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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cat Jul 15. 2021

한국호랑이의 대부, 문재인 대통령

오스트리아 쇤브룬동물원과 시베리아호랑이 보전

들어가며. 문재인 대통령의 오스트리아 국빈 방문


2021년 6월 14일 쿠르츠 총리 (왼쪽)와 문재인 대통령 (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쇤브룬 궁전 공식 오찬. 사진출처: BKA / Dragan Tatic

한국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6월 11일부터 13일까지 영국에서 개최된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 초청국 자격으로 참가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영국, 오스트리아, 스페인 등 유럽 순방에 나섰다.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오스트리아를 국빈 방문했는데, 의전, 오찬, 선물 등이 연일 화제였다. 1892년(고종 29) 오스트리아와 조오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이래 한국 대통령 방문은 처음이다. 이번 방문에서 한국과 오스트리아는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하고 '이중과세방지협약 제2개정의정서'를 체결하는 등 성과를 남겼다. 그리고 더불어 관심을 끄는 대목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린 시베리아호랑이 '페페(Pepe)'의 후견인이 되었다며 큰 경사로 보도된 일이다. '후견인'이란, 역량이나 능력이 부족한 사람의 뒤를 돌보아 주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종교적으로는 대모(代母)나 대부(代父)라고 부르기도 했다. 도대체 호랑이의 후견인이 되다니 무슨 일인고 하니, 오스트리아 제바스티안 쿠르츠(Sebastian Kurz) 총리가 지난 6월 14일 쇤브룬궁에서 열린 공식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호랑이 후원증서와 쇤브룬동물원 무료입장권 100매를 증정했다고 한다. (문대통령, 오스트리아 쇤브룬 궁 호랑이의 후원자로 | 연합뉴스 (yna.co.kr) )


그 의미는 무엇일까?

한 국가 수장을 어느 날 갑자기 어린 호랑이의 후견인으로 만든 외교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멸종위기종 보전이라는 관점을 중심으로 자세하게 풀어본 오스트리아 총리의 메시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1. 시베리아호랑이 '페페'는 누구인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호랑이, '페페'는 누구일까. 쇤브룬동물원 홈페이지에서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페페'는 이제 두 살이 된 젊은 수컷 시베리아호랑이로 리스본동물원에서 왔습니다. 유럽 보전번식프로그램 일환으로 쇤브룬동물원에서 사육하고 있는 암컷 '이나'와 짝을 맺어주기 위해서입니다.
(동물원 책임자, Stephan Hering-Hagenbeck)

'페페'와 '이나'는 당분간 분리된 상태로 지내며 단계적으로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페페'는 키가 약간 더 크고, '이나'는 더 가벼운 털과 짧은 주둥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육사 Andreas Eder)

라고 페페와 이나를 구별하는 법을 알려줬다.



쇤브룬동물원은 오랜 기간 시베리아호랑이를 매우 성공적으로 사육해왔다. 때문에 유럽 아무르호랑이 혈통대장 코디네이터(프로그램 조정자)는 하나의 혈통이 유럽 동물원 내에서 우세하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쇤브룬동물원에서의 번식을 수년 동안 중단시켜 왔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쇤브룬동물원에서 보전을 위한 번식이 실행되는 것이다. 동물원 책임자는 "이제 '이나'의 유전자는 다시 동물원 호랑이 개체군에게 매우 가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손들과 함께 행복할 것입니다."라며 반겼다. (https://www.zoovienna.at/de/news/neuer-tiger-und-neue-regeln/)


여기에서 우리는 과학에 기반한 ‘보전번식’(Conservation breeding) 프로그램의 중요한 원칙 한 가지를 접하게 된다. 즉, 사육 상태의 멸종위기 동물의 숫자를 무조건 늘리는 단순 ‘증식’ 을 과학적으로는 ‘보전’이라고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개별 동물원, 또는 지역적 동물원 수준에서의 주먹구구식 ‘증식’은 잡종 동물을 양산하거나 동물복지를 심각하게 해치거나 또는 근친번식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국제적인 동물원 연합체와 기구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동물원과 서식지외 보전기관들이 국가, 지역, 대륙별로, 그리고 전지구적으로 연합하여 각각의 멸종위기종을 위한 보전번식 프로그램을 과학에 기반하여 정교하게 설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보전번식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물원들은 해당 멸종위기종의 번식에 관한 전권을 개별 동물원이 아닌 보전번식 프로그램의 코디네이터에게 양도해야 하며 반드시 그 지시를 따라야 한다. 국제적 보전번식 프로그램에 관해서는 아래에 더 다루게 될 것이다.


