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영화'킬링 오브 투 러버스(2021)'
이 글은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은 후 작성되었으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읽을 때 참고해 주세요 : )
나쁜 감정엔 바닥이 없다.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두렵고 불안한 마음은 점점 커지고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 하지만 감정을 원하는 대로 해결하기란 몹시 까다롭다.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나쁜 감정에 휩쓸리는 순간, 세상에 떠도는 수많은 비극이 탄생한다.
영화 <킬링 오브 투 러버스>에도 나쁜 감정에 고통받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그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자고 있는 아내에게 총을 겨눈다. 그에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영화 <킬링 오브 투 러버스>는 가정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데이빗(클레인 크레포드)'에게 일어나는 사건과 감정을 담았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아 제36회 선댄스 영화제 공식 초정작으로 선정되었다.
영화는 앞서 말했듯 '데이빗'이 아내 '니키(세피데 모아피)'에게 총을 겨누며 시작한다. 그들은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4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세월이 지나 결혼생활의 권태로 인해 잠시 떨어져 지내기로 결정했다. 별거 중인 어느 날 '데이빗'은 자신이 살던 집에서 벌거벗은 채 자고 있는 아내와 남자 '데릭(크리스 코이)'을 보게 된다. 부부 사이에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도 된다는 약속을 했었지만, 화가 난 '데이빗'은 아내에게 총을 겨눈다.
숨이 멎을 듯 멈췄던 시간은 거실에서 떠드는 아이들 목소리에 의해 깨진다. 창문을 통해 집을 빠져나온 남자는 무작정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고 카메라는 그의 뒷모습을 따라간다. 동시에 금속과 살이 부딪히는 듯한 기괴한 소리가 들린다. 듣는 사람마저 불쾌한 감정을 전염시키는 특유의 효과음은 '데이빗'이 나쁜 감정에 사로잡힐 때마다 들린다. 음향을 담당한 '피터 알브레히첸(Peter Albrechtsen)'은 '데이빗'의 삶과 연관된 소리를 찾아내려 노력한 끝에 상영 시간 84분 동안 자동차 문이 84번 열고 닫히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효과음을 만들었다.
연출의 특징도 눈 여겨볼만하다. <킬링 오브 투 러버스>는 화면 비율을 4:3 정도로 줄인다. 화면은 크면 클수록 좋고 IMAX가 대세인 요즘 영상과 확연히 다른 선택이다. 좁은 화면은 인적 드문 공터나 도로처럼 영화 속 배경이 주는 여백과 대비되어 훨씬 답답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카메라의 움직임을 최소화해서 한 장면을 길게 촬영하는 단조로운 구도를 사용했다. 그중 인물의 전신이 보이도록 촬영된 장면이 많은데 관객은 그들의 동선과 대화만 확인할 수 있고 자세한 표정은 알 수 없다. 영화의 감독 '로버트 매코이언(Robert Machoian)'의 인터뷰에 따르면 '카메라에 담긴 특정 인물에게만 집중하기보다 등장인물 누구나 공평한 가치를 지니길 원했다'라고 설명했다. 감독의 의도대로 주인공 '데이빗'을 담는 카메라조차 철저히 방관자에 입장에서 그의 고통을 관찰한다.
'데이빗'은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나쁜 감정을 숨긴다. 그는 '니키'가 다른 남자와 잔 걸 모르는 듯 태연하게 행동하거나 소원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저녁 데이트 코스를 준비한다. 그리고 다정한 아빠 역할을 충실히 해내려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거나 신중하게 장난감을 고른다.
아무리 덤덤한 얼굴로 괜찮은 척 해도 '데이빗'은 어느 하나 숨길 수 없다. 영화의 배경인 미국 유타주 카노시는 사람이 적은 한적한 동네여서 동네 사람들은 그가 처한 상황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마트에서 아내의 남자 친구를 마주치고 이웃과 안부 인사를 건네며 가출한 딸을 잡는다. 심지어 딸에게 '니키'를 둘러싼 삼각관계를 들키며 딸은 방황하고 부녀 사이는 갈수록 나빠진다.
꾸역꾸역 감추던 감정은 폭력으로 표출된다. 그는 아이들과 자유롭게 만날 수 없게 되자 '니키'와 큰소리로 다투는 일이 잦아지고 비아냥거리며 거친 말을 내뱉는다. 급기야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사람 모양의 샌드백에 마구잡이로 주먹질을 하고 총을 쏜다.
글에서 설명한 장면을 영화 <킬링 오브 투 러버스> 예고편에서 만나보세요▼
그의 분노를 한 꺼풀 벗기면 나쁜 감정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데이빗'은 애쓸수록 망가지는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몰라서 혼란스럽다. 만약 '데릭'으로 인해 아내와의 관계가 끝난다면 가족에게 영원히 돌아갈 수 없을까 봐 두려움을 느낀다. 감독은 영화 속 그의 처지를 노숙자에 비유하는데, 별거로 인해 가족과 한 집에서 지낼 수 없으며 아버지 댁에서도 임시로 머무는 손님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나마 집이라고 할 만한 장소는 자신의 낡은 트럭뿐이기에 좌절과 외로움을 홀로 견뎌야 한다.
나쁜 감정엔 바닥이 없다. 그러나 시작된 이유는 분명히 있다. 이유를 알아내는 첫 단계로 감정을 숨기는 대신 솔직하게 마주해야 한다. 영화 <킬링 오브 투 러버스>의 절정은 아내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주저앉아 우는 장면이다. 결국 그는 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두려움을 인정했다.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면 '데이빗' 주변에 나쁜 감정의 찌꺼기가 남은 듯 불안감이 감돌지만, 그가 바라던 대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감정을 숨기는 게 익숙한 사람이라면 영화 속 '데이빗'의 슬픔이 긴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 비극이길 바라는 주인공은 없으니까.
영화 리뷰를 꾸준히 쓰고 있지만, 장면마다 숨겨둔 감독의 의도가 이 정도로 궁금한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참고한 감독의 인터뷰와 다른 리뷰는 아래 링크로 남깁니다.
1. https://www.abc.net.au/news/2021-09-16/the-killing-of-two-lovers-review/100463886
3. https://www.slashfilm.com/581177/the-killing-of-two-lovers-director-inter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