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제목과 포스터를 보고는 세 자매의 우애에 관한 내용이라고 짐작했다. 보고 나니 그런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세 자매의 상처에 관한 이야기였다. 세 자매 모두 분명 모난 구석이 있지만 마냥 밉지는 않았다. 실제로 세 자매가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았다. 사실 보는 내내 마음이 심란했다. 세 자매가 내게 꺼내기 힘든 비밀을 이야기해 준 것같이 마음이 무거웠다.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물음이 떠올랐다. 계속 곱씹고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그래서 영화를 볼 생각이 없다는 몇몇 사람들에게 스포해도 되는지 동의를 받고 영화 이야기를 했다. 처음엔 소개하는 게 서툴렀지만 점점 말할수록 머릿속에 레퍼토리가 생겼다. 처음에 영화를 볼 생각이 없다고 했던 사람이 나의 말을 듣고 '오 재미겠다. 한번 봐야겠는데?'라고 했을 때 뿌듯했다. 그래서 이렇게 리뷰까지 쓰게 되었다.
영화에 대해서 말할 것 같으면 일단 스토리는 심플하다. 세 자매 캐릭터를 집중 조명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기 때문에 편안하게 그 흐름을 따라가면 된다. '어떻게 저런 부분까지 신경 썼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장면 하나하나 묘사가 대단했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섬세한 연출 덕분에 더욱 몰입이 됐다. 그리고 이미 여러 번 증명된 배우들의 연기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마지막에 나온 OST도 그 장면과 참 잘 어울렸다. 개인적으로 스토리, 연출, 연기, OST 모두 맞아떨어진 영화인 것 같다.
영화 포스터
이 영화는 첫째 딸 희숙, 둘째 딸 미연, 셋째 딸 미옥 캐릭터를 중심으로 영화가 흘러간다. 영화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세 자매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들은 각자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한 명씩 캐릭터를 살펴보자.
첫째 딸 희숙에겐 밖으로만 나돌아 다니고 자신을 무시하는 남편과 너무 멀리 가버린 것 같은 비행청소년 딸이 있다. 둘 다 희숙에게 맡겨놓은 것처럼 돈을 가져가고 구박을 한다. 전혀 가족 같지가 않다. 차라리 남이 훨씬 나을 것 같다. 바보같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지 같아서 미안하다’라는 말을 버릇처럼 할 정도로 위축되어 있다. 외로운 희숙은 암에도 걸렸다. 그리고 자해를 하면 마음이 좀 편해진다고 말한다. 미연이나 미옥은 나름대로 분출을 하는데, 희숙은 자신을 괴롭히며 위안을 얻으니 더 짠하다.
둘째 딸 미연은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남편은 대학 교수고,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다. 교회 성가대 지휘자로서 착실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남편은 성가대원 효정과 바람을 피우고 있다. 미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이 일상을 지키려고 한다. 다만 다른 사람들 모르게 효정을 다치게 했다가 사람들 앞에서는 그녀를 걱정해준다.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가식적이다. 그럴수록 점점 더 교회와 기도에 집착을 하는 모습이다. 친정 식구들과 가족 행사를 챙기는 것도 미연의 몫이다. 안간힘을 써서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다. 미연이 크게 잘못한 건 없어 보이는데 상황이 참 가혹하다.
셋째 딸 미옥은 글을 쓴다더니 매일 술만 마신다. 예술한다는 것을 무기로 누구에게든 본인 감정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고, 심지어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고등학생 아들이 있는 남자에게 시집을 갔는데 아내 역할도 새엄마 역할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초대도 안 한 학부모 상담에 가서 행패를 부린다. 또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는 미연에게 전화를 걸어 ‘언니 우리 어렸을 때 갔던 식당 기억나?’하면서 고구마 100개를 먹인다.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최고의 맥커터다. 어떻게 보면 아직은 덜 큰 생떼 부리는 어린아이 같다. 근데 방법을 모를 뿐 새엄마 역할을 잘하고 싶어 한다.
이들은 왜 이런 문제들을 얻게 됐을까? 영화는 아버지 생일 가족 식사를 기점으로 분위기가 급격히 바뀐다. 그 사건은 막내아들 진섭이 아버지에게 소변을 누는 것이다. 이게 무슨 괴기한 일인가 싶었다. 그 순간부터 세 자매가 모두 폭발해서 자기들끼리 싸운다. 그러다가 그들의 분노는 모두 한 사람을 향한다.
후반부에는 그들이 왜 이런 성향을 가지게 됐는지 설명해준다. 세상에 문제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이들은 모두 큰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어린 시절은 너무나 불행했다.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이복 남매 희숙과 진섭은 맞았고, 미연과 미옥은 항상 불안에 떨었다. 어머니도 같은 피해자이자 방관자였고, 이들을 도와주는 어른들도 없었다. 오죽하면 미연이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버지 빼고 우리 가족 모두 죽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했을까. 이런 어린 시절의 경험이 희숙에게는 위축된 삶을, 미연에게는 가식적인 삶을, 미옥에게는 미성숙한 삶을 살게 만든 것 같다.
세 자매가 바라는 것은 아버지의 사과다. 이제 와서 사과를 받는다고 지난날의 일이 없던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과를 받는 행위 자체가 상처에 약을 발라주는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상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고리를 끊어내고 새롭게 나아갈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아버지는 사과를 하지 않고 유리창에 이마를 찧는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고 또 그런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해결된 건 없지만 그래도 의미는 있어 보인다. 그들은 상처를 가진 채 어린 시절의 불행한 기억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그 상처를 제대로 마주하고 감정을 표출했다. 그리고 각자 서로의 가진 상처를 모른 척하면서 살아왔지만, 그들은 이제 함께다. 과거에 얽매어 있었지만 이제 함께 앞으로를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세 자매의 삶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장면처럼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면서 우애 좋게 살아갈 것 같다. 처음에 내가 포스터를 보고 짐작한 내용처럼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아버지에게 꼭 사과받아서 마음이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이제 조금은 편안하게 살아요, 세 자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