*시베리아호랑이, 아무르호랑이, 백두산호랑이, 한국호랑이, 동북호랑이는 모두 한 종류의 호랑이를 일컫는 다른 단어다. 일반적으로는 시베리아호랑이라고 일컫고, 혈통대장을 관리하는 세계동물원수족관협회(WAZA)와 유럽동물원수족관협회(EAZA)에서는 아무르호랑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한국호랑이 또는 백두산호랑이라 하며, 중국에서는 동북호랑이라고 부른다. 북한에서는 조선범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베리아호랑이 '페페'. 사진: Veinna Zoo / Daniel Zupanc

'페페'를 좀 더 자세히 알아봤다. 기왕 한국 대통령이 호랑이를 맡기로 했다니, '페페'는 국민아들 같은 호랑이 아닌가. 시베리아호랑이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그래서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대부분의 시베리아호랑이는 국제적 보전번식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혈통, 출생, 이동, 사망이 전부 기록되고 관리된다. 이렇게 기록한 자료집을 혈통대장, 영어로는 스터드북(Studbook)이라고 한다. 스터드북을 펼쳐보면 해당 동물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가 소개되고, 모든 개체들에 대한 출생, 이동, 보유, 사망 등이 적혀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혈통대장 개념이 익숙지 않은 데다가 일반인은 어쩌면 들어본 적이 없는 내용일 테다. 그래서 간단한 예시를 소개한다. 다음은 아무르호랑이 국제 혈통대장에서 데이터를 정리해놓은 양식을 일부 번역한 것이다.


International Tiger Studbook 2020: 현재 기관별 사육 현황
International Tiger Studbook 2020: 개체별 정보

아무르호랑이 국제 혈통대장에 기록된 첫 번째 호랑이는 1955년 야생에서 포획되어 함부르크동물원에서 사육된 'Iwan Emir' 다. 세월이 흘러, 2019년에 태어난 호랑이 '페페'는 6468번으로 등록됐다. 혈통대장에서 '페페' 부모와 조상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었다. '페페'는 2019년 5월 25일 리스본동물원에서 삼 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다. 아빠는 '탄탄'이고 엄마는 '나탈리아'다. 혈통대장을 살펴보면 신기한 사실이 있다. 가계도를 이루는 처음, 시조는 항상 야생에서 포획되어 동물원에 들여온 개체가 된다는 사실이다.


야생 개체와 사육 개체의 구분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보전 방법을 간단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혹은 멸종위기종 보전은 크게 '서식지 외 보전'과 '서식지 내 보전'으로 나뉜다. 그중에 동물원에서 사육되면서 보전번식 프로그램으로 관리되며, 야생에 남아있는 멸종위기 동물의 마지막 보루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 바로 '서식지 외 보전'의 주요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보전번식 프로그램은 생각보다 주의를 기울여야 할 사항이 많다. 첫 번째로 오랜 진화 단계에서 형성된 각각의 아종을 별도로 관리하여 과거 무분별한 번식에 의해 생겨난 교잡종을 줄여나가야 한다. 두 번째, 근친교배/유전적 변이 저하/비자연선택에 의한 가축화를 사전에 방지하여 유전적 건강성 및 야생성을 유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어린 동물을 관람객 몰이 수단으로 전락시켜 동물사가 과포화되고 사육 예산이 초과되는 등 동물복지에 반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동물원 내 개체수도 적절하게 관리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런 종합적인 측면을 고려한 개체군 관리를 단일 동물원에서 진행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각 대륙별로 혈통대장을 관리하고 이를 통합하여 국제 혈통대장으로도 관리한다. 시베리아호랑이를 예로 들면 아무르호랑이 국제 혈통대장(ISB, International Studbook)은 세계동물원수족관협회(WAZA)에서 관리하며 보전번식 프로그램인 GSMP(Global Species Management Plans)를 운영하고, 아무르호랑이 유럽 혈통대장(ESB, European Studbook)은 유럽동물원수족관협회(EAZA)에서 관리하며 보전번식 프로그램인 EEP(EAZA Ex situ Programme)를 운영한다. 부가적으로 각 개체 번식, 사육, 복지 등에 관한 모든 정보는 최근에 Species360  ZIMS(Zoological Information Management System)로 통합하여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통합 정보는 동물원수족관-대학교-연구자-정부 간 생물다양성 보전 및 동물복지 증진에 관한 연구와 정책 마련을 촉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인공이 된 호랑이 '페페'와 '이나'의 족보를 자세하게 살펴보는 것 또한 흥미로운 일이겠다. 앞서 살펴본 혈통대장(Studbook) 기록은 정보가 그대로 나열되어 있어서 처음 자료를 접하는 사람들이 보기엔 영 복잡하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제는 약 70년 동안 약 7000마리에 대한 정보가 축적되어 그냥 살펴보기에는 꽤 방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그래서 보기 쉽도록 가계도를 그림으로 만들어 봤다.



