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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 Feb 06. 2021

잘 가 내 핸드폰아

전 핸드폰을 위한 헌정글

핸드폰을 바꿨다. 4년 만에 드디어.


기계에 별로 관심이 없기도 하고 전화 걸고 받고만 잘되면 되지라는 주의라 더 오래 쓰고 싶었는데, 스마트한 면모는 다 사라지고 정말 전화 걸고 받고만 잘되는 순박한 폰이 돼버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핸드폰을 구매했다. 사실 어쩔 수 없는 것 치고 어떤 핸드폰을 살지 이것저것 따져보느라 1년은 넘게 고민했다. 결국 새로 산 건 이번에 나온 갤럭시 S21 플러스. 핸드폰 뒤통수에 너도 나도 점점 늘어나던 카메라 사이에서 심플하게 ‘카메라는 원 앤 온리지’를 고집하던 내가 드디어 카메라가 무려 세 개나 달린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셀카를 찍을 때 못생김이 지나치게 세밀하게 나와 약 세배 정도 더 놀랐다.


나는 뭐든지 좀 오래 쓰는 편이다. 항상 잘 관리해서 마치 최근에 산 듯한 새것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건 아니고 이 정도면 좀 버리라고 할 정도로 너덜너덜할 때까지 쓰는 편이다. 그 전 핸드폰도 4년 정도 썼었는데 그때도 친구들이 제발 좀 바꾸라고 더 아우성었다. 생각해보면 이제는 핸드폰을 오래 쓰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은데 그때까지만 해도 다들 약정 기간인 2년을 채 못 채우거나 약정 기간이 끝나면 바로 새 핸드폰으로 바꾸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내 핸드폰과 나는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누구보다 빠르게 구린 핸드폰이 그리고 그 구린 핸드폰을 가진 놈이 되어버렸다.


그 핸드폰을 오래 쓴 이유는 (딱히 미련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전 남자 친구와 커플폰이어서 추억이 많기도 했고 4년을 썼지만 맷집 하나는 기가 차게 좋아서 아무리 험하게 굴려도 AS 센터 방문 한번 없이도 쌩쌩하게 모든 기능을 소화하던 핸드폰이었다. 그 씩씩한 모습이 참 좋았다. 그리고 술 먹고 하루아침에 잃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바꾸게 된 게 아이폰 7이었다. 그전에는 갤럭시를 쓰고 있던 터라 아이폰에 대한 약간의 선망이 있었는데 왜 뭔가 힙해 보이고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누리끼리해서 약간 감성적으로 찍히는 것 같은 카메라도 좋았고 애플 특유의 깔끔한 디자인과 얄쌍하고 아담한 크기가 좋아서 선택했다. 하지만 힙해 보이는 건 힙한 사람이요 힙한 소품을 들고 있어도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 친구와도 4년을 함께한 건 그 전 핸드폰의 씩씩함을 이어받았기 때문이었다.


2년 약정으로 아이폰 7을 사고 일주일이 지났을까. 나는 퇴근길에 닫혀가는 지하철 문 사이로 날쌔게 뛰어들었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내 아이폰이 코트 주머니에서 깡충 튀어나와 지하철 문틈 사이로 퐁당 떨어졌다. 문 주위에 서 있던 승객들이 일제히 ‘헉’했다. 난 ‘힙’하고 싶었는데.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바로 지하철에서 내려 밑을 확인하려 했지만 스크린도어 때문에 밑을 전혀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위 사무실로 올라가 역장님에게 발을 동동 구르며 도움을 청했고 역장님은 지금 당장은 지하철이 운행 중이니 확인할 수 없고 새벽 1시가 지나고 역을 청소할 때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엄마 핸드폰 번호를 비상 연락망으로 적어두고는 나는 핸드폰 없이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일주일밖에 안됐는데 지하철에 떨구다니. 약정이 이제 시작인데 거기에 액정 수리비까지 내야 한다니.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다음날 새벽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핸드폰을 떨어트린 그 역으로 달려갔고 역장님에게 내 핸드폰을 건네받은 순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물론 보호필름이 붙어 있긴 했지만 철도에 떨어트린 건데 액정이 안 깨졌다니. 내 아이폰은 정말 말끔하게 처음 모습 그대로였다. 아이폰은 약하다고만 들었던 전 갤럭시 유저는 믿을 수 없이 기뻤다. 돈 굳었다! 나는 그날 이 핸드폰과 오래오래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오래 쓰다 보니 작동하지 않는 홈버튼과 저절로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하고 모든 어플의 알람이 들리지 않는 상태가 돼버렸다. 어쩌면 그때 떨어트린 충격의 여파가 이제야 왔던 걸까. 오래오래 함께하자던 마음은 식었지만 적어도 술 먹고 잃어버리진 않았다.


그 후 나는 삼성 페이가 너무 쓰고 싶어서 다시 갤럭시 유저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번에 나온 갤럭시 S21는 디자인도 내 마음에 쏙 들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사전 예약을 하고 설레발을 떨며 매장에서 핸드폰을 받아왔다. 그리고 정확히 3일 후 그리고 주문했던 핸드폰 케이스가 배송되기 딱 하루 전 나는 또 내 핸드폰을 떨어트렸다. 정확히 핸드폰 위 오른쪽 모서리와 핸드폰 아래 왼쪽 모서리에 공평하게 생채기가 났다. 나는 그날 주위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소리 내진 못하고 가슴으로 몰래 엉엉 울었다.


어쨌든 지금은 케이스를 끼고 조심조심 새로운 핸드폰과 친해지고 있다. 이전 폰들과는 격이 다른 무게에 손목이 약간 시큰할 때도 있지만 역시 큰 화면이 주는 시원시원함이 남다르다. 새로운 핸드폰도 이전 핸드폰들과 같이 씩씩함을 이어받아 나와 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술기운에 잃어버린다거나 지하철에 떨어트린다거나 하는 실수는 하지 않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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