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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 Jul 23. 2018

#7. 육아를 도맡아주지 않는 친정엄마와 시엄마

왜냐하면 그분들은 이제서야 엄마의 무거운 역할에서 벗어났으니까


 얼마전에 또 나의 상황이 한스러워 엉엉 울어버렸다.(참고로 저는 울보입니다^^;)


 팀장님께서 갑작스럽게 다음주에 해외출장을 다녀오라고 하셨다. 1박2일의 빡빡한 일정이긴 했지만 비즈니스 미팅처럼 힘든 업무는 아니고 머리도 식힐겸 해외 기술 동향을 배워오기 위해서 교육 느낌의 컨퍼런스에 보내주셨다. 여름휴가철이 다가오니까 여권에 도장을 찍고싶은 마음이 들어 몸이 근질거리던 찰나에 아주 좋은 기회였다. 예얍 신난것도 잠시,

 


 그동안 아들은 누가봐주지?


 새벽에 나가야 하는데 누가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지? 이모님 업무시간이 끝나면 밤에 누가 아들을 돌보지? 둘째날도 늦게 한국에 도착하는데 누가 아들을 봐주지?

 


 남편은 자유롭지 못한 몸이라 도와주기 힘든 상황이고, 친정엄마 시엄마는 먼 지역에서 갑자기 서울에 와주실 상황이 안되었다. 시터이모님도 엄연히 월급을 받고 일하시는 분인데 이런 무리한 부탁을 드리는게 너무 죄송스러웠다. 혼자서  너무 고민하면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고 부탁하기 시작했다. 남편에게는 적어도 반차를 써서 출장 당일 새벽에 나가는 나를 대신해서 아이와 있어줄 수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하고, 혹시나 남편이 안될까봐 친구의 동생에게 베이비시터 알바를 부탁해놓기도 했다. 시터이모님께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겨우 얘기를 꺼냈다.



 다행히 남편은 반차정도는 쓸 수 있었고, 시터이모님도 마침 다다음주가 어린이집 방학에 맞춰 유급 휴가를 드렸기때문에 정말 고맙게도 이틀 꼬박 아들을 맡아주시기로 했다.



 겨우 출장을 다녀올 수 있는 상황이 되고 나니 긴장이 풀리는지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도 아니고 고작 1박2일의 짧은 시간인데...어떻게 출장 한 번 가는게 이렇게 힘들 수 있지? 독박육아만 아니라면 별 고민없이 다녀올 수 있지 않았을까? 주변에 친정엄마 시엄마가 있었다면 맘편히 다녀올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왜, 도대체 왜 이틀 해외출장 가는걸로 이렇게 쌩 난리부르스인걸까? 부럽다, 남편이랑 같이 사는 사람들이. 부럽다, 친정 시댁에서 도와주는 워킹맘들이.



 내가 너무 처량해보여 속상한 마음에 엉엉 울었다. 이럴때 친정이나 시댁이 가까워서 좀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는데...

 






 주변 워킹맘을 보면 친정엄마와 시엄마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부부가 일을 간 동안 아이를 봐주시거나 또는 거리 문제로 평일에는 아예 아이를 친정이나 시댁에 보내는 분들도 있다. 심한 경우는 친정엄마가 평일에는 딸 집에서 살고, 주말에 퇴근하는 경우도 보았다.  



 그러나 나는 친정과 시댁에서 육아에 별 도움을 주지 않는다. 물론 지금은 물리적인 거리가 많이 멀다보니 도음을 못 받고 있지만, 내가 생각할 때는 친정과 시댁 모두 가까이 있어도 일 나가는 딸 대신, 며느리 대신해서 육아를 해주실 분들이 절대로 아니다. 어린이집 방학처럼 미리 부탁드릴때나, 또는 내가 친정집 지역으로 출장을 가는 경우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멀리 도움을 못주신다.(그리고 굳이 안 주신다)



 물론 나도 친정시댁 도움받을 곳이 없어서 아쉬운 상황이 많이 발생하긴 하지만, 나 역시 두 분께 전담해서 육아를 해달라는 부탁을 할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두 분 모두 이제서야
엄마/며느리의 무거운 역할에서 벗어나
본인의 삶을 살고 계신다.




 울엄마는 본인 활동을 하시느라 매우 바쁘시다. 춤을 무척이나 좋아한 엄마는 한국 무용을 배워서 공연을 다니시고, 지역 봉사활동도 하고 교양수업도 듣고, 다양한 모임의 회장직도 맡고 잘은 모르지만 지역 정치판에도 뭔가 발을 들이신것 같다. 모임도 어찌나 많은지, 집에 있을 틈이 없으시다. 울엄마도 전형적으로 자식때문에 당신의 모든걸 희생한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왔고, 며느리를 남의 집 귀한 딸래미로 전혀 대우해주지 않는 시댁의 뒷바라지를 해오셨다. 


 그러나 이제는 딸은 결혼했고, 아들도 취직을 해서 엄마로서 할 일을 다 끝낸 기분이라고 하셨다.명절과 제사도 이제는 생략하기로 합의했고, 엄마의 시엄마가 이젠 많이 늙어서 더이상 시집살이는 하지 않으신다. 거의 30년만에 엄청나게 무거웠던 엄마와 며느리의 역할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시엄마는 귀농하셔서 매우 바쁘시다. 심지어 딸이 매우 가까이 살고 있고, 워킹맘인데도 불구하고 가끔  사정이 생길때는 제외하고 아이를 맡아주시지 않는다. 결혼한지 몇년이 안되어 속사정을 잘 모르긴 하지만, 시엄마는 울엄마보다 더 힘들게 엄마와 며느리의 삶을 살아오셨다. 이제서야 자식들을 다 시집 장가 보내고, 이젠 당신이 할머니가 되어서 엄마와 며느리의 역할에서 벗어나셨다.



가끔 서울에 놀러와주시는 것만으로 고마운 친정 엄빠

  



 비로소 본인의 삶을 찾으신 분들에게 또 다시 나를 대신해서 엄마의 역할을 해달라고 말할 수 없다. 나도 힘든 육아를 두 분에게 떠맡길수도 없고, 30년 이상이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았던 분들에게 또 다시 더 무거운 '손자'라는 짐을 얹어드릴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내새끼 돌보는거 힘든데, 우리 엄마와 시엄마라고 안힘들까.



 물론 아이보는것을 좋아하셔서, 집에서 노느니 손자를 기꺼이 맡아주시겠다는 분들은 문제될 것은 없지만, 우리 엄마와 시엄마처럼 두 분의 삶을 찾으신분께 힘들어하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셈치고 손자를 돌봐달라고 할 수 없다. 나 역시 아들을 위해서 내 모든걸 희생하지 않고 워킹맘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더더욱 나는 그럴 수 없다.  이제 두 분만의 삶을 찾으셨으니 자식을 위해서 더이상 희생시키는 존재로 만들지 말아야지. 


 

 

 이렇게 오늘도 워킹맘 프로독박러는 정신승리를 하고 있다 :-)






내 팔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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