시베리아호랑이 '페페'와 '이나'의 가계도 (참고: International tiger studbook 2020 / 시각화: 김동윤)

'페페'네 집안은 다양한 국가들을 오가며 교배가 이루어진 다국적 가족에 가깝다. 주로 포르투갈 리스본동물원에서 가족이 형성되긴 했으나 킹어시동물원은 영국 스코틀랜드, 모스크바동물원은 러시아, 뒤스부르크동물원은 독일, 오스트라바동물원은 체코에 있다. 게다가 유서 깊은 집안이기도 하다. 1955년부터 2021년 지금까지 11세대가 형성되었으며 야생 개체 도입은 28개체가 이뤄졌다. '페페'는 1955년과 1956년에 포획되어 아무르호랑이 국제 혈통대장에 1번(Iwan Emir, 야생 수컷), 2번(Sascha, 야생 암컷), 3번(Tatja, 야생 암컷)으로 최초 기록된 동물원 사육 아무르호랑이들의 후손이기도 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체계적인 국제 보전번식 프로그램인 EEP는 1985년부터 시작되었고 1985년 이전 세대에는 근친교배가 이뤄진 기록이 남아있어 슬픈 역사 역시 간직하고 있다. 그에 비해, '페페'와 맺어주고자 하는 '이나'네 집안은 아주 최근에 꾸려진 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1세대는 1970년에 구성되었고 2021년 지금까지 5세대가 형성되었으며 야생 개체 도입은 6개체가 이뤄졌다. 대부분 야생 개체 간 낳은 새끼를 다시 야생 개체와 교배하여 근친교배는 일어나지 않았다.


시베리아호랑이 '이나'. 사진: Veinna Zoo / Daniel Zupanc


서식지 외 보전기관(동물원)에서 사육 개체군의 유전적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야생 개체(=시조, founder)의 공급, 세대(generation) 길이와 수 관리, 암수 성비 유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엄격한 보전번식 프로그램에 의해 야생의 유전자를 간직한 건강하고 진정한 서식지 외 개체군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다.

자료참조: WAZA (2011) 'Towards Sustainable Population Management', WAZA magazine vol.12


따라서, '페페'와 '이나'의 만남은 멸종위기종인 시베리아호랑이를 서식지 외부에서 보전하는데 중요하고 기대되는 사건임이 분명하다. '페페'는 '이나'를 만남으로 인해서 과거 근친교배에서 잃었을지도 모르는 유전적 변이의 회복을 꾀할 수 있고, '이나'는 '페페'를 만남으로 인해서 아직은 여전히 부족한 세대수를 늘려 개체군 규모를 확장할 수 있다. 이 가계도에 국한해서 생각해보기에, '페페'와 '이나' 세대는 암컷 4마리에 수컷은 '페페'가 유일하기 때문에 앞으로 이뤄질 만남에서는 수컷을 기대해도 좋겠다. 그러나 국제적인 암수 비율을 고려한 국제 보전번식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의 판단은 다를 수도 있다. 요컨대, 이런 국제적인 관리는 과학적인 연구조사 결과를 근거로 동물원, 보전전문가, 국제 민간단체(EAZA)가 서로 협력해야만 진행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멸종위기종을 보전하는데 희생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사육 동물을 존중하고 최소한의 행복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또한, 인류에게 생물다양성과 보전의 중요성을 알리는 생태계 외교관으로서 임무를 충실히 할 수 있는 현대 동물원의 존재 목적이자 기본 역할일 것이다.



2. '쇤브룬동물원'은 어떤 곳인가?

쇤브룬동물원 정문 (2019년 7월 16일, 사진: 김동윤)
쇤브룬동물원 후문 (2019년 7월 16일, 사진: 김동윤)

쇤브룬동물원(Vienna Zoo, Tiergarten Schönbrunn)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이다. 1752년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1세'가 설립한 황실 동물원이며, 1765년에 일반 시민에게 개방했고 1992년 민영화되었다. '프란츠 1세'는 근대 학문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황제로써 자연사박물관 기틀 마련, 동물원과 식물원 설립, 대학 및 궁정도서관 개혁 등을 이뤘다(황기우, '독일-오스트리아 왕가', 인문과 교양). 가장 역사가 깊은 쇤브룬 동물원은 동물원 역사와 시대상을 살펴보는데 가장 적합한 소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사육 야생동물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할 수 있는 소재이기도 하다.



