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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온수 Aug 21. 2021

상담사, 상담을 받으러 가다 #1

"상담이 효과가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하면서

어렵게 구한 상담 선생님이었다.

여태까지 몇 번의 상담을 받으며 깨달은 것은, 실력이 있으면서 나와 잘 맞는 선생님을 찾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어떤 상담을 가도 배운 것이 없지 않았지만 누군가를 만나면서 '이 사람 나의 소울메이트다'라는 느낌을 받는 것이 드문 것만큼이나 얼굴만 봐도 마음이 풀어지는 상담 선생님을 만나는 건 드문 일이었다.

아는 만큼 더 꼼꼼하게 다른 사람들의 조언과 추천을 구했고, 거리도 나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그렇게 여러모로 조건이 잘 맞는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정말로 소개팅을 하러 나가는 것보다도 훨씬 떨렸다.


석사를 했던 시간을 합쳐서, 상담업계에 몸 담은지 어영부영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무슨 일이든 하루에 10시간 10년을 하면 전문가가 된다는데 솔직히 그동안 내가 얼마나 '전문가'에 가까워졌는지는 그저 오리무중. 자신없는 전공에 엉망인 건강이라니, 이보다 더 절망적인 조합이 있을까.


그래서 지금의 나는 퍽 간절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앞이 보이지 않는 나의 불안한 시기에 답을 주었으면 하는.

분명 성실하게 매일매일을 쌓아가야할텐데, 그걸 알고있으면서도 시시때때로 몰려드는 불안감에 자꾸 시야가 뿌얘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왜 이럴까? 왜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시간만 보내고 있을까? 왜 조금 더 열심히 살지 못했나? 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나는, 이렇게 시끄러운 속내를 겨우 겨우 누르고 상담소로 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깨끗한 느낌을 주는 상담소 현관에서 나는 한참이나 쭈뼛쭈뼛 실내화로 갈아신어야하나 그냥 들어가야하나 고민을 하다가 안에 계신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통통한 볼이 인상적이셨던 편안한 인상의 선생님은 약속시간보다 일찍 온 내게 좀 놀란 눈치셨지만, 이내 따듯하게 나를 맞아주셨다.




분명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막상 자리에 앉으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왔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전날밤 떠올렸던 수많은 주제들이 하얗게 사라져버리는 것을 느꼈다. 나는 분명 하고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았는데, 왜 막상 이 순간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걸까.

나는 쑤시는 왼팔뚝을 주무르며 힘들게 "무엇부터 이야기할지 모르겠다"라는 말만 했다.

"상담을 어떻게 신청하시게 되셨는지부터 말해주시면 좀 편할까요?"라고 물어봐주시는 선생님의 따듯한 태도에 돌지않던 머리가 삐그덕거리며 턱을 움직여주기 시작했다.


요즈음 공감을 못하던 일, 누군가 징징거리는 걸 듣는 게 영 듣기가 괴로운데 이런 내가 상담을 할 수 있을지,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 같은 말들을 두서없이 쏟아냈다. 자연스럽게 10년 정도 전부터 나를 괴롭혀온 원인모를 건강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때때로 나의 몸이 어떤 식으로 안 좋은지에 대해 포커스가 맞춰질 때마다 나는 괴로웠다. 요즈음 잘 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어쩌면 하고싶지 않은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건강이 나쁘다는 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한 편으로 이게 '몸의 문제'이고 그래서 이게 꾀병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만큼이나, 나는 이걸 어떤 식으로든 '정신적인 문제'로 치부해서 그게 해결된다면 나의 몸 역시 기적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고 믿고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첫시간다운 이런저런 질문들을 주시기도 하고, 본인의 경험담이나 경험을 말씀하시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셨다. 내가 몸 이야기를 했을 때, 선생님은 내게 "저는 건강해서 온수씨를 따라가려면 신경을 많이 써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셨는데, 한 편으로는 선생님의 진솔함에 안심이 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마음이 쿵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 이 분에게는 내가 이해받기 힘드려나'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횡설수설, 두서없이 털어놓은 몸의 힘듦에 대해 들은 선생님께서 내게 "몸에서 참 벗어나고 싶었겠어요"라고 말하시는데 그게 그렇게 눈물이 왈칵 날 것 같았다. 참 이상했다. 같은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하는 말이니 공허한 위로로도 들릴 법한데, 그냥 저 표현이 참 내가 많이 느끼던 기분이라 마음이 일렁였던 것 같다.  



