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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은 Nov 20. 2024

느닷없이 잉글랜드

후다닥 짐 싸서 떠난 여행 3편


 

 바스에서는 B&B에, 체스터에서는 호텔에 묵었다. 다행히 둘 다 만족스러웠는데 여행 중반이 되니 겉옷 빨래할 것도 생기고 물정에 눈치가 쌓여 그곳 재료로 뭘 해 먹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요크의 숙소는 주방이 딸린 아파트로 구했다. (물론 급하게 구하느라 선택 폭이 좁아진 탓도 있다)


 사진으로나 후기로나 위치로나 나무랄 때가 없는 숙소에 진짜 그럴까 하고 걱정을 했는데 실제로 가보니 더 좋았다. 잡지에나 나올듯한 집에 넓은 방이 두 개, 그러니 침대도 따로 (만세!!! 우린 잠자는 스타일이 달라서 단칸방에서 자는 게 꽤 힘들었다), 작은 거실에, 다양한 부엌기구가 딸린 주방, 내 집보다 많은 그릇에다가 세탁기도 있었다. 더 좋은 건 거실 창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



 대충 짐을 정리하고 세탁기도 돌리고 인근 슈퍼에서 장을 봐 냉장고를 채워 두고 늦은 오후 중심가로 나갔다. 요크는 2천 년 가까이 된 도시라고 한다. 물론 그때의 흔적이야 얼마 남아 있지 않겠지만 그래도 고도의 명성은 골목만 걸어 봐도 확 다가온다.



 그리고 삼십 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 정말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좁은 골목, 다닥다닥 붙은 조그만 가게들, 골목 코너마다 서 있지만 이젠 아무도 찾지 않는 것 같은 교회들. 그런데 이런 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그 거리를 같이 걷고 있는 관광객들도 옛날 사람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크의 명성답게 바스나 체스터랑 달리 관광객이 많았는데 우리 같은 외국인들도 있었지만 지방에서 놀러 온 우리같이 나이 든 영국사람들도 정말 많았다. 예전엔 외국인을 보면 약간의 경계심과 조심스러움이 있었는데 같이 주름지고 느려지고 보니 '당신들이나 우리들이나 오래 애썼네요, 이젠 천천히 구경하면서 삽시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 날 제일 먼저 간 곳은 요크민스터. 화려하고 큰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한데 예전에 봤던 기억이 흔적만 남아 비싼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다시 들어갔다. 처음 영국에 갔을 때 런던 지하철 역에서 역무원이 아주 자랑스럽게 자기네는 미술관이며 박물관이 다 공짜라고 큰소리치길래 '와 멋지다' 하고 맞장구를 쳐줬는데 그 사람을 이제 다시 만나면 한마디 하고 싶다. '너네는 교회 들어가는데 돈 받냐?' 


 영국은 성당에서 돈을 받는다. 물론 동네 생활형 (?) 성당이나 상대적으로 볼 것이 작은 천주교 성당은 안 그렇지만 (런던 웨스터민스터 천주교 성당은 입장료가 없었고, 체스터 대성당은 기부금을 받았다) 유명하고 볼 것이 많은 대성당은 얄짤없이 입장료를 받는다. (물론 신자들에겐 받지 않는단다) 요크 대성당 입장료는 무려 18파운드. 2012년 10파운드, 22년 12파운드였다니 정말 엄청나게 오른 것이다. 그런데 체스터 대성당에서 꼭대기 탑에 올라가려다 깜빡하고 그냥 나온 것이 너무 아쉬워, 요크에서는 꼭 가자 하고 보니 추가 6파운드 그래서 둘 합해 48파운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거의 10만 원에 가까운 돈을 냈다. 이런런런~~~ 성당에 할 말은 아니지만 심하게 삥 뜯겼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저 파란 팻말 앞에 모여 탑으로 올라갔다


 탑에 올라가는 표를 살 때 직원이 어디서 왔냐고 묻더니 한국어 안내는 없다고 하면서 굳이 번역기를 돌려 확인시켜 주고는 (계단이 290 여개라는 것만 대충 봤다) 표를 주면서 Good Luck! 했다. 이때 알아챘어야 했는데 ㅠ.ㅠ 

