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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온수 Oct 05. 2022

그 사람들이 너무 부러운거에요

나에게도 한 때 있었던, 반짝거리는 사람들이요

"그러니까 이번에 알게 된 인테리어 일하시는 분들이 정말 자신감을 가지고 계시더라구요.

다른 건 모르겠고 나는 이 일을 정말 잘 한다.

그 타일을 깎는 기술중에 측면을 45도로 잘라내는 졸리컷이라는 기술이 있는데, 실장님이 그러더라구요.

내가 졸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친다고.

근데 그 말을 하는 실장님이 너무 부러운 거에요.

여태까지 쌓아온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정신없이 일 하면서 나오는 그 에너지와 열정 그런 것들이 진짜 반짝반짝 거리더라구요."


"그러셨군요"


"그렇게 반짝이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부러워요.

내가 한 때 가졌던 것, 하지만 지금은 스러져버린 것.

저한테도 그런 시절이 있었잖아요? 열정도 있고 야망도 있던 그 시절이.

근데 지금은 제 안에서 그런 것들이 다 빛이 꺼져버린거에요.

까만 들판에 수없이 많은 반딧불이들처럼 반짝이던 그것들이 이제는 그저 캄캄하고 마른 나뭇가지만 남아버린 것처럼 말이에요.

그 분들이 저보다 다 연장자분들이셨는데, 저는 그 분들한테서 젊음을 느꼈어요. 웃기죠?

그렇게 반짝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아름답게 느껴져요.

근데 그런거 있잖아요.

너무 아름다운 걸 보면 서글퍼지는거요.

내가 한 때 가졌던 것,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그곳에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니까요."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화면을 넘어 선생님의 눈가가 조금 붉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붉어짐이 나에게는 왠지 모를 위로로 다가왔다.


"근데 저도 알아요.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하니까.

저는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있는거죠.

저한테도 그래요.

제 친구가 잘 나가고 대단한 사람이고 그런 게 중요하다기보다는, 그냥 내가 무언가 느끼고 했을 때 그걸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한테는 그 친구가 소중하니까요.

그러니까 관계적으로는 제가 살아야 할 이유를 아는 거에요.

근데 과연 내가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나?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너무 괴로워요.

마치 그런 느낌이에요. 에베레스트를 등반했던 내가, 이제는 동네 뒷산도 못 올라가는 거죠.

동네 뒷산 초입에서 가끔 한 걸음 올라갔다고 생각했을 때 좋아했는데, 그 까마득한 - 내가 떠밀려내려온 곳을 올려다보면 고작 이런 걸로 기뻐했나? 싶은 거에요.

저도 알죠. 상담하는 사람이니까. 한 걸음씩 발을 내딛어야 되는 걸 알아요.

근데 그 작은 스텝조차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아서, 그런 게으른 내가 너무 싫은거죠."


선생님은 살짝 웃으면서 내가 이번에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에서 내가 이룬 것들을 하나하나 말해주었다.

아, 나는 선생님이 말한 것들을 '작은 발걸음'이라고조차 생각하지 않았구나.

인정의 말을 들으니 나는 얼굴이 홧홧해지는 기분이었다.

아, 나는 이런 것들에 목말라있었구나.

작은 인정의 말, 작은 용기의 말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작은 것들'에 대한 기준조차도 높았구나.

그래서 내가 해낸 미약한 몸짓들마저 모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있었구나.

그렇게나 대단한 일만을 일로 칠 수 있다면, 끊임없이 더 완벽한 것과 더 대단한 것과 비교를 한다면, 언제까지나 나는 이룬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겠구나.


정말 웃기게도 작은 인정의 말들을 들으니 나는 힘이 났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도전할 힘이 생겨나는 기분이었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해.

그런 생각이 드는 한 편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작은 말들이 다시 사람을 걸을 수 있게 해주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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