이전 상담을 하면서 제일 좋았던 점은,
나를 좀 덜 혐오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에 선생님이 하신 질문.

"이전 상담을 받으면서는 뭐가 좋았던 것 같아요?"

의외로 어려웠던 이 질문에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떠오르는대로 입 밖에 내었다.


"이전 상담을 하면서 제일 좋았던 점은, 상담을 받으면서는 저 자신을 좀 덜 혐오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확신에 찬 내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놀랐다.

아...

나 요즘 나 자신을 혐오하고 있었구나.

연약한 나, 잘 하지 못하는 나, 자신감 없는 나, 열정없고 공감이 없는 나를,

나는 무척이나 사랑해주지 못하고 있었구나.


그냥 이런 상태였다는 것도 몰랐고, 그저 피하려고 유튜브만 주구장창 보았을 뿐이지 내 이런 상태를 제대로 돌아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피하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 이런 감정이구나.

너무 나 자신을 싫어하는 감정.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리는 감정.

여기서 멈추면 나는 점점 작아지는 네 개의 벽 안에 갇혀서 결국에는 아무곳에도 나갈 수 없어져버리는.

그런 두려움이 내 안에서 어느새 다시 커져있었구나.



아 그래도 상담이라는 건 정말, 수다와는 다르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상담이 끝날 즈음엔 긴장해서 굳어있던 몸이 조금 펴지는 느낌을 받았다. 쑤시던 팔의 감각도 조금 덜했다.

온 신경으로 '나'라는 존재에 집중하고 있어주시던 선생님이 그곳에 있었다.

인간은 진짜로 이런 관심을 받아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어지는 것일까?

충격적일 정도로 자기중심적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이게 내게 정말 필요했던 일이구나 싶었다.


그래도 상담이라는 건 정말 수다와는 다르구나.

누군가 나에게 온전히 집중해주는 시간이라는 것은, 그리고 내가 별로 생각해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강제로 생각해보게하는 시간은 그야말로 PT와 닮아있었다.

그 근육이 그 곳에 있다는 것을 인지조차 못하다가 PT를 통해 서서히 단련시켜나가는 것처럼, 상담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그 감정'이 그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생각의 루프 속에서 빠져나오는 일 말이다.

상담은 정말 수다랑 다르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다행이다.

상담이라는 거,

내가 걷는 이 길이라는 게 실체가 없는 일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상담을 한다고 해서 내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이 모두 마법처럼 사라져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나는 내가 그런 상담을 한 적도, 그런 상담을 받아본 적도 없다. 

내가 아무리 나를 단련시키고 발전한다 해도 여전히 나는 때때로 두렵고 때때로 불안감에 시달릴 것이다. 

하지만 상담을 받으면서 나는 그 상태와 그 감정들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다만 그 방법이라는 게 자기개발서에서 배우는 방식처럼 내가 깨닫고 생각하고 노력해서 실행하는 것과는 달리, 상담 선생님이 내게 질문하는 방식이 어느새 내 안에 자리잡아서 나 자신에게 '옳은 질문'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혹시 또 내가 나를 싫어하고 있나?'

'혹시 또 내가 남들에겐 하지도 않을 혹독한 채찍질을 나 자신에게 휘두르고 있진 않나?'

'혹시 또 내가 어느새 일을 해서 인정받는 것만이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진 않나?'


하는 질문들을 스스로 던지고 내가 내 스스로를 돌볼 수 있게 되는 것.

그래서 상담은 어느 면에서 변화가 느리고 더디다. 빨리 되면 참 좋겠는데,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또 한 발을 내딛었다. 


여전히 두려운 마음이 많으면서도 아주 미약하게나마 '기대하는 마음'이 생긴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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