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예윤 Jan 21. 2022

재즈피아노 일기 #1

재즈피아노를 배운 지 이제 9개월 정도가 되었다. 몇 회차를 들었는지는 안 세봐서 모르겠지만 일주일에 한번은 거의 무조건 들었으니 꽤 많은 시간을 들인 셈이다. 화성학 기본부터 재즈 스탠다드 곡들과 재즈 그 주변에 있는 곡들의 연주까지 다양하게 레슨을 받았다.

 초반엔 이론을 배우고 간단한 곡들을 치다가 언젠가부터 연주곡을 치게 되었는데 연주라는 걸 하게 되면서 레슨의 느낌이 조금 바뀌었다.

 피아노 선생님은 내가 곡을 칠 때 연습이 아닌 ‘연주’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칠 것, 충분히 감정을 잡고 시작할 것, 여운이 피어오른 뒤 잦아들 수 있을 만큼 여유롭게 끝을 낼 것을 강조하시는데 그 세 가지 포인트만으로도 곡이 엄청나게 달라진다.

 첫 번째 포인트는 ‘연주’를 할 것인데, ‘그래 나는 연주하는 거야.’ 하면서 시작을 하고 끝을 내는 건 마음만 먹으면 되지만 그 긴장감을 중간에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 연습이 아니라 연주라는 걸 악보를 따라가며 치다보면 까먹었다가 마지막에 다다랄 때쯤 깨닫고 다시 마음을 고쳐먹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 포인트는 감정에 대한 것인데 마치 연기에 몰입하듯이 무드를 잡고 시작해야 한다. 내가 연습하고 있는 김광민의 ‘Goodbye Again’의 경우 나는 한 번 헤어진 연인과 이젠 정말 이별해야 했던 상황을 떠올리면서 감정을 잡곤 한다. 세 번째는 여운을 남기는 것인데 조금 느려지면서 신중하게 피아노 건반을 누르면 웬만큼은 여운이 생긴다. 그러나 터치의 미묘한 세기라던가 페달의 조절,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적절한 타이밍에 건반에서 손을 떼는 것이 어렵다.

 이외에도 몇 가지의 포인트가 있다. 무엇보다 몸이 앞으로 쏠리면 안 된다. 빌 에반스처럼 칠 게 아니라면 일단 피아노와 나 사이의 간격을 어느정도 두고 쳐야 한다. 근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워낙 몸이 경직되어 있고 뭐든 열심히 하는 게 습관이 돼서 그런지, 자꾸만 몸이 피아노 앞으로 붙으려고 한다. 여유롭게 해야 한다.

 그리고 속으로 노래를 부르며, 호흡을 길게 잡고 피아노와 함께 숨을 쉬며, 손짓과 몸짓은 마치 춤추듯이 쳐야한다. 손과 몸과 표정으로 연주를 도와주듯 연기를 해내야 하는 것이다. 감정을 표현할 때에는 내가 ‘이건 좀 과장하는 것 같은데’ 하는 수준보다 훨씬 더 많이 표현해야 듣는 사람에게까지 전달된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악보가 충분히 숙지가 안되었다면 감정이 휘몰아칠 때 미스노트가 많이 생길 수 있으니 악보가 거의 다 외워질 만큼 많이 치는 것이 또 중요하다.

 성인이 된 후로는 처음으로, 아주 오랜만에 피아노 레슨을 받다보니 적잖이 충격을 받은 부분들이 있었는데 감정을 표현을 ‘해도 된다’ 는 것이었다. 언제나 감정을 꾹꾹 누르기만 하다가 감정을 펼쳐 보여줘야 하는 상황에 놓이니 충분히 이완이 안 되어서 어느 날은 감성적인 곡을 행진곡처럼 치기도 하고 그보다 가끔 있는 어느 날은 거의 피아노로 통곡을 하느라 잘못된 음을 마구 짚기도 했다. 어쨌든 아마추어 재즈피아니스트로서 피아노 앞에서 나는 감정을 아낌없이 보여줘야 하는 사람이 된 셈이고, 그게 어떤 면에서는 내 절망에 대한 해답이 되어줬다고 믿는다. 음악을 듣고 때로 만드는 것이 (나는 고등학교 땐 가끔 피아노 곡을 만들었다) 청소년기의 내게 구원이 되어줬듯이, 일주일에 한두번 피아노를 배우고 치는 일이 내게 숨 같은 존재가 되어주고 있다.

keywor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