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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킴 Dec 01. 2020

듣는 영화 7.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2013)

세상의 모든 그림자에게 보내는 위로 

한때 넷플릭스에서 비욘세의 ‘홈커밍’이 큰 인기를 끌었다. 홈커밍은 쌍둥이 출산 뒤 ‘2018 코첼라 뮤직 페스티벌’에서 화려하게 복귀한 비욘세의 무대를 포함해 콘서트를 준비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다. 지난 20년간 가수로서의 삶을 이 콘서트에 모두 담았다는 비욘세의 코첼라는 그야말로 한 편의 완벽한 쇼다. 나아가 스타 뒤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수많은 그림자들, 예컨대 여백 없이 쇼를 이끌어나가는 밴드, 쉴 새 없이 춤을 추며 무대를 채우는 댄서들, 비욘세의 보컬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백업 가수들, 그밖에 쇼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의 존재를 함께 비춘다. 비욘세의 코첼라에 흠뻑 빠져들면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스타는 혼자서는 완성될 수 없는 것이라고.



모건 네빌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은 스타의 그림자 가운데 백업 가수들의 존재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영화는 201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사실 요즘 유행하는 대다수의 음악 장르에서는 ‘코러스’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 것이 추세다. 코러스가 필요하더라도 사람이 아닌 기계와 장비를 통해 소리를 만들어내는 일이 너무도 쉬워졌고, 무대에서도 반주 하나로 백업 가수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의 소리’에 보다 충실했던 6~70년대 음악씬에서 백업 가수란 전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스타의 무대를 완성하는 필수 조건이었다. 롤링 스톤스, 스티비 원더, 엘튼 존 등 당시 독보적 인기를 누리던 스타들의 음악을 떠올려보면 그들 목소리 뒤에는 항상 백업 가수들이 있었다. 


“백업 가수가 있으면 훨씬 생기가 넘쳐요.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 노래가 살아나죠. 그때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거예요."


영화는 스타들과 함께 무대를 누비던 당대 백업 가수들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한다. 뛰어난 가창력으로 수많은 스타들의 러브콜을 받았던 달린 러브(Darlene Love). 실력만으로는 가수가 될 수 없던 시절 그는 비틀즈를 만든 프로듀서 필 스펙터의 횡포로 자신의 노래를 다른 가수의 이름으로 발표해야 하는 고통을 겪었다. 생계비를 벌기 위해 한 때 가수의 꿈을 버리고 청소부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흔이 넘는 나이에 자신의 앨범을 발표하며 백 보컬이 아닌 아티스트로서 이름을 알리게 된다.



달린 러브는 고난의 시기를 거쳐 마침내 가수의 꿈을 이루지만 사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다. 세상 속에 자신의 목소리를 알리기 위해 분투하지만 결국 무대의 뒷자리에 머물고 마는 백업 가수들은 너무도 많다. 리사 피셔(Lisa Fischer) 역시 그 중 하나였다. 4옥타브를 넘나드는 폭발적 가창력과 섬세한 표현력을 지닌 그는 업계에서는 거물과 같은 존재이지만 정작 대중에게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롤링 스톤스, 스팅, 티나 터너, 루더 밴드로스 등 지난 30년간 세계적 뮤지션의 히트곡에는 그의 목소리가 함께했다. 


롤링 스톤스의 무대에서 ‘Gimme Shelter’를 노래하는 리사 피셔. 그의 목소리는 믹 재거의 존재감을 압도한다. 그는 1989년 이후 롤링 스톤스의 모든 공연에서 노래했다.


리사는 한때 자신의 앨범으로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 1991년 발표한 첫 솔로 앨범으로 그래미 어워즈에서 ‘최우수 여성 R&B 퍼포먼스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후속 녹음은 이뤄지지 않았고, 리사가 되돌아간 자리는 무대의 뒤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백보컬로서의 인생이 불행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노래할 수만 있다면 스타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말이다. 


“유명해지려면 뭐든 하려는 사람이 있고 그냥 노래만 하겠다는 사람도 있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특별한 공간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거예요. 제겐 이 점이 더 천직이라고 느껴져요."


여성 백업 보컬들의 성장


이밖에도 영화에서는 소울풀한 목소리의 소유자 메리 클레이튼(Merry Clayton), 독특한 음색으로 엘튼 존의 공연을 한층 특별하게 만드는 타타 베가(Tata Vega), 마이클 잭슨의 장례식에서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노래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주디스 힐(Judith Hill) 등 다양한 백업 가수들의 스토리를 만날 수 있다. 더불어 이들의 서사를 통해 교회 음악이 어떻게 대중음악의 코러스로 세속화되어 가는지, ‘남성을 흥분시키라’는 미션을 가지고 앵무새처럼 노래하던 여성 백업 보컬들이 락앤롤이라는 변화의 물결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성장해나가는지 목격할 수 있다. 


“내 생각에 실패란 자신의 가치를 모르는 여성이 작은 것에 안주하는 거예요. 자신의 가치를 알아보세요. 더 가치 있는 사람일 테니."


러닝타임 90분은 백업 가수들뿐 아니라 이제는 흰 머리가 희끗희끗한 당대 스타 뮤지션, 프로듀서, 연주자 등 음악계 종사자의 다채로운 인터뷰로 채워져 있다. 연출자가 충실한 레퍼런스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조사를 하고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이들의 언어는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더라도 꾸준하게 단련하지 않거나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나아가 이는 우리 모두에게 ‘꿈을 이루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가슴 속에 열망이 있어도 현실에 안주해버리거나 정말 중요한 순간 담대해질 수 없다면 언젠가 내게 찾아온 기회를 붙잡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는 드러나지 않더라도 음악의 세계를 보다 풍성하고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백업 가수들처럼, 가슴 속에 이루지 못한 꿈을 간직한 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이라는 큰 무대를 비추고 있는 너와 나를 비춘다.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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