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동생의 아들 이현이가 벌써 돌을 맞아 어제 온 가족이 정말 오랜만에 한데 모였다. 사촌 동생이 행복한 새 신부가 되어 식장에 입장하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이모는 할머니가 되었다니, 뭐든지 느린 나는 이 정신없이 빠른 시간을 따라잡기가 참 어렵다.
뭐가 그렇게 살기 바빴는지 나는 이현이가 태어날 때도, 100일 때도 찾아가지 못했고 항상 영상통화나 카톡으로만 사촌 동생과 아이의 안부를 묻곤 했다. 사진으로만 봤던 이현이는 어린이 티가 제법 나는 것 같이 커 보였는데, 실제로 본 이현이는 그렇게 자그마할 수가 없었다. 너무 작아서 내가 몰래 코트 안에 숨겨 서울로 데려와도 모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처음 마주한 이현이에게 잘 보이고 싶어 온갖 재롱을 부리고 있었는데, 사촌 동생이 “처음 보지? 이도 아줌마야 인사해.”라며 이현이의 고개를 억지로 숙여 나에게 인사하게 했다. 아줌마라니, 볼에 바람까지 넣고 심하게 재롱을 부리고 있던 나의 행동과 아줌마라는 호칭 사이의 간극에 나는 순간 잔뜩 무안해졌다.
5촌 관계인 이현이와 나는 공식적으로 서로를 외당숙, 외종질이라고 부르는 사이가 되었다. 편하게는 5촌 아줌마, 5촌 조카로도 부르니 나는 이제 이현이에게 이도 아줌마가 된 게 맞다. 아니 맞긴 맞는데, 얼마 전까지 언니 동생이라 불리던 사촌 동생과의 관계에서 갑자기 아줌마라니. 내가 아줌마라니!
모든 게 그대로인 우리 집에선 나는 아직 새로운 호칭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나는 변함없는 둘째 딸이고, 아직 새 신부나 엄마가 되지 않았고, 친언니와 동생도 아직 가정을 꾸리지 않았으니 누구의 이모나 고모가 되지 않았고, 그 덕에 우리 부모님도 아직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인데 주위 사람들의 호칭이 변하니 나의 호칭도 저절로 변하거나 아예 새로운 호칭을 가지게 된다.
일찍 결혼해 아이를 낳은 친구를 통해 이모라는 소리를 듣기 시작하긴 했지만, 그 호칭도 익숙해 진지 몇 년 지나지 않았는데 아무 준비 없이 5촌 아줌마가 되어 버린 나라니. 뭔가 한 것도 없이 아줌마가 되어버린 것 같아 억울한 마음이 들다가도 또 누구의 아줌마도 아닌 이현이의 아줌마가 되었다는 건 꽤 마음에 든다.
시간이 흘러 저절로 먹어지는 나이만큼이나 새로운 호칭들도 저절로 오게 되는 것들이 많다. 딱히 내 노력으로 얻은 게 아니니, 그에 맞는 책임감도 별로 없는 게 사실이다.
나는 아직 그대로다. 5촌 아줌마로 승격한 나는 여전히 당당하게 이모에게 오랜만에 왔는데 고기반찬을 해달라며 떼를 쓰고, 혹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지 못해 속상해할지 모르는 부모님에게 손자 못지않은 철없음으로 나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상기해주고, 이현에게는 돌잡이 때 돈을 잡을 것을 강요하며 부자가 되어 이 5촌 아줌마를 먹여 살려달라는 너스레를 떨고 왔다.
가족의 확장만큼 모두를 기쁘게 하는 변화가 있을까. 이현이라는 너무나 자그마한 존재가 우리에게 선물해 준 끊이지 않는 웃음과 큰 행복을 생각하면 그 존재가 가히 경이롭다.
하지만 무언가 새로 생겨나는 것만큼 이미 남아있는 것들이 너무 빠르게 변한다는 것을 자주 느끼는 요즘. 5촌 아줌마보단 사촌 언니의 역할을, 엄마보단 딸의 역할을 조금 더 하고 싶은, 몸만 커버린 어린이의 마음이 아직 남아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