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교과의 본질에 대한 도전을 받고 있는 체육 교과 이야기
체육 영상 평가(Physical Education Visual Evaluation)
체육영상평가연구회(Physical Education Visual Evaluation Study)는 21세기 미디어 기술의 발달과 스포츠 문화의 성숙, 그리고 학교현장의 교단선진화에 따른 물적 토대를 기반으로, 체육의 인지적 영역(이론,실기,보건)에 대한 단순한 기초기능만을 평가하던 지필평가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실기종목의 동작지식에 대한 올바른 이해, 스포츠를 향유하는데 필요한 제 능력(기능, 사회적 행동, 과학적 지식)에 대한 평가를 영상을 통하여 구현해내고자 2002년도에 창립된 현장 체육교사들의 자주적 연구·실천 모임입니다. - 체육영상평가연구회 홈페이지(http://peves.net)
온라인 개학 이야기를 듣고 가장 먼저 생각 난 것이 바로 「체육 영상 평가」였다. 스마트폰 같은 기기가 대중화되지 않았던 이십여 년 전에, 영상을 활용한 체육 교과 수업 연구를 통하여 체육 수업의 질을 한 단계 높여주었던 체육 교사들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 체육 교사들의 역량은 놀라운 수준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체육영상교육연구회 https://cafe.naver.com/cpdbrdudtkd
아직 교사로 현장에 나오기 전, 대학교 졸업 후 군복무하던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체육 영상 평가 이야기를 어디선가 듣게 되었다. 실제로 수업을 보지도 못했고, 선생님들을 만나지도 못해 봤지만, 「체육 영상 평가」라는 개념에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전역 이후 현장에서 경험을 쌓게 되면서, 체육영상평가를 다시 한 번 접하게 되었고 어떻게든 선배님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초임 교사 시절 몇 년 간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거의 모든 연수에 미친듯이 참여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체육 영상 평가를 하던 선배교사들을 만나보고 싶어서였다.
마침내, 만나게 된 선배님 두 분은 바로 이민표 선생님, 이문표 선생님. 두 선배님들의 수업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다. 일면식도 없었지만 강의 후 미친척 하고 말을 붙여 보았었다. 수업자료 좀 얻을 수 있겠느냐고. 선배님들은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흔쾌히 휴대용 하드디스크를 컴퓨터에 연결하여 나에서 파일을 복사해 갈 수 있는 시간을 주셨었다. 이 소중한 노하우를 조금이나마 배우게 되었을 때, 무적의 교사가 된 기분이었다. 이렇게 모았던 자료들은 이후 나의 수업을 풍성하게 해 주었고, 나 역시 후배교사들에게 적극적으로 자료를 나누는 선배교사가 되게 해 주었다.
우리는 어떤 언어를 단순하게 읽고 쓰고 해석할 줄 안다고 해서, 그 언어를 잘 한다고 하지 않는다. 보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 모두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언어적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평가 역시 마찬가지다. 언어 교과의 평가에서 「말하기·듣기 평가」는 그 자체로 교과의 본질적 특성을 드러내며 타당한 평가방법으로 인정받는다. 학교에 듣기 평가가 가능한 환경이 갖추어진 이래로 듣기 평가를 하지 않는 언어 교과는 없을 것이다. 감히 단정적으로 말해보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영어 교과 평가에서 듣기 평가를 하지 않는 학교는 없다.
음악과에서 음악을 하는 것은 가창 또는 연주로 평가하고, 음악을 아는 것은 음악을 듣고 평가하는 감상 또는 청음의 방식이 있다. 미술과 역시 미술은 하는 것을 주로 평가하지만, 미술을 아는 것은 작품을 보고 판단하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체육 교과에 가장 적합한 평가는 무엇인가?
'신체활동을 하는 것'을 본질이자 목표로 하고 있는 체육 교과에서 '체육을 하는 것'을 평가하는 실기 평가는 가장 중요한 영역이 분명하다. 단, '체육을 아는 것'을 평가하기 위하여 전통적인 방식의 지필 평가를 하는 것은 적합한 방식이 아니다. 체육 교과에서 '앎을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방법'은 「영상(Video)」을 활용하는 것이다. 학습을 할 때부터 영상을 활용하여 학습자의 깊이 있는 이해를 이끌어내고, 평가에서도 영상을 활용하여 실제로 알고 있는지를 평가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축구 경기의 '오프사이드(off-side)' 규칙을 글로 표현하려면 다음과 같이 복잡하게 설명해야 한다.
