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브 Aug 02. 2018

#8. 단지 모성애로만 육아스트레스를 이겨내야 할까?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독박육아를 하면서 힘든점은 참 많지만 가장 힘든점은 아이때문에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울컥하는 이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잠깐의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양육자가 몸과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아이가 원하는 놀이나 요구사항을 다 들어줄 수 있지만, 회사에서 일마치고 돌아와서 피곤에 짓눌린 프로독박러에게는 말 안듣고 고집 센 나의 아들이 가끔은 너무 버겁고, 특히 불쾌지수가 높은 날은 가끔 감정적으로 동요되기도 한다.






Episode.


 얼마전에 있었던 일이다. 퇴근하고 돌아오자마자 아들은 나의 손을 잡아끌며 얼마전에 산 킥보드를 가르친다. 징징거리는 울음소리를 동반하면서 나를 어찌나 강하게 잡아끄는지, 엄마 옷갈아입을 시간을 좀 달라도 해도 이 말은 알아듣지 못하고 얼른 나가자고 보채기 시작한다.


 숨돌릴틈도없이 얼른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아파트 광장에 들어서니 예전에 문화센터 수업을 같이 듣던 쌍둥이네를 오랜만에 마주쳤다. 반가워서 잠깐 인사를 하고 얘기를 나누는데 이 성질급한 아들은 그새 뿔이 나버렸다. 엄마 주변에서 킥보드를 타도 될 것을, 나를 잡아끌고 낑낑대고 결국 자기를 안으라고 성화이다. '여기서 씽씽이 타도 괜찮아'라고 적극 권장해도 왜 그런지 말을 듣지 않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쌍둥이네 엄마는 '아기가 참 활발하네요'라고 말을 했다. 급기야 갑자기 '빠빠'를 계속 외치며 떼울음이 나왔다. '빠빠'가 뭐지?? 일단은 안고 달래는데 울음을 그치지 않고 더 심하게 울었다. 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 관해서 얘기를 하던터라 좀 더 듣고 싶었는데... 결국 오랜만에 만나도 얘기 몇마디 나누지 못하고 헤어졌다.   그 와중에도 쌍둥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얌전히 유모차에 앉아있었다, 소리한번 지르지도 않고 싸우지도 않고. 단 5분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 아들은? 계속 짜증내며 울며 소리지른다. 도대체 빠빠가 뭐지? 바이바이도, 빵도, 빵빵이도 아니란다. 처음듣는 어투라 나는 도무지 알아듣지 못했고, 아들은 그런 내가 답답한지 울고불고 난리를 쳐서 우리 둘은 동네구경거리가 되고 있었다. 결국 감당이 되지 않아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다시 들어왔다. 이런 날엔 아들래미를 타지에 있는 남편에게 데려다 놓고 싶다. 나의 이 울렁이는 감정과 스트레스는 그대로이지만 일단은 어쩔 수 없으니 꾹꾹 눌러참고 아이를 달래고 놀아주고 씻기고 재웠다. 솔직히 이 날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내 새끼는 너무 예쁘다. 그런데 나도, 세상의 모든 엄마들도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아무리 내 아이가 예쁘다고 해도 엄마도 심신이 지친 날, 그럴 때면 에너지넘치고 까다로운 아이를 맞춰주기 힘들다. 잠깐만이라도 나 혼자서 멍하게 누워서 있고 싶은데, 이런 나의 마음을 모르는 아이는 나보고 일어나자며 밖으로 나가자고 손을 끌면서 징징거리거나, 음식을 가지고 장난을 쳐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다.


 왜 한 두번, 아니 좋은말로 10번이나 얘기해도 듣지 않는걸까? 결국엔 아이에게 무섭게 목소리를 높이며 호통올 쳐야 아이도 본인이 잘못한걸 아는지, 아니면 상황이 심각한걸 아는건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거나 황송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의 눈치를 본다.


 그러곤 밤에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며 자책한다.  정말 별 일 아닌데, 왜 그렇게 나는 욱해서 아이에게 호통을 쳤는지, 그렇게 눈물이 나서 엉엉 울었는지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정말 별거 아닌데... 이러지 말자, 이러지 말아야지. 내 욱하는 감정을 없애지도 못한채 다시 엄마라는 이름으로 그 감정을 꾹꾹 눌러놓고 다시 좋은 엄마가 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욱하는 감정, 스트레스를 제대로 없애지 못하면
어느 순간 이 상황은 반복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말 안듣는 아이를 변화시키는 방법은 없다. 말 잘듣고 떼쓰지 않고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는 아기가 이 세상에 존재할까? 아기이기 때문에 말을 안 듣는거라 이 문제는 시간이 지나야 차츰차츰 해결이 된다.(그리고 가슴에 손을 얹고 내가 엄마 말 안듣고 고집센 아이였다면 내 아이도 나 닮아서 그런거라고 인정을 해야한다...)


 

 그럼 울컥하는 엄마를 변화시키는 방법은 있을까? 그 방법은 너무나 많다. 그런데 그 방법은 본인만이 제일 잘 알고있다. (이러한 경우 보통 조력자는 남편이 되야하지만, 그런 남편이 있다면 독박육아 자체를 하지 않았겠지)

 

 한 번쯤은 그 방법을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내 인생에서 재미는 뭘까? 아니면 나에게 독박육아를 이겨낼 체력이 있다면 힘들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독박육아를 담담하게 받아들일 멘탈이 있다면 행복하게 육아를 할 수 있을까? 내가 뭘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엄마의 육아 스트레스는 단지 엄마라는 이유로 '내 아이가 잘 크는 모습만 봐도 행복해요'라고 하며 행복으로 포장할 시대도 지났다. 이렇다 보면 어느 순간에 아이에게 또 울컥한다. '나에게는 너의 모습이 오직 단 하나의 행복인데, 왜 그 행복을 주지 않고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거니?'


  나에게는 육아가, 내 아이가 나의 온전한 행복이 될 순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희생적 마인드의 엄마가 아니라서 독박 육아는 부담이자 내 행복에 큰 장애물이라고 생각도 했다.  물론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도 너무 행복하고 예쁘지만, 아이와는 별개로 독박육아는 나에게 너무나 큰 스트레스였다.


 이를 방치하면 나만 힘들고, 그 화살이 결국 아이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나만의 행복이 있어야 육아 스트레스가 왔을 때 이겨낼 수 있었다.  나의 경우는 운동을 할 때, 예쁜 옷을 입을 때, 누워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영화볼 때, 신나게 춤을 출 때, 나와 같은 육아동지들과 수다를 떨 때, 그리고 글을 쓸 때 스트레스가 풀고 행복함을 느낀다. 그래서 시간날 때마다 기를 쓰고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위와 같은 것을 하곤 한다. 아이를 재우고 영화를 보거나, 출퇴근 시간 틈틈이 브런치로 글을 쓰고, 가끔 일마치고는 육아동지들과 공동육아를 하고, 주말에는 자유부인이 되어 술한잔 하기도 한다.




나의 행복 중 하나, 주말에 남편과 아기 낮잠재우고 카페에 와서 글쓰기



 나의 독박 육아는 이런 행복과 동행될 때 질이 더 높아졌다. 그래, 솔직히 나는 아직도 아이를 키운다는 것 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내가 독박육아를 하면서도 나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독박육아 역시 행복하다.



모든 엄마들이 이 사실은 꼭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7. 육아를 도맡아주지 않는 친정엄마와 시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