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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단 정선옥 Sep 28. 2024

우리 집 선산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아무래도 5년 전에 잘못한 거예요!”

작은 집 서방님의 목소리에 노여움이 배어있다.

“맞아요. 돈만 버린 것 같아요” 나는 옆에서 맞장구를 쳤고

“그래도 벌초일이 절반은 줄어서 훨씬 편해졌어.” 남편이 중도의 입장을 드러낸다.

추석연휴에 시댁 밥상머리 대화 중 한 대목이다.


 삼십여 년 전에 처음 찾아갔던 선산은 권위 같은 게 느껴졌다. 제사를 지내고 차로 1시간 정도 달려와서 황금빛 논을 지나 작은 마을로 들어서면 아스라이 저 멀리 봉긋봉긋 솟아있는 선산이 보인다. 

조금 더  차로  꼬불 꼬불 논길을 돌아 들어가면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작은 양옥집이 보이고 앞마당에는 작은 수도와 돌의자도 마련되어 있다.

제사를 일찍 마치고 4촌, 5촌, 6촌 어르신들이 커피도 마시고 과일도 드시면서 아직 도착하지 못한 친척들을 기다리고 앉아계신다.

주방에도 집안 여인네들이 모여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적당히 주방에서 왔다 갔다 하며 비슷한 나이의 사촌 동서와 할 일없이 수다를 늘어놓는다. “개성*씨세천비“라고 새겨진 비석이 서있는 입구를 통과하면 오른쪽으로는 밤나무가 왼쪽으로는 감나무가 서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십여 개의 묘지가 나타난다.


아이들 기준으로 고조할아버지부터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까지 3대가 묻혀있는 선산은 오래전에 자손들이 돈을 모아 공동 구입하고 함께 관리하고 있다. 오랜동안 흑석동 큰 할아버지님이 자주 오시면서 관리를 하셨고  집안 남자들이 일 년에 한 번 모여서 벌초를  한다. 남편은 벌초만 다녀오면 끙끙 앓는다. 하루 종일 기계를 메고 풀을 깎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돈을 걷어서 풀을 베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작은 공원 정도의 크기라  상당한 비용이 들고  핑계삼아 서로 얼굴도 보고 그런것같다.


거의 매일 오셔서 이 것 저것 손을 보던 큰 할아버님이 5년 전에 돌아가시면서 선산은 눈에 띄게 어수선해졌다. 앞마당은 잡초로 덮였고 사람이 살지 않는 가전들은 먼지가 쌓여가고 화장실에서는 더 이상 샤워하기가 꺼림칙해지기 시작했다.

연이어 5촌 당숙, 6촌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서 집안 어른들 중에 작은 아버님만 남으셨다.

작은 아버님이 선산 옆에 주말 농장 식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관리하셔서 선산은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년에 한번 벌초 때는 남자들 십여 명이 모여 일을 하지만 손자 세대에서는 딱 두 명만 참가하고 있다.  

큰 아주버님댁 큰 아들과 작은아버님댁 손자가 함께 와서는 일손을 보탠다.

그러나  벌초만으로는 선산 관리는 불가능하다.


5년전 큰 할아버님이 돌아간 신 후에 선산 관리 대책들을 논의했고 묘지들을 한쪽으로 이장해서 벌초일을 줄이는 쪽으로 추진됐다.

그 당시에도 납골당 이야기가 거론됐지만 작은 아버님의 강한 반대로 불가능했나 보다.

결론적으로 묘지의 면적을 줄인 것은 크나큰 실패였다. 예전 묘지 자리가 풀이 무성한 공터로 전락하고 대부분의 손자 세대들이 참가하지 않으면서 벌초는 또다시 문제가 되고 있다.  군다나 몇달전에 집안의 마지막 어르신이었던 작은 아버님마저  돌아가시면서 납골당을 강하게 주장하던 아들세대들의 반발이 터져 나온 것이다.  


”승아! 매해 고생이 많네 다른 집 아이들은 아무도 안 오는데 혼자서 애쓴다”

이제 서른이 다 된 큰 손자에게 말을 건네본다.  

저도 어쩔 수 없이 오는 거예요. 아버님 돌아가심 안 올 거예요” 승이는 쳐다보지도 않고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러니까 승이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선산이 아니라 다른 지역의 납골당으로 부모님을 모실 거라고 한다.


헐!

해마다 꼬박꼬박 와서 성실하게 어른들 뒷수발들던 녀석이 이런 맘을 먹고 있었다니...

속으로 많이 놀랐지만 내색은 할 수 없었다.

하긴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우여곡절 끝에 납골당으로 바꾼다고 해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이 남아있다. 납골당 주변 관리와 양옥집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고 납골당 자체의 관리는 누가 한단 말인가? 아들세대까지야 가능하겠지만  손자세대들은 서로 각자의 얼굴도 모르는 사이다.

돈을 들여 납골당으로 바꾸고 공원처럼 꾸며준다 한들 손자들이 서로 공동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난감한 일이다.


선산 입구 감나무에는 감이 주렁주렁 열려있다.

그 옆에 공터로 전락한 곳을 트랙터로 확 밀어내고  

탁구대도 놓고 예쁜 파라솔도 설치하고 캠핑도 할수있게만들어서  힐링 할 수있는 공간이 되면 좋을텐데..

꿈같은 일이겠지?

돌아오는 명절에는 장갑이라도 가지고 가서 풀이라도 뽑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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