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즈킴 Aug 06. 2021

80년대생 미즈킴씨 1. 34세 김윤정선씨

“저는 서울 마포구에 사는 김윤정선입니다. 문화예술 전문 번역가·에디터 콜렉티브인 ‘예스 모어 트랜스래이션(Yes More Translation)’에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유년시절(학창시절)을 돌아본다면? 어떻게 자라왔나요?


서울 마포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일산 신도시 개발 시기에 일산으로 이사를 해서 20년 정도 그곳에 살았습니다. 어릴 때 꿈은 만화가였고, 용돈이 생길 때마다 모아서 만화책을 사러 갔던 기억이 나요. 홍대 앞 호미화방에서 펜촉, 잉크, 스크린톤 같은 걸 사기도 했고요. 초등학교 6학년 문집에 모든 반 학생들이 ‘꿈이 무엇인가’,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같은 동일한 질문에 답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저는 꿈은 ‘돈 잘 버는 만화가’ 인생의 목표는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살기’라고 적었어요.


어려서부터 유독 감수성이 예민했던 것 같아요. 아주 어릴 때 가족들과 휴가로 차를 타고 설악산에 가는데 길에서 팔던 ‘길보드 차트’ 테이프에서 녹색지대의 “준비 없는 이별”이 나왔어요. 지금 찾아보니 1995년 노래니까 제가 10살 정도였는데 그때 차에서 그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한 바가지 흘렸던 기억이 나요.


만화가의 꿈은 중고등학교 때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서 포기했어요. 고등학교 때 막연히 문화교류에 관심을 가지면서 대학은 영어영문학과로 진학했어요. 우리나라와 외국의 전통이나 문화에 항상 관심이 많았는데, 영어영문학과에서 영어권의 언어와 문화를 공부하는 게 국제교류에 도움이 될 것 같았거든요. 그때 그 막연한 꿈이 지금 하는 일과 연결되어 있네요.

지금 하고 있는 일


프리랜서로 국제교류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면서 문화예술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로 미술관, 문화원, 미술이나 건축 관련 매체가 클라이언트이자 파트너입니다. 국내 기관뿐 아니라 해외 기관들이 영한 번역이나 한영 번역이나 리서치가 필요할 때 연락을 주기도 해요. 이 일을 하기 전에는 주한영국문화원에서 문화예술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했습니다. 중간에 영국으로 유학을 하러 갔던 시기를 제외하면 6년 정도 그곳에서 일했어요.

왜 이 일을 선택하게 되었나요?


국제교류 쪽에서 일하면서 번역이 필요한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적당한 번역가나 에이전시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어요. 자연스러운 번역을 위해서는 외국어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한국어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고, 언어에 대한 지식만큼 중요한 게 분야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세 가지를 모두 일정 수준 갖춘 번역가를 찾기가 어려웠어요. 번역 에이전시는 기계적으로 번역해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문화예술 분야의 경우 특히 번역 결과물이 실망스러울 때가 많았고요. 항상 결과물을 받은 후에 다시 손을 봐야 했죠.


그러던 차에 저의 전 직장 동료이자 현재는 영국에서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영국인 친구와 짝을 이뤄 건축잡지 <다큐멘텀> 영문판의 한 꼭지의 번역을 맡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도 많았고 결과도 만족스러웠어요. 그래서 다니던 직장에서 퇴사하면서 문화예술 전문 번역가·에디터 콜렉티브인 ‘Yes More Translation’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콜렉티브의 장점은 각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유연하게 모였다가 흩어질 수 있다는 점이에요. 그동안 문화예술계에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네트워크를 통해 문학번역이 필요한 경우 문학번역 전문가와, 미술 번역은 미술 분야 에디터와 협업하고 있습니다.


영국인 남성과 결혼한 것으로 아는데,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남편은 제가 영국에서 유학 중일 때 만났어요. 요즘은 영국 유학생 비자가 최대 18개월까지밖에 체류허가가 안 나와요. 그래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졸업식을 한 뒤 바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장거리 연애를 1년 했어요. 장거리 연애를 하면서 남편이 당시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한국에 오겠다고 했는데, 그땐 섣불리 믿어지지 않더라구요. 쉬운 결정이 아니니까 언제든지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정말 회사를 그만두더니 한국으로 왔어요. 한국에 와서는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웠고요. 그리고 이듬해 봄에 덕수궁에서 청혼을 받고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별로 특별할 것 없는 러브스토리네요.


왜 결혼을 결심했는지?


가치관이 비슷하고 취향도 겹치는 부분이 많았어요. 아트하우스 시네마와 여행, 산책, 고양이를 좋아하고 정치적인 견해도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서로의 의견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다름이었어요. 그러니까 같이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나누는 게 즐거웠죠. 


서로 달라서 보완되는 부분도 있었어요. 예를 들어, 사소하게는 저는 요리를 싫어하는데 남편은 요리를 좋아한다든지, 저는 반려묘 화장실을 매일 치우는데 남편은 그걸 별로 안 좋아한다든지. 성격적인 부분에서 저는 대담하고 실행력이 좋은 편이라면 남편은 선택에 앞서 심사숙고하는 편이고요. 저는 남들 시선을 별로 괘념치 않는 성향인 반면 남편은 사생활을 지키고 싶어해요. (이런 인터뷰도 남편이라면 절대 안 했을 거예요.) 