 시간 별로 모여 단체로 올라갈 줄은 몰랐다. 입구에 갔더니 위 팻말이 있었는데 시간이 되자 우르르 사람들이 모여 입장 시작! 멋모르고 앞 줄에 섰다가 정말 죽을 뻔했다. 제일 먼저 젊은 사람 넷이 올라갔고 그다음이 바로 나, 뒤에는 남편이, 그 뒤는 내 또래의 아주머니가 따라왔는데 겨우 혼자 올라갈 만큼 좁은 계단이 뱅글뱅글 끝도 없이 계속되었다. 100개쯤 올랐을 때 아이구 이거 진짜 실수했다 싶었는데 나중엔 숨이 너무 차고 힘들어 이러다 쓰러지면 이 좁은 곳에서 어떻게 하나 진심으로 무서웠다. 앞에 가던 청년들은 벌써 사라졌고 혹시 싶어 뒤를 돌아보면 바짝 붙어 올라오는 남편 뒤로 아주머니가 또 바짝 따라 올라오니 설 수도 없고 쉴 수도 없고~~

 겨우 꼭대기에 올라가 헉헉 대며 옥상에 들어섰더니 후딱 먼저 올라갔던 아가씨가 벤치에 앉아 쉬다가 날 보고 막 웃으면서 앉으라고 자리를 비켜줬다. 뒤 따라온 남편은 앞에선 마누라가 토끼처럼 튀어 올라가고 뒤로는 독일 여자가 엉덩이에 바짝 붙어 미는 바람에 너무 힘들었단다. 큰일 나면 어쩌려고 그리 빨리 올라갔냐고 막 야단을 했다. 토끼는 무슨~~ 그 독일 아줌마는 숨을 헐떡이기는커녕 땀도 안 흘리고 미소를 지으며 올라와 나한텐 '유 아 베리 스트롱!' 하는 인사를 들었다.

 

너무 힘들어 사진을 찍긴 했는데 풍경 좋은 줄 몰랐다

 

 다시 땅 위로 내려와 남편은 지하에 있는 성당 박물관으로 가고 난 다리가 풀려 그냥 의자에 앉아 있었다. 조금 있으니 낯선 사람, 여자 사제가 성당 안을 한가롭게 걸어 다녔다. 성공회는 천주교와 달리 여자 사제가 있다. 이 양반은 그냥 관광객들이 궁금했는지 구경하다 쉬고 있는 노인 부부한테 말을 걸기도 하고 단체로 온 학생들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나도 궁금하고 묻고 싶은 게 잔뜩인데 영어가 달리니. ㅠ.ㅠ 하필 이런 때 남편이 없어 너무 아쉬웠다. 

머리가 단발이라 두건 쓴 것처럼 보이는 여자 신부님


 남편이 오지 않아 성당 안을 이리저리 돌아보는데 신기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성당 천장을 향해 만들어진 거울. 이게 왜 있지? 하고 둘러보니 그 옆에 안내판이 있었다. 

거울을 통해 본 천장이라 선명하지 않다.

 제대로 못 찍어 아쉬운데 저 사진은 위로 보고 찍은 게 아니라 바닥에 놓인 거울을 보고 찍은 사진이다. 아래 거울을 보면 바로 위 천장이 비친다. 궁륭 천장을 가로질러 이어져 있는 하얀 선의 교차점에 붙인 장식이 보이는데 이것을 보스 Boss라고 한다고. 1984년 요크민스터 화재 때 이쪽 건물이 소실되었는데 재건할 때 Blue Peter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저 보스의 도안을 공모했단다. 그래서 6개의 도안이 당선되어 그걸로 만든 보스가 저기 붙여진 것이다. 자세히 보면 황금색 보스 사이로 파란색의 새것이 보인다. 


달에 간 사람, 고래, 로즈 메리라는 가라앉은 영국 배의 상징 등등 모야이 있다.

 

 오래된 건물이라고 그냥 보존만 하지 않고 요즘의 새것을 더하는 것도 좋다 싶다. 세월이 지나면 이것도 오래전 시대의 것이 될 테니까. 


 성당 지하에 있는 박물관에 갔다 온 남편은 내내 툴툴하던 걸 취소한다며 이 요크 대성당을 이만큼 유지하는데 너무 많은 공과 돈이 든다고, 지금도 여전히 보강작업을 하고 있으니 우리가 낸 입장료가 그리 비싼 게 아니란다. 남편은 어쩌다 공대를 갔지만 전혀 그쪽은 아니고 고고학과나 사학과를 갔어야 행복하지 않았을까 생각할 만큼 옛 것과 거기 담긴 세월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번 영국 여행이 더더욱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낡은 것, 역사 깊은 것 천지였으니.


인적이 끊긴듯한 작은 성당 문고리를 잡고 소통 중


 그래서 우린 여행 블로그에선 볼 것 없으니 가지 말라 했던 클리포드 탑에 가서도 둘이 멀찍이 벤치에 앉아 언덕 위를 바라보며 저 탑이 겪었을 세월을 상상했다. 안 갔더라면 후회했을 것 같다. 아무 말 없이 우뚝 서 있는 우직한 탑이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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