TMI: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동물원은 프랑스에 있다. 프랑스혁명(1789~1794) 과정에서 베르사유 왕실 동물원과 야생동물 거리 전시회 등의 동물을 모아 1794년 파리에 공식적으로 문을 연 파리식물원 동물원이다. 파리식물원 내에 위치하며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에 속해있는 시설이다. (https://www.jardindesplantesdeparis.fr/fr/aller-plus-loin/histoire/lhistoire-menagerie-2761)



역사 속 가장 오래된 동물원은 이집트 히에라콘 폴리스(기원전 3,800-3,100년)로 알려져 있다. 악어, 타조, 표범, 하마, 아프리카코끼리, 정글살쾡이, 들고양이, 하테비스트 영양, 오로크스 소(현재는 멸종), 바바리양 등 야생동물과 개, 고양이, 소, 양 등 가축을 함께 사육한 것으로 밝혀졌다(Van Neer, W., et al., (2017) Traumatism in the Wild Animals Kept and Offered at Predynastic Hierakonpolis, Upper Egypt. Int. J. Osteoarchaeol., 27: 86– 105. doi: 10.1002/oa.2440).


히에라콘 폴리스 내 동물 사육터 발굴



이렇듯 고대에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동물원은 왕실 동물 수집관(Royal menagerie) 개념으로써 존재했다. 그러던 것이 왕실 동물원이 대중에게 개방되면서 대중 동물원 개념(Public Zoo)이 도래했다. 동물원을 뜻하는 영어 'Zoo'는 이 시기에 Zoological park/garden/menagerie의 약어로 파생됐다. 시대 역시 중세에서 근대로 변모하게 된다. 과학 연구 목적으로 세워진 최초의 근대 동물원은 1828년 영국 런던에 개장한 런던동물원으로 일컬어지며, 대중 관람과 학술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시설 개념으로 발전했다. 현대로 오면서 멸종 속도가 빨라지며 위기감이 고조되고, 갇힌 동물들이 받는 신체적/심리적 고통도 대중에게 밝혀지면서 동물원은 '야수들의 수용소'란 이미지로 전락했다. 많은 시민들이 동물원 폐지를 주장하는 등 근대 동물원들은 위기를 겪게 된다. 1992년 런던동물원을 필두로 많은 동물원이 운영과 재정 부분에서 위기에 처했다(Warwick Frost (2010) 'Zoos and Tourism: Conservation, Education, Entertainment?'). 그리하여 1990년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유럽의 많은 동물원이 개보수와 리노베이션 작업에 돌입하게 된다. 동물원 생존을 위한 뼈저린 반성과 성찰의 결과, 현대 동물원의 비전과 존재 목적은 단순한 동물 관람 및 오락시설에서 보전 및 생명공원 개념으로 발전했고, 지구적인 생물다양성 연구/교육/보전 활동을 수행하는 공공재 성격의 시설로 변모하고 있다.



TMI: 한국 동물원 역사는 어떨까? 조선시대에는 상림원(上林苑)이라는 왕실 정원에서 동식물을 기르게 하였다. 1394년(태조 3)부터 1882년(고종 19)까지 유지됐다. 그 기능을 살펴볼만한 사료로써 조선왕조실록에서 세종이 1425년 12월에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고라니[麋]와 사슴을 기르고, 화초를 키우는 것은 본래 긴요한 일은 아니다. 또 나는 꽃과 새를 구경하는 일을 좋아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옛날 중국의〉 문왕(文王)의 동산에는 기러기ㆍ고라니ㆍ사슴이 있었으며, 한(漢) 나라에는 상림색부(上林嗇夫)가 있었으니, 지당(池塘)과 누대(樓臺)와 새와 짐승은 옛날부터 있는 것이다. 지금 상림원(上林苑)에서는 새와 짐승과 꽃과 과실나무를 맡아 다스리는 일에 마음과 뜻을 모아 하지 아니하고 있다. 그대들은 〈그 주관하는〉 제조(提調)에게 말하라. 만약 과실나무와 심어 놓은 식물(植物)들이 무성하게 잘 자란다면 또한 국가의 용도에도 보탬이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일제의 간섭이 심해지던 1900년대에는 결국 1909년(순종 2)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개칭되며 동물원으로 전락하고야 만다. 이 슬픈 사건이 한국 최초의 동물원이 생겨난 배경이다. 한국 최초의 근대 동물원은 1967년 개원하여 2002년 폐장한 동래금강동물원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동물원은 1970년대에 개원했다. 2019년 한국 동물원과 수족관의 수준을 높이고 동물복지 등을 향상하고자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으나 법의 한계를 드러내며 체험동물원, 판매전시시설, 실내동물원 등이 모두 동물원으로 등록하면서 현재 100곳이 넘는 법적 동물원이 존재한다. 동물원 관리/교육/개선을 위한 행정제도 마련과 드러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법률 개정이 이뤄질 전망이다. 법이 공표될 당시 약 7만 명이 동물원 폐지 청원에 참여했고 학생 중 약 60%가 동물원 폐지 찬성에 투표했다. 그럼에도 한국 동물원은 여전히 존재 목적과 나아갈 미래를 온당하게 정하지 못하고 있다.