남편은 이걸 ‘파워 밸런스(power balance)’가 잘 맞는다고 표현하더라고요. 그리고 우리가 서로 잘 맞는 건 쌈장과 삼겹살 같은 거라고요. 쌈장과 삼겹살은 둘이 너무 잘 어울리는데 왜 그렇게 잘 어울리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냐면서요.


20대의 나를 돌이켜 봤을 때, 지금의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20대에는 호기심도 많고 여러 가지를 시도해봤던 것 같아요. 안 해본 게 너무 많고 모르는 것도 많으니까요. 진로 같은 경우도 경험해보지 않고 선택하기 어려운 거니까요. 시행착오도 많았죠. 그런데 3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아주 많은 선택지 중에 내가 싫은 것, 못 하는 것, 안 맞는 것을 하나하나 지워나가다 보니까 울퉁불퉁했던 삶의 길이 좀 덜 울퉁불퉁해지고 발도 덜 아픈 것 같아요. 삶의 균형이나 안정감이 생겼어요. 


한편으로는 20대 때의 호기와 야심, 무모함이 증발했으니 저 스스로에 대한 기대도 작아진 것 같아요. 20대가 뚜껑을 갓 딴 뽀골뽀골 톡 쏘는 탄산음료였다면 30대는 거기서 탄산이 좀 날아갔다고 해야하나. 


그런데 이걸 20대와 30대의 다른 점으로 무 자르듯이 이야기하기는 어려워요. 30대였던 2년 전 저의 삶 역시 롤러코스터 같았거든요. 제 경우에는 그때가 인생의 전환점이었던 것 같아요.


대한민국에서 30대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이 질문은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수많은 30대 여성 중 한 명일 뿐이잖아요. 모두의 삶이 다르고 경험한 것도 다르니까, 이 질문에 대한 저의 답은 주관적이고 개인의 경험에 기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저 자신과 제 주변인들의 삶을 통해서 봤을 때, 20대에서 30대로 전환되는 시점에 저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한 가지쯤 내리는 것 같아요. 저는 대한민국에 사는 30대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자기 스스로가 중대한 선택의 주인이 될 권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아무리 사회와 제도와 관습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할지라도요. 


그래서 부족한 저의 세계에서 고민해 본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무수히 많은 고민과 질문 속에서 그대로 멈추어 설지, 작든 크든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낼지 선택하는 것.’


요즘 최대 관심사


항상 다양성(Diversity)과 사회적 포용(Inclusion)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 주제가 다룰 수 있는 영역은 아주 넓은데, 저는 어떤 사회가 다양성을 다루는 방식에 관심이 있는 편이에요. 다양한 외모, 취향, 인종, 장애 그리고 심지어 다른 동물을 대하는 사회와 구성원의 태도에 관심이 있어요. 


그래서 요즘은 미국과 독일에 사는 친구들과 함께 ‘다양살롱’이라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어요. 정기적으로 모여 다양성과 관련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의 전문분야나 관심 분야에 대해 다양성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글도 쓰고 있어요. 글이 어느 정도 쌓이면 온라인을 통해 연재하고 더 많은 사람과 다양성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싶어요.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경각심도 큰 편이에요. 우리나라가 일인당 플라스틱 사용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은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시스템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기 어렵거든요. 요즘 커피숍에서 일회용 컵 사용을 자제하고 마트에서도 비닐봉지 사용을 줄일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말 남편과 함께 영국으로 떠난다고 들었어요.
영국에서 어떤 삶을 살아내고 싶은가요?


일단은 이민 여성으로서 잘 적응해내고 싶고요. 더불어 외국인 노동자로 잘 적응하고 싶습니다. 지금 하는 번역으로 다양한 사람과 생각을 연결하는 일도 꾸준히 해나가고 싶어요. 저는 ‘언어’라는 주제가 너무 흥미롭거든요. 저는 언어가 사람의 인식을 어느 정도 구성한다고 믿어요. 그렇기 때문에 언어는 문화의 반영인데 한 나라의 언어를 다른 나라의 언어로 표현해내서 사고를 전달하는 과정은 정말 흥미로워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제가 동양자수를 배운 지 일 년 정도 됐거든요. 영국에서도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누군가에게는 동양자수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겠죠? 주변 사람들에게 만들어서 선물도 하고요.


미래에 나는 어떤 인간으로 성장하고 싶은가요?


지금보다 좀 더 포용적인 사회를 위해서 작은 보탬이 되는 인간이 되고 싶어요. 인간은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고, 짧든 길든 삶을 마감할 때에는 누구나 똑같이 빈손으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잖아요. 그런 인간의 삶에서 조금이라도 타인의 현재와 미래에 힘이 될 수 있는 작은 선택들을 쌓아간다는 건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매거진의 이전글 80년대생 미즈킴씨 0. 프롤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