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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진 Aug 25. 2022

50, 그리고 나의 두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

잠깐만요, 제가 지천명(知天命)이라고요?

 50

 쉰이 코앞이다. 가슴이 철렁하다. 쉰~, 하고 풍선 바람 빠지듯 허공에 내뱉고 보니, 왠지 '쉰' 뒤에 '밥'이라도 갖다 붙여야 할 것만 같다.(이건 가당찮은 자괴감이겠죠?)

 공자님은 하늘의 뜻과 세상 이치를 아는 나이라면서 쉰 살에 지천명(天命)이라는 멋진 이칭(稱)을 하사하셨다는데, 백세시대인 요새 쉰 살들에겐 영 안 어울리는 말씀이시다. 그럼에도 어찌 됐건, 나 넉 달 후 오십 세다. 무려 반백년을 산 것이다.(깊은 한숨......)


 이십 대 땐 진담이었지만 농담처럼 이런 말을 자주 곤 했다.


 '오십까지 산다고? 오십 되면 그냥 길 위에서 객사(客死)할까 싶어......'

 살던 집이나 동네에선  죽는 것도 번잡하고 준비할 게 많은 '일'이 될 테니, 그냥 인도의 바라나시나 티베트 같은 그럴싸한 곳에서 길 위를 떠돌다 얼어 죽거나 굶어 죽고 싶단 소리였다. 그러니까, 오십 너머의 삶은 내게 이십 대 땐 존재하지 않는 무(無)의 시공간이어야 했다. 그땐 삶이란 게 49에서 50으로 넘어가기 전 어딘가로 증발되거나 실종됐으면 하고 바랐다. 에로스(Eros)적인 생의 욕망이 넘실거리는 이십 대의 한가운데서도 난 먼발치로 오십의 뒷덜미를 바라보며 파괴와 죽음의 신인 타나토스(Thanatos)를 주술처럼 시시때때로 불러댔던 것이다. 오십은 내게 그런 것이었다. 분명한 경계와 사멸의 시간. 그리고 그것은 죽음을 통해 실현될 초월의 시간처럼 유혹의 모양새를 띤 채 멀리서부터 내쪽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내가 아직 아이였던 때, 아버지는 50년을 겨우 살다 돌아가셨다. 어떤 전조나 신호도 없이 하룻밤만에 완결된 죽음이었다. 하룻밤만에 이곳에 존재하던 내 존재의 반쪽 증거가 0으로 순식간에 수렴됐다는 게 어린 나에게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족의 첫 죽음이 아니었는데도 아버지의 죽음은 더욱 비현실적이고 난해했다. 그렇기에 애시당초 애도나 상실감을 위한 나만의 씻김굿은 있을 수도 없었으며 '죽음은 50'이라는 수상한 깨침이 무의식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으리라.

 더이상 젊지도, 그렇다고 늙은 것도 아닌 경계에 걸친 아빠를 데리고 간 50이라는 숫자는 어째 죽음과 너무 잘 어울려 보인다. 생각해보면 죽음은 절정이 급격하게 꺾이는 지점에서 가장 분명하고 공포스럽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싶다. 그 후로는 그것을 조금씩 실재화해 나가는 것일 뿐, 죽음의 존재감은 절정을 향해 봉우리가 꽃으로 활짝 폈다 사그라드는 바로 그 지점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것일 게다. 그리고 우리들 생의 귀퉁이들 또한 그 순간부터 시나브로 이지러지는 게 아닐까.  


마흔둘, 나의 첫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


 오십을 향한 단단한 결의는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면서 천천히 뭉개졌다. 그럼 육십이나 칠십으로 내 생의 마침표를 미뤄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고작(?) 죽음의 타이밍에 천착하기엔 삶이 죽도록 바쁘고 정신없었다. 애쓰지 않아도 언제라도 숨통이 막히는 게 매일매일이 어차피 딱 죽을 맛이었다.

 사십을 넘기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즈음이었다. 뭔가 의례가 필요했다. 바닥을 드러내며 바짝 말라가는 삶 위로 의미의 투망을 던져줄 퍼포먼스가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굳이 그 먼 유럽으로 건너가 800km를 걸어야 말라가는 삶이 다시 차오르는 거였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다만, 이 단어 하나가 나를 유혹해왔다.

  순례자, 者, peregrino, pilgrim......


 야매 신자에 불과했지만 프랑스의 생장으로부터 성 야고보의 유해가 묻힌 스페인의 산티아고까지 800km의 대장정을 걷는 고단한 순례자 무리에 한번 섞여 들어 보고 싶었다. 그러다 보면 왠지 내가 놓친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통찰의 순간이 한 번쯤은 찾아와 줄 것만 같았다. 그럼 또 그것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어 흐트러진 내 삶의 순서와 질서가 가지런히 제자리를 찾을 지.