쇤브룬동물원은 유럽 최고의 동물원이기도 하다. 2008, 2010, 2012, 2014년에 걸쳐 유럽 최고 동물원을 선정하여 수여하는 '안토니 세리던 상 (Anthony Sheridan Trophy: Best European Zoological Garden)'을 수상했다. 최고의 동물원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는가? 그 기준은 다음과 같다.

시설 배치와 디자인, 안내판, 교육, 보전, 회원제 등 40개 평가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중대한 결함이 없는 동물원

훌륭한 원장과 강력한 관리팀에 의해 운영되는 동물원

1995년부터 2015년 사이에 괄목할만한 개선을 이뤘고, 1995년 전에 3위 이내에 들었던 적이 없는 동물원

각 동물원은 해당 국가 최고의 동물원이어야 하며, 널리 알려진 동물원이어야 한다.

각 동물원은 지난 20년 동안 1억 2천만 유로 (한화 약 1,610억 원)를 초과하는 투자를 해왔어야 한다.


이런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쇤브룬동물원이 유럽 최고 동물원으로 선정된 이유는 이렇다.

새로운 북극곰 전시관, 원숭이전시실 리노베이션, 고객 편의시설 현대화에 2000만 유로(한화 약 268억 원)를 투자했다.

신뢰 있는 환경, 건강, 안전 인증인 ISO 9001, 14001, 18001 획득했다.

북극곰, 오랑우탄 등 전시동물과 연계된 서식지 외 보전 사업을 위한 지출을 확대했다.

CT(컴퓨터 단층촬영) 기기가 동물원 내 동물병원에 설치되었으며 수의사 7명이 고용되어 있다.

"동물원 활동팀(Team Zoo Aktiv)"을 개발하여 동물원 정규직을 돕고 지원하는 150명의 훈련된 자원봉사자를 제공했다.

2017년 초에 개장한 기린 역사전시관과 야외 사육장을 갱신하는 700만 유로 (한화 약 95억 원) 규모의 사업에 착수했다.

동물원 동물사육사 70명의 개인별 업무와 관심사를 소개하는 "동물원에 살다(Leben im Zoo)"라는 특별한 책을 출간했다.

(자료 참고: Anthony Sheridan (2016) Zooming in on Europe's Zoos: Sheridan's Guide to Europe's Zoos 2010-2015)

쇤브룬동물원의 새로운 북극곰 전시관: 사육공간과 관람공간이 입체적으로 구성되었다. (사진: 김동윤)
리노베이션이 이뤄진 원숭이전시관: 실내/외 연계, 기존건물 활용, 관련 유물 및 사료 등 박물관 구성이 돋보인다. (사진: 김동윤)
기린 역사관과 사육공간 갱신: 기린 색종이접기로 기네스 기록에 도전한 것이 독특하다. (사진: 김동윤)


한국인이 바라본 쇤브룬동물원은 어떤 느낌일까? 2019년 여름, 필자는 쇤브룬동물원을 방문했었다. 당시 한국 동물원 관리를 위한 마스터플랜 수립 연구에 작은 역할을 맡아 유럽 내 선진 모델이 될만한 동물원들을 견학하고 관계자들을 만나 동물원 실제 관리, 운영, 보전, 복지 등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아쉽게도 쇤브룬동물원은 관계자 면담 일정이 출장 일정과 맞지 않아 동물원 답사만 진행할 수 있었다. 당시 필자가 남겼던 감상평은 이랬다.


말로만 듣던 '동물원이 나아갈 방향'을 봤던 쇤브룬동물원. 동물뿐만 아니라 보전, 역사, 예술 등 정말 다양한 내용을 담고자 했다. 사육환경도 부러울 따름.

쇤브룬동물원 지도

사실 필자의 동물원 방문 기억은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갔던 게 전부다. 그 뒤로 한참 동물원에 가지 않았다. 갇혀있는 야생동물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어릴 적 기억이라곤 철창에 둘러싸여 시멘트 바닥 위에서 멍하니 앉아있는 동물이 전부였으니, 새로운 동물을 보는 신기함 따위는 느낄 수도 없었다. 차라리 산과 들에 남아있는 야생동물 흔적이 더 신기했고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대학원에서 보전을 공부하면서도 서식지 외 보전, 야생동물 사육 및 복지 등에는 거의 지식이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 다른 분야에서 수년을 떠돌다가 다시 돌아온 연구실에서 한국호랑이 보전을 위한 각종 행사와 사업에 참여하고 동물원 관리 마스터플랜 수립 연구 같은 사업에 참여하면서 '서식지 외 보전'에도 어느 정도 공감하게 됐다. 인류가 오랜 세월 쌓아놓은 업보를 누군가는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싶었다. 그리고 떠난 유럽 출장에서 이틀에 하루 꼴로 동물원에 갔다. 드넓은 각각의 동물원을 하루에 다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마감시간이 가까워지면 미처 못 본 동물들 전시관을 보고자 뛰었다. 동물원에 다녀온 날이면 대략 2만보를 걸었다. 밤에는 녹초가 되어 숙소에 돌아왔다. 그렇게 보름간 11곳 동물원을 다녔다.


