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플러스의 본질은 콘텐츠니까
"이제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과 믿음, 그리고 약간의 요정 가루뿐이다."
"All you need is faith, trust, and just a little bit of pixie dust. " - Peterpan (1953)
위 대사는 1953년도에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피터팬'에 등장하는 대사이다. 애니메이션을 영상으로 보았을 때와는 다르게, 줄글로 대사를 읽고 나니 '약간의 요정 가루'라는 표현이 그저 마음속에 박혀버렸다. 손가락으로 요정 가루를 흩뿌리는 모습이 상상되면서 이 표현이야말로 귀엽고 환상이 가득한 느낌을 주는 표현이 아닐까 싶었다. 디즈니를 형용할 수 있는 정말 많은 단어들이 있지만, '요정 가루'라는 표현은 디즈니보다 잘 어울리는 곳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팅커벨의 요정 가루는 웬디, 존, 마이클을 날 수 있도록 하지만, 디즈니는 수많은 요정 가루들을 그들의 다양하게 확장된 사업에 한 아름씩 뿌려왔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디즈니 플러스(Disney+)와 맞물린 디즈니의 요정 가루에 주목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과연 그들의 요정 가루는 어떻게 만들어졌던 것일까. 그들은 앞으로 또 어디에 요정 가루를 뿌릴 수 있을까.
현재 디즈니의 전략이 1957년 월트 디즈니가 그린 "The Disney Recipe"라고 불리는 이 메모에 기반하고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물론 지금 현재의 입장에서는 더 많은 화살표와 더 많은 사업영역들이 추가되어야만 할 것이다. 다만, 근본적인 '확장성'에 대한 근거와 관점, 그리고 디즈니가 고수해오고 있는 철학과 전략은 감히 60여 년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중심에는 당연히 디즈니의 본체와도 같은 "영화(애니메이션)"이 위치하고 있다. 이 중심이 되는 콘텐츠에서 규정한 캐릭터와 요소들이 활용되어, 이와 연계된 TV 방송, 테마파크, 상품, 음악, 축제, 잡지, 서적 등까지 뻗어나가고, 이는 다시 새로운 콘텐츠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디즈니는 왜 이러한 전략을 세웠을까? 그리고 이 전략은 어떻게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일까? 이는 곧,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이 있고, 그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다양한 산업으로 뻗어나가는 것이 훨씬 용이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하나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디자인, 캐릭터, 줄거리, 조명, 의상, 특수효과, 스턴트 등 다양한 방면에서의 기초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인물, 사건, 배경이라는 이야기 구성의 3요소들이 이미 영화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테마파크를 구현하고 축제를 만들어내며 굿즈를 제작하는 것이 훨씬 용이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 역시도 하나의 콘텐츠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그 콘텐츠를 활용한 다양한 2차 생산물들을 몰입감을 가지고 즐길 수밖에 없게 된다.
흔히 그저 놀이기구들만이 가득하고 테마가 없는 놀이공원에 대해서는 '테마파크'가 아니라 '놀이공원'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디즈니랜드는 분명한 테마가 존재하는 '테마파크'이다. 그들은 곰돌이 푸, 토이스토리, 피터팬, 아바타를 연상시키는 캐릭터와 배경을 활용하여 파크를 꾸며놓았다. 손님들은 이 파크를 방문해서 그들이 관람했던 콘텐츠 세계로 한번 더 빠져들게 되고, 그때의 몰입감과 더불어 200%로 테마파크를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콘텐츠를 그들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디즈니는 코로나19의 현 상황처럼, 테마파크나 극장을 비롯한 오프라인 산업이 큰 어려움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건재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그들은 묵묵히 애니메이션과 콘텐츠를 만드는 데에 주력을 다하고 있었고, 오프라인 극장에서 영화를 개봉하지 못한다면 '디즈니 플러스'라는 자체 플랫폼을 통해 그들의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그들만의 자산인 콘텐츠가 있기 때문에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디즈니 플러스'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고 있는 지금이다.
- 픽사, 마블, 루카스필름, 21세기 폭스의 인수
디즈니가 요정 가루로 전 세계 사람들을 웃고 울릴 수 있었던 중심에는 그들의 콘텐츠가 있다. 그리고 그들은 적극적인 M&A를 통해 그들의 콘텐츠 범위를 확장했다. 가장 먼저 그들이 인수했던 콘텐츠 그룹은 바로 픽사(Pixar Animation Studio)였다.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하기 이전에도 픽사는 디즈니와의 공동 작업으로 애니메이션 작품을 만들어 오고 있었다. 시나리오부터 개발의 제작 과정은 주로 픽사가 담당하지만, 제작비나 배급, 홍보 등의 영역은 디즈니가 맡는 방식이다.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큰 주목을 받지 못하던 시절, 픽사는 애니메이션 기술에서부터 브랜드의 이미지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디즈니를 훨씬 앞서고 있었다. 결국 디즈니는 '디즈니 성을 룩소 주니어로 밝힐 수 있는' 거래를 도모하였고, 2006년 M&A가 성사된 이래, 픽사는 지금까지 <라따뚜이>, <월E>, <업>을 비롯해 <토이스토리 3>, <인사이드 아웃>, <소울>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애니메이션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인수하고도 디즈니는 멈추지 않았다. 디즈니는 계속해서 고품질의 콘텐츠를 늘리는 데에 집중했고, 그들의 목적을 충족시킬 수 있는 두 기업은 바로 '마블 엔터테인먼트'와 '루카스필름'이었다. '마블 엔터테인먼트'는 마블 코믹스를 기반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회사이며, MCU(Marvel Cinematic Universe)를 구축하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콘텐츠 장인이다. 최근에 개봉한 <블랙 위도우>를 비롯해 <아이언맨>, <헐크>, <스파이더맨>, <어벤저스> 등이 모두 마블 콘텐츠에 해당된다.
