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윤종신> 7월호
2005년, 스무 살의 나는 음악을 무척 좋아했다. 음반을 끼고 사는 것은 물론 틈만 나면 서울 곳곳의 공연장을 찾아다니며 밴드 음악을 듣곤 했다. 그중 가장 큰 즐거움은 홍대 앞 라이브 클럽을 순회하며 인디 밴드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사운드 데이(Sound Day)’가 아니었을까 싶다. 1만 5천 원짜리 티켓 한 장이면 ‘에반스’, ‘FF’, ‘프리버드’ 등 10여 곳 넘는 라이브 클럽에서 밤새 수많은 색깔의 인디 밴드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하던 밴드는 ‘몽니(monni)’였다. 최근에는 보컬 김신의 씨가 뮤지컬에서 활약하고 KBS <불후의 명곡>에도 출연하며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17년 전만 해도 무명에 가까워 소규모 로컬 공연장에서 볼 수 있는 게 전부였다. 나는 보컬의 시원한 가창력에 먼저 반했고 감성 가득한 그들의 노래에 빠져들었다. 무엇보다 몇 안 되는 관객 앞에서도 전력을 다하는 몽니의 날 것 같은 에너지가 좋았다.
몽니와 뜻밖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당시 수강하던 과목에서 ‘직업인 인터뷰’ 과제가 있었는데 별 고민 없이 김신의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 유행하던 싸이월드 미니홈피 방명록을 통해서였다. 널리 홍보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수업용으로만 쓰이는 인터뷰였음에도 그는 흔쾌히 대학생들과의 대화에 응해줬다. 그게 아마도 내 인생 최초의 뮤지션 인터뷰였을 것이다. 반항적 이미지와 달리 그는 교회에서 찬양을 즐겨 하는 건실한 청년이었다.
그와의 특별한 만남 이후로도 나는 한동안 몽니의 공연을 쫓아다녔고 매월 둘째 주 금요일이면 ‘사운드 데이’를 통해 새로운 음악을 접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운드 데이’가 기존의 ‘클럽 데이’와 통합되고 대중화되면서 점점 발길을 끊게 됐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홍대의 음악씬이 변질됐다는 치기 어린 비평을 하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다소 편협했던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지만, 무모함과 자신감 넘치던 그때의 내가 문득 부러워지기도 한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뜨거운 것 같다. 퇴근길 3호선에서는 옆 사람의 옅은 호흡마저도 한낮의 열기처럼 느껴진다. 습관처럼 휴대폰에 담긴 플레이리스트를 열어 본다. 신곡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나의 플레이리스트는 되레 과거를 향해 있다. 언젠가부터 새로운 노래를 찾아 듣는 일이 피로해졌고, 낯선 음악에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짜릿함을 느껴본 지도 참 오래되었다. 동네 공연장을 찾은 건 또 언제였더라. 코로나를 우선 탓하고 싶지만 세월에 따른 무뎌짐과 귀차니즘 때문이라는 걸 나는 모르지 않는다. 이렇게 나는 무료하게, 또 평범하게 늙어가고 있다.
그런 공포심에 숨이 탁 막혀 올 때면 나는 종종 몽니의 1집 앨범을 플레이한다. 너무나 익숙한 멜로디와 조금은 촌스러운 노랫말을 읊조리고 있노라면 몽니처럼 날 것 같았던 나의 스무 살이 가슴 속으로 밀려 들어온다. 그때 그 여름의 소나기가 쏟아져 내린다. 부끄러움을 몰랐기에 더 자유로웠던 나, 땀 냄새 자욱한 무대의 희미한 조명, 그 안을 메우던 수많은 이들의 꿈과 이상, 좌절. 이제는 내 젊음의 한 페이지가 되어버린 몽니의 노래를 들으며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보낸다.
* 웹진 <월간 윤종신> 7월호에 먼저 게재한 글로 아래와 같이 출처를 밝힙니다.
당신의 노래 - 그 여름의 소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