11개 동물원 중에는 수족관에 속한 동물원도 있고 소형동물원도 있고 영장류 동물원도 있다. 그중에서 손꼽을 만한 동물원은 쇤브룬동물원, 취리히동물원, 라이프치히동물원이다. 영화로 따지면 블록버스터 느낌? 규모에서도 압도되는데,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 취리히동물원과 라이프치히동물원은 부지 면적에 여유가 있어서 보전 프로그램을 후원하는 지역(주로 중앙아시아, 동남아 등 생물다양성 핫스팟)의 생태계를 재현한 대규모 온실이 있다. 새와 동물이 주변을 지나다니고 계단을 헉헉대며 올라가면 밀림 수목의 상층부도 경험해볼 수 있다. 아프리카나 호주의 사바나 환경을 아주 넓은 면적에 놓아 마치 사파리 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꾸며놓은 곳도 있다. 다른 동물원 소개는 다른 기회를 빌려 더 하기로 하고, 가장 관심 있게 살펴봤던 쇤브룬동물원을 조금 더 소개해보겠다. 쇤브룬동물원은 쇤부른궁 내부에 있어 부지면적에 제약이 많다. 그래서 대부분 비슷한 상황에 놓인 한국 동물원 여건에 적용하기에도 적합해 보였다.


쇤브룬궁 분수대 (사진: 김동윤)

쇤브룬동물원이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이랬다. 첫 번째로 세밀한 동물 전시관과 관람객 동선 구성이다. 제한된 면적에 지대의 경사나 건축 구조를 창의적으로 이용하여 입체적으로 설계했다. 그래서 동물과 사람이 발을 옮길 곳이 매우 다양하다. 대표적인 곳이 북극곰관과 원숭이관이다. 두 번째는 동물과 사람을 위한 최신 시설이다. 쇤브룬동물원은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현대적이면서도 동물이 있는 곳은 동물 친화적으로 사람이 있는 곳은 사람 친화적으로 탈바꿈시켰다. 특히 동물이 몸을 숨길 곳이나 쉴 곳이 많고 행동풍부화 시설물도 필수적으로 설치돼있었으며 나무, 관목, 넝쿨식물, 타공 필름 등을 배치하여 관람객의 시선에서 동물을 최대한 분리하고자 한 노력도 돋보였다. 세 번째는 다양한 교육내용이다. 입체적으로 설계된 동선에 내용이 없는 곳이 거의 없다. 동물사별 역사, 동물 전시관 평면도, 멸종위기 수준, 사육개체정보, 서식 대륙 생태계와 탐험 역사, 서식지 내 보전 프로그램 소개가 빼곡하다. 층이 나뉘는 건물에는 꼭 작은 역사박물관, 과학박물관을 꾸몄고 그나마도 남는 공간에는 야생동물을 소재로 창작한 예술 작품을 배치했다.


필자가 쇤브룬동물원을 방문했던 시기에 시베리아호랑이는 '이나' 한 마리만 있었다. 이제 막 쇤브룬동물원으로 이사 온 '페페'는 당시 리스본동물원에서 세상을 구경한 지 두 달이 되었을 시기. '이나'가 있었을 그곳을 사진으로 소개한다.

호랑이관 모습. 나무와 풀로 덮여있다. 어디선가 쉬고 있을 호랑이를 찾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실은 관람공간과 감춰진 곳으로 나뉜다. (사진: 김동윤)
시베리아호랑이와 큰고양이과 전시관 역사를 소개하는 안내판 (사진: 김동윤)

쇤브룬동물원은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동물원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한국 동물원도 쇤브룬동물원을 모델로 삼아 교육, 보전, 복지는 물론 휴식과 여가를 모두 누릴 수 있는 짜임새 있는 곳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오스트리아 그리고 유럽 대표 쇤브룬동물원과 한국 대표 문재인 대통령 사이에 맺어진 인연이 시베리아호랑이 보전은 물론 동물원 발전에도 긍정적인 미래를 만들 수 있으리라 희망도 가져본다.



3. 오스트리아 총리는 어떤 인물인가?