디즈니는 콘텐츠 대가인 마블 엔터테인먼트를 2009년에 인수한 이후 약 10년 동안 총 21조 원의 박스오피스 수입을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디즈니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낙관적인 예측마저 넘어서는 결과"를 마블 콘텐츠가 가져다주었다고 이야기했다. 가장 긍정적인 시나리오마저 능가하는 결과를 맛보았을 때의 희열은 어떠할까. 박스 오피스 수입을 넘어서 캐릭터 상품 판매 수입이나 테마파크의 어트랙션에 활용되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고려할 때, 마블은 디즈니의 효자 콘텐츠로 충분히 자리매김했다고 볼 수 있다.
마블이 디즈니에 가져다주는 효과는 경제적인 효과도 물론 있겠지만, '디즈니'라는 브랜드 자체에 새로운 시각을 가져다준 효과도 있다. 주로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영화가 가족용 콘텐츠라는 평가를 많이 받는 반면, 마블의 아이언맨이나 스파이더맨과 같은 콘텐츠는 청소년과 어른을 주된 시청 타겟층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마블의 인수를 통해 디즈니는 보다 더 다양한 연령층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콘텐츠들을 가지게 되었고, 그만큼 더 높은 인기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뒤이어 디즈니가 인수한 회사는 '루카스필름'으로 이곳은 '스타워즈 시리즈'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남긴 '조지 루카스' 감독이 설립한 영화 제작사이다. 조지 루카스 감독은 6편의 스타워즈 에피소드를 완결하고, 2012년에 디즈니에 루카스 필름과 스타워즈 판권을 매각했던 것이다. 자식과도 같은 애정과 애착을 가지고 있던 루카스 필름을 디즈니에 넘기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지만, 디즈니와의 협상 끝에 매각을 결정하였다.
디즈니가 마블의 인수를 통해 청소년과 성인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루카스필름을 통해서는 남녀노소 더 넓은 연령층의 관심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전설의 <스타워즈> 시리즈가 77년에 시작되었던 만큼, <스타워즈>는 예전부터 스타워즈에 열광하고 관람했던 사람들 모두를 포함해 넓은 연령대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 마블 인수처럼 루카스 필름의 인수 역시 고품질의 콘텐츠뿐만 아니라 다양한 고객층까지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디즈니는 21세기 폭스를 인수함으로써 고품질의 콘텐츠 보고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였다. 2019년인 비교적 최근, 디즈니는 21세기 폭스를 인수하였고, 이는 20세기 폭스 무비와 TV 스튜디오를 포함하여 많은 방송 채널 부문의 인수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결국, 콘텐츠뿐만 아니라 콘텐츠를 제공하는 미디어까지도 모두 섭렵하려는 디즈니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21세기 폭스를 통해 디즈니는 스트리밍 업체인 훌루의 지분의 상당 부분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곧 콘텐츠 확보와 동시에 디즈니 플러스로 향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디즈니는 자신들의 핵심적인 역량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 핵심적인 전략을 시행하기 위해 콘텐츠와 미디어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다. 콘텐츠를 넘어 미디어와 채널까지도 섭렵하는 디즈니는 앞으로 얼마나 더 큰 콘텐츠 제국을 형성하게 될까.
디즈니 플러스가 디즈니의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라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기대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이는 결국 기술만이 진화되었을 뿐 본질은 동일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60여 년 전 월트 디즈니가 수립했던 전략을 생각해보면, 결국 디즈니의 중심에는 그들의 콘텐츠가 있었다. 수많은 TV 프로그램이나 디즈니랜드와 월드, 디즈니 굿즈들에 정신이 팔려 디즈니의 본질을 잠시 잊기 쉽기도 하지만, 그들은 결국 '콘텐츠' 기업이었다.
그렇기에 디즈니는 가장 먼저 그들의 핵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고, 그들의 애니메이션 발전 속도가 둔화됨을 느끼자 다양한 콘텐츠 기업들을 인수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다.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시작으로 마블 엔터테인먼트, 루카스 필름, 그리고 21세기 폭스 등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그들의 중심을 굳건히 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디즈니 플러스 역시 이러한 디즈니의 역량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디즈니 플러스는 분명 진화된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지만, 그들이 고품질의 콘텐츠를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면 과연 디즈니 플러스에 대해서 사람들이 손꼽아 기다리고 기대할 수 있었을까.
우리에게 수많은 요정 가루를 뿌릴 수 있었던 디즈니의 콘텐츠가 곧, '디즈니'라는 기업의 '본질'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새겨본다.
[참고]
https://hbr.org/2013/05/what-makes-a-good-corporate-st
『디즈니만이 하는 것』, 로버트 아이거 지음, 안진환 옮김, 쌤앤파커스 출판
『포스트테마파크』, 네모토 유우지 지음, 박석희·김상원 옮김, 일신사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