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공연계가 겪는 어려움, 그리고...
* 여러 공연 관람을 좋아하는 조용한 덕후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몇몇 배우가 있으며 그에 따른 주관적인 생각이 반영된 글입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또다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는 시점에 조심스럽지만 뮤지컬 마지막 공연을 보고 왔다. 걱정되는 마음에 얇은 의료용 마스크를 2개 겹쳐 쓰고 극을 관람하고 나오니, 오랜만의 문화생활에 즐겁고 행복하기 보다는 씁쓸함을 더 많이 느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마스크를 쓰고 공연을 보는 것도 그러했으며, 공연을 보러 가는 행위 자체가 주변에 떳떳이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도 그러했고, 열렬한 환호로 마지막 공연을 보내줄 수 없었음도 한몫했다. 하지만 이 씁쓸한 마음을 '모든 게 코로나19 때문'이라고 탓하기는 어려운 이유는 따로 있었다. 개인적으로 뮤지컬 <모차르트>는 나에게 희망이자 절망이었다. 이 극을 볼 때마다 김준수가 걸어온 길이 떠오르기 때문인데, 이번 10주년을 맡은 뮤지컬 <모차르트>에서 모차르트로 분한 김준수를 다시 볼 수 있는 것은 행복이면서도 씁쓸한 순간이다.
8월 20일로 예상보다 3일 앞서 마지막 공연을 올리게 된 10주년 기념 뮤지컬 <모차르트>. 몇 시간 전 있었던 마지막 공연에는 배우들의 무대인사가 있었다. 이번 무대인사는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것 중에 기억에 남을 만큼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 이유는 모든 앙상블 배우들을 조명한 부분에 있다. 대략 20명 남짓의 앙상블 배우들을 한 명씩 소개하고, 한 마디씩 하려면 꽤나 긴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대극장 뮤지컬 무대인사에서는 주연배우들이 중심이 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모차르트>의 마지막 무대인사는 그렇게 진행되었다. 모든 배우들에게 동등하게, 한 마디씩 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에서 이번 무대인사가 굉장히 사려 깊다고 여겨졌다.
코로나19로 인해 우여곡절이 많았던 공연이었기 때문인지, 배우들은 하나같이 관객들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무대 뒤에서 힘써주고 있는 관계자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배우, 제작사에게 귀여운 아부(^^)를 하는 배우, 10년 뒤에는 어떤 자리에서 어떤 넘버를 부르고 싶다는 목표를 공표하는 배우, 시간 제약을 의식하듯 "여러분 조심히 들어가세요" 한 마디로 자신에게 할당된 시간을 쿨하게 넘기는 배우까지.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어떤 표현들로 자신의 목소리를 냈는지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발트슈테텐 남작부인 역을 맡은 신영숙 배우의 멘트가 그중에 마음에 박혔다. 그녀는 본인이 부르는 넘버 ‘황금별’에 빗대어 이렇게 말했다.
곧 넘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코로나라는 이 장벽을 금방 넘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굳세고 강해서 지금까지도 우리 앞을 이렇게 가로막고 있네요. 우리 모두 이 코로나라는 장벽을 잘 넘어봅시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 김준수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떠올랐다. 뮤지컬 <모차르트>가 10주년을 맞이했듯 김준수가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 것도 어느새 10년이다. 그 말은, 그가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연예기획사 중 하나인 SM에서 나온 지도 어느새 10년이 되었다는 말이다. 뮤지컬 배우로서 무대에 다시 설 수 있게 해 준 작품이기 때문에 이 뮤지컬에 남다른 애정을 표현해온 그의 말처럼, 그를 지켜봐 온 팬들에게도 이 작품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예능 및 음악방송 출연에서 배제되고, 이미 확정되었던 행사의 홍보대사가 갑작스럽게 취소되는 등. 지난 10년간 김준수가 겪어야 했던 장벽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리고 10년 전의 그 장벽은 생각보다 굳세어 무너질만 하면 여전히 그 공고함을 보여줬다. 그가 걸었을 매 순간들은 어쩌면 마스크를 쓰고 매일을 보내야하는 코로나 시국의 갑갑함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원하는 때에 환호하지 못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무엇을 하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이 상황들. 고작 이런 답답함도 근 6개월이 넘어가자 숨이 막힐 것 같은데, 무대에 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아티스트에게는 어떤 숨막힘이었을까.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매 순간들이 어두운 터널을 걷는 암담함이 아니었을까.
무대인사에서 대부분의 배우들이 뮤지컬 <모차르트>가 오늘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 ‘기적’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로 자리를 지켜준 '관객'에게 공을 돌렸다. 어쩌면 김준수는, 매 순간을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무대에 서왔을 수도 있겠다. 늘 그가 말하는 팬들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어떤 배우들은 “오늘이 마지막 공연이 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무대에 올랐다”라고 말했다. 무대에 설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어떤 때보다 강렬하게 느낀 공연이라고들 했다. 매번 앨범을 내고 콘서트를 할 때마다 김준수도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자리를 채워주는 관객의 수가 조금씩 줄어들더라도, 무대 위에서 감사히 노래하겠다고. 극중 모차르트의 연주회를 방해하던 콜로레도 대주교의 끈질긴 훼방과, 그것을 벗어나기까지 모차르트와 그의 가족 등 주변인이 받았을 고통. 그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 김준수와 김준수의 팬덤이 아닐까. 그래서 이 뮤지컬 <모차르트> 무대에 10년 만에 다시 오른 김준수를 보는 것이 고마우면서도 짠하다. 때로는 모차르트에, 때로는 남작부인에, 어떤 때는 아버지에 마음을 이입하게 된다. 모든 넘버들을 그냥 흘려듣지 못하고 매 순간 그의 지난 시간들이 떠올리며 울컥하는 마음으로 공연을 보곤 한다.
극중 모차르트가 콜로레도 대주교에게 하는 대사처럼, 이제는 그의 음악이 공연장에 온 팬들만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대중들이 누릴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음악'이 되기를 바란다.
마지막 공연을 본 오늘은 유독 난넬 모차르트의 넘버 <끝나지 않는 음악 있을까>이 마음에 남았다. 끝나지 않는 음악, 사라지지 않는 노래를 꿈꾸지만 다시 믿어봐도 안 된다는 걸 안다고.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하는 난넬 모차르트의 바람과 좌절이 담겨있는 넘버를 뒤틀어 말하고 싶다. 김준수의 음악은 끝나지 않을 거라고, 기억해주는 팬들이 있다면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