2019년 한국 방문 당시의 오스트리아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 (사진: 청와대)

이런 걸 두고 운명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오스트리아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는 호랑이와 인연이 깊은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는 86년 8월생으로 나와 동갑이며 호랑이띠이다. 17세에 정치를 하기로 결정한 후 2008년~2012년 비엔나 시의회 의원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2011년 국무장관, 2013년 외무장관을 거쳐 2017년 선거를 통해 총리로 선출됐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총리를 역임한 뒤 2020년 재집권에 성공했다. 뉴질랜드 총리(저신다 아던, 37세에 취임), 핀란드 총리(산나 마린, 34세에 취임), 프랑스 대통령(에마뉘엘 마크롱, 39세에 취임), 아일랜드 총리(리오 버라드커, 37세에 취임)와 더불어 전 세계적인 '유스퀘이크 (youthquake, 젊은 세대가 사회 각계에서 변혁을 주도하는 현상)' 열풍의 중심에 있는 지도자로 꼽히기도 한다.


첫 번째 총리 임기 막바지인 2019년에는 한국을 방문하여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하기도 했는데, 우리 시베리아호랑이 '페페'가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며 태동하고 있을 시기였다. 당시에 이런 일이 있을 줄 어찌 알 수 있었을까. 시간이 지나 제바스티안 쿠르츠가 두 번째로 총리가 되어 다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2021년, 그 '페페'가 오스트리아에 왔고, 쿠르츠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페페'의 후견인이 되어주기를 부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크게 기뻐하며 감사한 마음을 대서특필 했으니 필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TMI: 여기서 한 가지. 언론에서는 전부 후원자로 소개했는데 이글에서는 왜 자꾸 후견인이니, 대부니 하냐는 의문이 있을 듯하다. 쇤브룬동물원 후원 프로그램은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중에 특정 동물을 지정하여 1년 이상 후원하는 경우에 대모나 대부로 연간 후원자 등록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호랑이 후원의 경우 월 200유로 이상 12개월 약정을 하면 대모나 대부로 후원증서, 동물 전시관 앞 명패, 무료입장권을 증정한다. 그래서 동물원이 후원자에게 부여한 의미를 존중하여 중성적 단어로 '후견인', 직역으로 '대모' 혹은 '대부'로 소개했다.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시베리아호랑이 '페페'의 후견인이 된 것이다.


후원증서와 입장권 (출처: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후원증서에서 'Patenschaft'는 대부 대자 관계를 의미한다.


내년 2022년은 호랑이의 해가 된다. 임인년(壬寅年, 검은 호랑이의 해)에 '페페'와 '이나'가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된다면 그만한 경사가 어디 있을까. 우리가 바라는 새끼 호랑이가 둘 사이에서 탄생할지도 모른다. 호랑이는 93일에서 112일(3~4달) 정도 임신하며 (https://www.torontozoo.com/mediaroom/press2021?pg=20210415) 보통 2~3마리 새끼를 낳는다고 알려져 있다. 이르면 호랑이의 해에 경사가 겹치겠다.


약간은 억지스럽게 우연을 운명으로 포장해봤다. 그러나 우연이 겹치면 운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동물원에서 살아가는 동물도, 야생에서 살아가는 동물도, 어떻게든 우리네 마음속에 자리 잡아 지켜질 수 있기를 바라며 연결 지어 보았다.



결론. 시베리아호랑이 '페페'가 전하는 외교적 메시지.

외교 행사에서 정상 사이에 주고받는 선물은 항상 관심을 받는다. 작은 선물이라도 그에 담긴 의미가 중요하게 해석될 수도 있다. 오스트리아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가 호랑이 '페페' 후원증서와 입장권을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로 증정한 데에는 몇 가지 암시가 있어 보인다.


