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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로 Nov 26. 2023

혼잣말로 말을 거는 남자

내게 말을 거는 것 같다. 하하하


나는 살면서 한 번도 혼잣말을 해본 적이 없다. 주로 머리로 생각하고, 행동으로만 옮긴다.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나서 스트레칭하고 물을 마시고 빨래를 해야겠다 속으로 말을 하고 행동으로 하나씩 옮긴다.

행동 속에서 자잘한 감정이 들거나 큰 계획을 세워야 하는 일이 생기면 노트를 꺼내 글로 적는다.



데이트를 하다 보면 계속 대화를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각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공간을 함께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데이트라고 생각하는 시기가 온다.

같은 공간에서 자신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같이 있지만 적정한 거리에서 그와 내가 온전히 존재하는 상태이다.

때문에 둘 사이에서는 어색함이 있어서는 불가능한 상태이다.

서로가 편안하고 안정적이고 충분한 애착관계가 형성되어야 가능하다.

이런 시기에 온 것에 대해 이 시기를 즐기고 있는 터였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어색하지는 않으나 당황스럽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는 상황.

이름하여

혼. 잣. 말.



그는 짜장면 먹방 영상을 하나 보면서도

"와 진짜 맛있겠다. 근데, 조금 물리나 보네, 고춧가루를 넣네.

타미 맨투맨이 예쁘네.

아 저 그릇 너무 탐나는데, 나도 저런 그릇에 먹고 싶다.

깔끔하게 클리어했네. 역시.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적우적 잘 먹네.

아이고 드륵드륵 소리 장난 아니네.

와... 저 파김치... 와.... 이야 엄청나네.

에이 근데 별로 맛있게는 못 먹네. 아쉽다."



영상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생각

각종 의성어 의태어 등 표현을 아주 다채롭게 한다.


처음에는 그가 나에게 말을 거는 줄 알았다.




네?? 저 불렀나요??

아니요! 영상 보고 있는데요.

아....

이야 나도 먹고 싶다. 크...

네? 뭐 먹고 싶다고요??

아, 영상에서 맛있게 먹어서요.

면발 소리가 엄청나네. 와

네??? 저한테 하는 소리인가요.




하...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계속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

대답을 해야 할 것 같고, 맞장구를 쳐줘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고, 맞장구 같은 리액션도 필요 없다.

단지 영상을 보면서 혼잣말을 할 뿐이다.


한동안 생각했다.

대체 이 사람은 왜 이러는 것일까.

멀쩡하게 생겨서 왜 저러는 걸까.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이 사람의 혼잣말은 내가 일기를 쓰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그저 글이 아닌 말로 내뱉는 것이다.

말로써 하루의 일기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일 뿐이다.



놀랍게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는 혼잣말을 하고 있다.


이번에는 치킨먹방이다.


아, 소리 대박이네. 이 시간에 치킨집 안 열었나.

다 문 닫았네. 이 사람은 맥주랑 마시잖아.

이 형이 같이 치얼스를 해줄 수가 없다. 난 맥주가 없어!!!



정말....

사실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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