오프사이드(offside)란 축구에서 나오는 공격자 반칙 중 하나이다. 자신의 편이 공격 진영에서 공보다 앞에 있을 때, 그 선수가 골키퍼를 포함한 상대편 최후방 2번째 수비수보다 상대 골라인에 가까이 있는 경우이고, 그 선수가 자기 편의 패스를 받게 되면 오프사이드 반칙으로 판정내리게 된다. 다시 말해서, 공격수가 최후방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오프사이드 반칙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위치에 있는 선수에게 패스를 하게 될 때 오프사이드 반칙을 범하는 것이다. 즉, 공격수가 드리블로 상대방의 최후방의 선수를 통과할 경우 오프사이드가 아니지만 패스로 상대방의 최후방의 선수를 통과하여 최후방 선수의 뒤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같은 편 선수에게 공을 전달할 경우 오프사이드가 된다. - 출처: 위키백과
반면에, 영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vqLVdOOwtY
체육 교과에서 영상 평가는 학습자가 그저 교과서의 문장을 외우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그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다. 복잡한 경기 규칙과 다양한 상황이 순식간에 전개되는 스포츠 경기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방법으로 영상평가보다 적합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영상을 활용한 교수학습과 평가는 체육 수업의 질을 높여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체육 영상평가는 기존의 시설과 시스템 하에서도 가능한 좋은 학습방법이자 평가방법이었다. 오히려 문제는 영상평가 문항을 제작할 역량을 갖춘 교사가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든 평가가 그렇듯이 평가문제를 표현하는 기술적인 측면보다 중요한 것이 출제하는 과정 그 자체다. 타당하고 객관적이고 신뢰성있는 평가 문제를 만들고, 그것을 영상으로 출제하는 것을 구현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공감은 하지만 쉽게 따라할 수 없는 교수학습평가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은 뜻있는 교사들의 협력으로 극복되었다. 체육영상평가연구회 선생님들은 함께 협력하여 직접 기획하고 연출하고 촬영하여 편집하였다. 나는 그 결과물만 접해보았지만, 2000년대 초중반에 이런 수준 높은 영상 평가 문제를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당시에 선배님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체육 영상평가 문제는 일반 교과의 지필 평가와 마찬가지로 다양 형태의 문항으로 출제되었다. 객관식 선택형 문항과 단답형 문항은 학생들의 정확한 지식을 평가하는데 활용되었다. 서술형 문제로 조금 높은 수준의 이해 정도를 평가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고차원적인 사고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논술형 문항도 있었다.
체육 영상 평가는 정기고사의 체육 교과 시험 시간 중 일부의 시간에 시행할 수 있었다. 영어 듣기평가처럼 고사기간이 아닌 별도의 시간에 동학년이 일제히 시험을 볼 수도 있었다. 물론, 체육 교과 수업시간에 수행평가 항목 중 하나로 시행하는 것도 가능했다.
시대적 배경은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 나만의 방식으로 영상을 활용한 수업을 적극적으로 했었다. 그 중 평가에 적용한 것이 바로 「중계방송 해설대본 쓰기」,「스포츠뉴스 기사 쓰기」수업이었다. 중학교에서 정기고사를 실시하지 않고 100% 수행평가만으로 운영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당시의 우리학교 체육 교과 협의회는 발빠르게 대처하였고, 과감하게 수행평가 100%로 운영하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체육과 관련된 앎을 학습하고 평가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동학년 수업을 하고 계신 선배 교사를 설득하여 수업과 평가를 운영했던 것이 바로 「중계방송 해설대본 쓰기」수업이었다. 수업의 이름은 거창하지만, 쉽게 이야기해서 경기 장면을 보여주고 설명을 해보라는 방식이었다. 체육 영상 평가 문제 중 서술형 논술형 문항과 동일한 맥락이었다.
스포츠 문화의 정수인 '경기'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총체적인 지식이며 고차원적인 지적 활동이었다. 몇 년 동안 중학교 3학년 배구 수업을 진행하며, 나름의 시행착오와 함께 수업을 개선해 나갔었다. 나중에 중학교 1학년 농구 수업을 진행할 때는, 조금 수준을 낮추어서 스포츠 뉴스 기사 쓰기 수업을 했었다. 객관적인 근거는 없지만, 해당 종목의 수업 말미에 이런 수업과 평가를 했을 때, 기대했던 성취수준까지 올라온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수업과 평가를 설계하고 운영하기를 정말 잘 했다.'고 자평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E_FNSOlZGo
어느 날 갑자기, 대한민국 체육교사 대부분이 유튜버가 되었다. 말 그대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은 빠르게 적응하였다. 2020년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의 모바일 환경을 갖추고 있고, 교사와 학생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편집 기술이나 기획력이 없더라도, 교사들은 구글 설문지 등을 활용하여 영상을 활용한 학습지와 평가 문제를 얼마든지 만들어내고 있다. 더이상 과거와 같이 역량 있는 교사들이 모여서 협력해야만 시도할 수 있는 교수학습방법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법이 있다는 것을 누군가는 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온라인 개학이 결정되자 마자, 체육영상교육연구회 선배님들께 당시의 자료들을 공유해 달라고 말씀을 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소중한 자료를 전면적으로 공개해 주셔서 다양한 방법으로 교사들에게 전달하였다. 곧바로 피드백이 오기 시작했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단순히 이러한 자료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 역량있는 교사들이 자신의 수업 맥락에 맞는 영상 평가 문제를 직접 제작하는 사례로 연결되고 있다. 기대했던 선순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G4EYmhI7SRkNodpdRs5-CV-AF5MRPKPb
2020년 대한민국 체육 교사들은 전국 여기저기에서 활발한 교과 연구회 활동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직접 모이는 것이 어려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상에서의 교류는 그 어떤 때보다도 뜨겁다. 한 교사의 아이디어는 곧바로 더 좋은 아이디어로 피드백이 연결되며 확산되고 있다. 2021년의 체육 수업이 얼마나 발전할지, 체육 교사들의 역량이 어떤 방식으로 발휘될지 너무나도 기대가 된다. 코로나가 끝나는 날, 대한민국 체육 수업은 말 그대로 세계 최고가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