첫 번째, 환경과 기후에 관한 관심을 보여주고자 한 것으로 여겨진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는 처음 총리에 당선되던 시기에는 극우 자유당과 연정(연합정권: 2개 이상의 정당이 공통의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책 합의하여 일시적으로 협력관계가 수립되는 정권)을 구성했으나 2020년 재임에서는 녹색당과 연정을 구성한다. 이는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로 대표되는 '툰베리 효과' 덕이 크다. 유럽에서는 환경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국 선거에서 투표를 통해 녹색당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회에서는 녹색당 의석이 49석(2014년)에서 74석(2019년)으로 증가했고, 오스트리아에서도 0석(2017년)에서 29석(2019년)으로 대폭 증가했다. 표심을 살피는 눈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쿠르츠 총리는 연정 협상 당시 "녹색당은 환경과 기후 분야에서 강한 견해를 밝히고 있으며 이는 부분적으로 우리에게 쉽지 않은 부분"이라면서도 "이것이 녹색당이 선거에서 표를 얻은 이유이며 우리는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그런 만큼 국내외적으로 환경과 기후에 대한 이미지 메이킹에도 신경을 쓸 가능성이 크다. 쿠르츠 총리는 2021년 5월 서울에서 개최된 기후변화에 관한 'P4G정상회의'에 참여하기도 했다. 게다가 멸종위기종인 시베리아호랑이를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쇤브룬동물원에 데려와 서식지 외 보전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보전번식 프로그램 사업에 정부가 앞장서서 후원했다는 이미지를 심고, 외교적으로도 한국에게 뜻깊은 선물을 증정한 셈이니, 쿠르츠 총리로서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최고의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 상대국(한국)의 상징인 시베리아호랑이를 비유적으로 선물한 것으로 판단된다. 예로부터 어떤 국가의 상징 동물이나 상서로운 동물을 선물로 주고받는 것은 자주 있어왔던 일이다. 그래서 많은 왕실은 궁중 동물원을 설치하여 선물로 받은 동물을 기르게 했다. 조선시대에는 외교나 무역을 통해 원숭이, 코끼리, 낙타, 공작 같은 동물을 선물 받았는데 사복시(司僕寺) (여마(輿馬)ㆍ구목(廐牧) 등의 일을 관장)에서 주로 기르게 하였다. 그러나 이 동물들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 자주 지방으로 귀양 보내졌으니 사복시가 동물원 역할을 했다고 볼 수는 없겠다. 앞에서 조선시대 동물원이라고 소개했던 상림원에서는 노루, 고라니, 사슴, 검은 여우 등 주로 자생 동물을 키웠고, 왕실 정원의 성격이 강해 과일이나 국화 재배에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조선왕조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현대에 와서는 호랑이가 사라진 호랑이의 나라 한국에 호랑이를 선물하는 일이 잦았다. 1994, 2005, 2011년 중국으로부터 한쌍씩 기증받았고 2011년 한-러 수교 20주년을 기념하여 러시아에서 기증받기도 했다. 극동러시아는 시베리아호랑이가 아직 살아남아 있는 유일한 지역이다. 국제적인 서식지 외 보전을 목적으로 야생 호랑이를 해외 국가에 기증하는 경우가 있다(야생 개체가 어떤 이유에서 어떤 방식으로 포획되어 동물원으로 이동되고 해외에 기증되는 것인지는 러시아가 독자적인 유라시아동물원수족관협회(EARAZA)를 갖고 있고 언어적인 문제로 정보를 아직 구하지 못했다. 그러나 EARAZA와 유럽의 EAZA는 보전번식 프로그램 운영에 있어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 외 지역, 특히 유럽에서는 혈통대장과 국제 보전번식 프로그램에 따라 호랑이 이동과 번식이 철저하게 통제된다. 이런 이유들로 추측컨데, 쿠르츠 총리도 러시아나 중국 정상처럼 한국에 호랑이를 선물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살아있는 호랑이를 기증할 수 없으니, '페페'를 문재인 대통령의 보살핌을 받는 대자녀로 들이게 함으로써 '호랑이를 선물했다'는 의미를 전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세 번째, '호랑이의 해'와의 연결성을 강조하려고 했을 것이다. 쿠르츠 총리 본인이 호랑이의 해에 태어난 범띠인 사실을 당연히 인지하고 있겠다고 추정된다. 그러니 호랑이라는 동물에 애착과 관심이 있을 것인데, 외무장관 출신으로써 외교적 수단으로 호랑이를 이용하고자 하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호랑이를 국가와 민족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는 한국의 수장이 오스트리아를 방문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며 팬데믹 시대에 빠뜨린 '코로나19'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며 방역체계와 국가 시스템이 주목받고 있다. 쿠르츠 총리도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면서 오스트리아 방역 구축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22년 호랑이의 해(임인년)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 모든 국가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해로 기대를 품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해가 공교롭게도 한국과 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맞이한다. 이를 앞두고 문화협력협정 체결, 수교 130주년 기념 우정 전시회 개최 예정, 과학기술과 미래형 첨단산업 분야 협력 등을 합의한 만큼 기대감이 높다. 시베리아호랑이 '페페'를 매개로 '호랑이의 해'에 대한 희망을 양국 정상이 함께 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는지.


이런 해석 외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겠다. 외교와 정치라는 소재를 보전생물학 중심의 시각에서 풀어보고자 했다. 아무쪼록 시베리아호랑이 '페페'를 중심으로 맺어진 한국과 오스트리아 정상 사이의 인연이 모든 부분에서 희망의 빛을 발하길 바란다. 특히나 생물다양성을 지키고 야생동물과 인간의 공존을 일궈내기 위한 보전 학자들의 국제적인 노력에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글: 김동윤 (한국범보전기금 연구원, 서울대학교 수의과학연구소 겸임연구원)

감수: 이항 (한국범보전기금 대표,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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