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연구센터]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제목처럼 성공과 실패를 판단해야 한다면 아마도 현실과 정의의 그 어디쯤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비겁한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이 될 수는 없기에 그런 성공이 필요할 때도 있다. 또는 당당한 실패가 떳떳하긴 하더라도 실패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 또한 아니다.
적어도 실패를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비겁한 선택만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대학생이 초등학생과 축구 경기를 해서 이긴다면 정당한 승리라고 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연구개발 성공률을 99%나 된다고 한다. 오늘 우연히 유투브에서 봤는데 듣는 순간 한민족의 저력을 실감했다. 그리고 나는 이내 실망했고 이 글을 쓰는 이유가 되었다.
실패의 두려움과 압박으로 성공 가능한 연구만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99%의 성공률이라는 수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성공할 수 있는 도전만 한다는 것이 대단치 않은 내가 봐도 얼굴이 빨개질 만큼 부끄러웠다.
대학생이 초등학생과 축구 경기를 하고 남자가 여자랑 팔씨름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삶을 유지하기 위한 도전이라면 때론 비겁하더라도 완벽해야 한다. 딸린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은 언제나 그런 정의의 잣대 앞에서 고개를 숙이곤 한다. 비겁하더라도 범죄가 아니라면 가족의 안위를 위해 종종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생존은 정말 무자비하다.
그러나 성공할 수밖에 없는 도전으로 실패의 위기를 모면하는 것은 매우 비겁하다.
그런 성취는 절대 대단할 수 없다.
나 역시 내가 해낼 수 있는 일만 했던 시간이 있었다.
25살 겨울에 나는 아이들에게 스케이트를 가르치고 있었다.
문득 내가 있는 곳이 과거에 내가 꿈꾸던 곳인가 자문해 보니 뭔가 아쉬움이 들었다. 내가 해병대를 지원해서 그중에서도 힘들다는 수색대를 지원했던 이유는 현실에 만족하는 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 것에 도전하며 살기 위한 삶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나는 미래를 고민해 보지도 않고 현재 할 수 있는 일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를 세게 맞은 듯 내가 원하는 것을 좁혀가기 시작했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대학교수, 경찰특공대, 요트 선장, 사업가 등 여러 목표들이 실패로 좌절됐지만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도전해 봤다는 것에 나의 실패를 숨기고 싶지는 않다.
어쩜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처음엔 실패한 사람들에게 나의 실패를 공유하고 나의 경험으로 조금이라도 실패를 극복하는 것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 그리고 점점 실패에 대해 공부하면서 단지 실패로 힘든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 아닌 실패라는 개념을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싶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비겁한 성공은 나의 뜻과 맞지 않다.
쓰러지고 멍들고 상처받아도 내가 가야 할 곳으로 가면서 맞이하는 실패는 멋있다. 실패를 피하기 위한 성공이 과연 우리가 원하는 성공일까? 그것은 가짜 성공이다. 처자식을 위한 책임감이 동반된 당연한 성공은 예외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가장의 역할이므로! 그러나 우리의 도전은 실패 앞에서 절대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실패가 두려워 여자와의 팔씨름에서 이기는 성공이 부끄러울 뿐이다.
성공이 대단한 것은 실패의 위험이 있는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이며 실패를 딛고 결과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지 아름다운 이야기만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