 하지만 내 기대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순례길을 걸었던 삼십일 동안 난 한국에서의 난삽했던 일기장을 등장인물만 바꿔 다시 쓰고 있었다. 길 위의 세상은 어느새 온갖 너저분한 감정 덩어리들의 전시장일 뿐이었다. 대상을 잘도 바꿔가며 돌진해 가는 분노와 미움, 질투와 열패감의 감정들이 통제 불가능한 야생마처럼 내 마음길 위에서 날뛰고 있었다. 알 수가 없었고 다시 이곳에서 지옥을 쓰고 있는 내 맘이 두렵게만 느껴졌다. 중요한 건 사실 날뛰던 감정들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그것들을 바라보고 처리했느냐 하는 것일 텐데, 결국 난 두려워 이 모든 삶의 복습 과제들이 전하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돌아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새로운 등장인물들과 함께 만든 그 감정 덩어리들에 대한 기억과 흔적을 하얗게 표백시켜 놓았다. 그리고 (핸드폰 번호가 바뀌면서, 이사를 하면서, 노트북을 포맷하면서) 우연인 듯 첫 번째 산티아고와 관련된 모든 물리적 증거들도 n번째 우주가 사라지듯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남들은 평화롭 즐기듯 잘도 걷는 까미노 위에서 난 왜 다시 대 카오스의 우주만 지어놓고 도망쳐 나왔을까. 가슴 웅장해지도록 의미를 찾고 매듭을 짓고 싶었던 마흔둘 내겐 한국에서의 일상이 그대로 투사된 순례길의 과제가 꽤나 버거웠던 게 아닐까, 하고 짐작만 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 의식의 표면에서 지껄여대던 성찰이니 깨달음이니 하던 말들 뒤편에 있던 진심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알 수 없다. 다만 걷고 또 걸어 버리고 비움으로써 버텨내는 끝없는 길 위가 아닌 뭐가 됐든 깃발을 꽂고 선언할 수 있는 분명한 성취와 보상 쪽에 더 내 맘이 가 닿아 있었던 게 아닐까, 또 짐작만 해본다.


50-1, 마침내 두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


 쉰을 올 한 해는 슬프고, 아프고, 어쨌든 다이내믹하게 전개되는 중이다. 엇보다 또 한 번의  죽음이 있었다. 쉰으로 건너가는  막내아들이 하늘의 뜻과 세상의 이치를 알아가는데 일조하려는 듯 건강하시던 어머니가 뜬금없이 사흘 만에 돌아가신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은 결국 잊고 있던 50과 죽음의 그 단단한 밀착을 내게 다시 상기시켜 놓았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한통속처럼  왜들 그러시는 걸까. 예고도 없이 그토록 급하게 죽음의 과제를 내게 던져들 놓고 떠나면 쯤 됐으니 이제 내가 그 거대한 질문을 받아 들고 이해해가며 철든 어른이 될 거라 믿으신 걸까. 그렇게도 나를 모르셨다니. 힘겹게 도망쳐 다닌 그 질문이 다시 주어진다고 덥석 내가 그걸 받아 들 줄 아셨다면, 네, 오산입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두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이 내게 오고 있다. 그건 첫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과는 달리 '남'의 의지에 편승해 내게 다가오는 중이다. 많이 아팠다 조금씩 회복 중인 막내 누나의 간절한 바람이 가 닿은 곳이 우연찮게(?) 산티아고 순례길이었고 나도 함께 가게 되었다. 함께 가지 않을 이유가 딱히 없었고 같이 걷는 까미노가 누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이건 어머니의 죽음 이전에 계획한 것.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 이후 이 계획 남겨진 우리 둘의 과제가 버렸다. 숙제란 미룰 순 있지만 결국은 내 손으로 끝내야 하는 무엇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만 미룰 때란 걸 받아들일 수밖에.


  성공과 실패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보라고들 하지만 (프레임 속에서 헤맨) 나의 첫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엔 어쩔 수 없이 '실패'란 표딱지를 붙일 수밖에 없으니, 그리하여 마침내 두 번째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찾아온 모양이다. 이번엔 프레임 밖에서 앞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좀 더 깊게 걸어갈 수 있을까. 크고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깊고 내밀한 기도로 매일매일을 맞이할 수 있을까. 신기방기한 만남들에 호들갑스럽게 얽혀 또 지우고 싶은 우주를 만들기보다, 짊어지고 온 우주와 화해하고 잘 떠나보 수 있다면, 지천명이 코앞에서 진격해 들어온다 해도 당황하지 않고 환대할 수 있지 않을까, 꿈꿔 본다.


 더이상 쉰에 죽을 생각은 없지만, 아직도 50은 내게 거대한 물음표다. 그리고 그 물음표와 맞닥뜨린 나의 두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 이번엔 나의 질문이 아닌 나에게 찾아온 물음표가 천천히 드러내 줄 길 위의 만남과 침묵에 좀 더 귀 기울여야겠다. 그리고 이 길이 기도가 될 때까지, 순간만이 남을 때까지 난 웃고 울며, 고 성찰하고, 마침내 그저 걷고 또 걷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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