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량의 객차를 가진 기차가 있다. 첫째와 셋째, 마지막 객차는 투명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이런저런 유형의 손님들이 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넷째 칸은 투명 유리로 되어 있지만 손님은 없고 텅 비어있다. 두 번째 객차는 검은색 선팅으로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다.
“투명유리창으로 된 텅 빈 네 번째 객차 안을 채우라면 무엇으로 채우겠는가?”
질문을 받는 순간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달리는 기차가 연상되고 어떤 것으로 채우면 아름다운 기차의 풍경을 완성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또 바로 이어지는 질문, “둘째 칸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적잖이 당황할 것이다. 아무도 없을까? 아니면 멋진 신사가 책을 읽고 있을까? 아니면 전혀 새로운, 절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 있지 않을까 등등 두서없이 떠오르는 것들을 얘기할 것이다.의문의 둘째 칸, 넷째 칸의 객차는 여러분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나는 이런 질문을 즐기는 부류의 사람들을 잘 안다. 바로 작가들이다.
검은색 선팅으로 된 둘째 칸에 무엇이 있는지 아니면 왜 그 객차만 진한 선팅이 되어 있는지는 첫 번째와 세 번째 칸을 잘 관찰하고 이해해야 좋은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있다. 역시 네 번째 객차의 빈 공간을 채우는 창의력 역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앞·뒤의 서로 다른 모습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출해야 더욱 빛날 수 있다.
물론 전혀 색다른 것들을 제시하며 우리를 놀라게 하는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엉뚱함을 넘어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데에는 그만한 논리를 갖춰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리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상상력도 마찬가지다. 경험이 많을수록 상상력은 풍부해지고 창의력은 샘솟는다.
개인이 상상할 수 있는 범주는 자신의 경험과 어휘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는 단어만큼 상상할 수 있다는 말로 생각의 크기는 언어의 크기와 비례한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결과이기도 하다. 생각은 있으되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작가는 상상력이 가장 풍부한 사람이다. 그들은 일반 사람들이 경험할 수 없는 신세계를 책을 통해 무수히 떠돌아다니며 간접 체험을 한다. 또한 언어의 향연이 벌어지는 책 속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내는 작가에겐 그에 준하는 언어의 힘, 즉 언어력이 존재한다. 어찌 보면 상상력은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사이를 연결해 주는 열쇠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아는 단어가 많고 수준이 높으면 당연히 상상력을 표현하는 길도 풍부해질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읽는 쾌감을 느끼게 한다.
창의력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상상력으로 그려낸 이미지를 현실에 적용하고 변화시키는 힘이 창의력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상상력과 창의력이 작가의 무기이다.
이 말을 역으로 해석하면 상상력과 창의력을 배우기 위해선 작가를 만나야 하고 직접 대면할 수 없다면 책을 통해 배워야 함을 말한다. 진실로 작가의 통찰력은 뛰어나다. 몇 천 년 전의 역사를 보지 않고도 논리나 감성으로 공감되게 글을 쓴다. 인류가 달에 사람을 보내기 수천 년 전에 이미 토끼를 달에 보낸 사람이 작가들이다.
정형화된 교육의 틀에서 바른 교육을 받다 보니 상상력ㆍ창의력이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상상을 해보라는데 틀에 박힌 상상밖에 못 하거나, 창의력이 대세라는데 엉뚱한 창의력으로 혹 실수할지 모른다는 고민이 된다면 통섭의 방법을 찾아보자. 미래에는 통섭의 힘을 키우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윌슨 교수가 쓰고 최재천 교수가 번역한 『통섭』이란 책이 한창 화두가 된 지 오래다. 그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소통하고 통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의미의 학문이라고 인터뷰했다. 자연과학자인 최재천 교수의 관점에 치우친 해석이란 논란이 있기도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질적인 두 학문이 만나 창의적인 생각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통섭이란 단어만 낯설었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은 모두 이런 어우러짐을 통해 발현되었다.
요즘 기업들이 원하는 인재상도 바로 통섭형 인간이다.
초고속 인터넷과 공장자동화 기술의 평준화로 기업들은 더 이상 가격적인 차별화나 기술적인 차이를 담보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적 감성과 자연과학적 기술을 접목한 제품으로 애플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만들었다. 통섭형 인간의 전형적인 성공 사례로 그를 지목하는 이유다. 기업들 또한 통섭형 인간으로 바꾸기 위해 회사 내 교육을 강화하고 신입 사원의 자격에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사람을 요구하기도 한다.
요즘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귀에 들리고 눈에 자주 띈다. 네 번째로 세상을 바꿀 만한 혁명이 온다는 것이다. 혁명이란 지축을 흔들 정도로 사회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는 사항이다. ‘인공지능’, ‘로봇기술’, ‘사물 인터넷’과 ‘빅데이터’ 등을 통한 새로운 융합이 빠르게 진행된다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의 요지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초지능’과 ‘초연결’로 대변된다.
바둑의 신 이세돌을 이긴 구글의 ‘알파고’는 시작에 불과하며, 그 몇백 배 또는 몇천 배의 지능을 가진 인조인간이 탄생할 수 있음을 알렸다. 기존의 로봇이 인간의 단순 노동을 대체한 것과는 달리 정밀성과 정확성을 두루 갖춘 로봇이 대부분의 일을 대신하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기존의 산업혁명에서 습득한 경험치로 미루어 호들갑을 떨면서 준비할 필요는 없겠지만 중요한 순간이 오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기회는 정체되고 안정되어 있을 때 오는 것이 아니라 격변의 세상일 때 훨씬 빨리 다가온다.
인간의 힘을 기계의 힘으로 바꾼 1차 산업혁명은 대토지를 가진 봉건 영주들은 몰락시키고 농부들이 농촌을 떠나 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도시의 빈곤한 삶을 살게 했다. 반면 신흥세력이라 불리는 공장주나 기업가들은 자본주의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기계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영주가 몰락하고 열심히 땅만 보고 일하던 농부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렇듯 혁명은 모든 것을 한순간에 바꾸어 버린다.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을 역풍이 아닌 순풍으로 만드는 지혜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다가올 산업혁명을 이해해야만 준비가 가능하다. 한 마디로 인공지능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이 된다는 것인데, 반대로 인공 지능 로봇이 할 수 없는 것을 찾으면 자신이 준비해야 할 미래를 알 수 있다. 똑똑한 로봇이 할 수 없는 영역, 작가에게 버금가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 보자. 통섭의 의미를 아무리 포장해도 본질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밑거름으로 하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의 블루오션은 통섭의 지식에서 시작됐다. 궁극적으로 미래에 필요한 인재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다. 지금도 이런 사람들은 충분히 대우받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아리스토텔레스, 아르키메데스, 레오나르도 다빈치, 우리나라의 정약용 같은 인물은 모두 통섭형 인간이다.
이들은 모두 책 읽기를 권한다. 남다른 상상력과 창의력을 갖고 표현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 상상력을 키우라는 것이다. 작가의 상상력을 받아들이는 순간 자신의 경험과 생각 속에 내재돼 있던 창의력과 통섭되어 여러분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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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망치다
저자 황민규
출판 미디어숲
발매 2018.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