요!"


얼핏 들으면 어쩜 이렇게 착한 사람이 다 있을까 싶을 수 있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도 받았고, 연휴에 푹 쉬시라고도 했다. 말만 들어도 좋다. 하지만 예쁘게 말한다고 예쁜말이 아니다. 



건마다 규모마다 다르겠지만 제안서를 만드는데에는 못해도 일주일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루 아침에 뚝딱 나오는 게 아닌 만큼, 연휴가 끝난 뒤 바로 제안서를 보내주기 위해서는 연휴 출근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그 말인 즉, 저 말은 절대 예쁘지 않은 말이라는 뜻이다. 


연휴 끝나고 1~2일 이내로 보내달라는 말 속에는 자기 쉴거 다 쉬고 출근했을 때 딱 볼 수 있게 해달라는 저의가 느껴진다. 그게 얼마나 이기적인 부탁인지 모르는 광고주가 많다. (아? 알고도 그러는건가?) 그래서 오늘도 광고회사는 연휴가 없다. 휴가 한번 제대로 써본 적도 없는데 연휴까지 없애지는 말자. 광고인의 원한을 사게 될 것이다.


한번은 12월 30일. 종무식을 앞둔 시점에 1월 3일까지 제안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도 있었다. 웬만하면 거절했을텐데, 오랜 광고주인데다가 규모가 작지 않아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어쩔수 없이 제안을 준비하던 12월 31일. 제안서를 쓰다가 별안간 조용하던 팀장님이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5, 4, 3, 2, 1. 맞다. 그렇게 우리는 제안서를 쓰며 제야의 종소리를 들어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제야의 종소리였다. 매년 새해 나이먹는 일은 싫지만 이렇게 싫은 새해 첫날은 처음이었다. 어느정도냐 하면 그 종 속에 광고주를 넣어놓고 싶었다. 나름대로 재미있는 추억이긴 했지만 다신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기도 하다. 맨날 보는 사이인데, 특별한 날 만큼은 안보면 안될까요? 주님!!


그래도 다행인건, 요즘 들어 이런 갑질행태가 많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이다. 내 경우에는 올해 7년차인데, 처음으로 연휴에 쉬었다. 물론 이벤트 모니터링을 해야해서 완전히 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게 굉장히 놀라웠다. 정말 긍정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 더 많은 범위에서 광고주와 광고회사간 상호 존중의 문화가 개선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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