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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Feb 17. 2022

8살 아이에게 배우는 '이별의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

[영화 리뷰]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2022)'

이 글은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은 후 작성되었으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읽을 때 참고해 주세요 : )


아끼던 양말 한 짝을 잃어버렸다. 어떤 옷이든 잘 어울리면서 은근히 흔하지 않은 디자인이라서 즐겨 신던 양말이었다. 방 이곳저곳을 뒤적여도 보이지 않자 괜히 아쉬운 기분이 든다. 고작 양말 하나에도 마음이 이렇게 허전한데, 생명의 온기가 느껴지는 존재와의 이별은 더 괴로워진다. 함께 보낸 추억이 많고 진심으로 사랑했을수록 상실감의 크기는 커진다. 영화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의 주인공 '사야카(닛츠 치세)는 이별의 아픔을 어떻게 이겨내고 있을까?



영화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


동명의 단편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는 8살 '사야카'가 반려견 '루', 동네에서 '레이디버드'라는 바를 운영하는 할아버지 '후세(오이다 요시)' 등 다양한 존재와 헤어지는 과정을 담은 영화이다. 이 영화의 새로운 만남은 항상 이별에서 시작한다. '사야카'의 가장 소중한 친구였던 반려견 '루'가 세상을 떠나고 '루'와 추억을 쌓은 장소를 매개로 후세 할아버지와 그가 데리고 있는 강아지를 만나게 된다.


예고편을 통해 영화의 내용을 미리 확인하세요.



영화 속 만남과 이별이 더 아련하게 느껴지고 관객에게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화면의 힘이 크다.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를 연출한 하시모토 나오키 감독은 <릴리 슈슈의 모든 것>,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등 일본의 유수한 영화 제작에 참여했었다. 그 간의 경험을 발휘하여 섬세한 연출과 청량한 색감으로 '사야카'의 일상을 한 편의 서정시로 그려냈다.


특히 기찻길에서 시작하는 오프닝은 영화의 모든 내용을 한 장면으로 설명한다. 전철을 기다리며 '루'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기억과 '루'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야카'의 모습이 연이어 보인다. 전철이라는 소재는 영화 중반부 '후세' 할아버지와 잃어버린 존재들을 찾으러 여행을 떠나는 모습과 연결된다. 전철이 교차로를 지나가는 동안 사야카는 눈을 감은 채 바람을 느끼는데,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사진을 찍는 셔터음과 함께 화면이 정지한다.


정지한 '사야카'의 표정이 첫 장면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우의 어린 나이가 무색하게 순수한 표정에서 사연을 숨긴 듯한 느낌을 동시에 표현한다. '사야카'를 연기한 '닛츠 치세'는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로 유명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딸이다. 사실 '닛츠 치세'는 누군가의 딸이라고 불리기 무색할 정도로 4살부터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여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으며 데뷔할 땐 감독인 아빠와 배우인 엄마의 존재를 밝히지 않아 당당히 실력을 증명했다. 또한 일본의 인기 걸그룹 푸린의 멤버로 활동하며 다재다능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사랑받고 있다.


▼닛츠 치세의 목소리가 궁금하다면 새해 인사 영상을 추천드려요!



Q. 사랑하는 존재와 어떻게 이별해야 할까?


'닛츠 치세'의 연기는 어린아이와 강아지라는 소재로 인해 자칫 유치할 수 있는 영화가 다채로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소중한 친구를 잃은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공허함은 아이라고 하기엔 생각보다 더 깊고 어둡다. '루'의 목줄이 잡고 있는 것처럼 허공에 손을 움켜쥐고 산책하는 모습은 쓸쓸하고 '후세'할아버지와 이별한 후 가만히 방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는 눈빛엔 아무 감정도 담겨있지 않아 안쓰럽다.


정반대로 상처 입은 아이는 성숙한 태도로 어른을 위로하기도 한다. 마당에 앉아 세상을 먼저 떠난 친할머니를 그리워하는 친할아버지에게 다가가 말을 걸거나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후세' 할아버지에게 무작정 찾아가 깨어날 때까지 손을 잡고 옆자리를 지킨다.


직접 그린 영화 속 한 장면

두 모습을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기차역 장면이다. 홀로 있는 '사야카' 앞에 어떤 존재가 생명을 다하면 기차를 타고 먼 여행을 떠난다는 상상의 기차역이 생긴다. 그곳에서 '사야카'는 떠나보낸 존재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투명한 벽에 가로막힌다. 그사이 기차는 떠날 준비를 하고 '사야카'는 결국 그들에게 작별인사를 고한다. 기차역에서 제대로 된 마지막 인사를 나누자 아이에게 새로운 인연이 찾아온다.


사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이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아닌 척 웃어도 마음속에 상처가 남고 슬픔과 상실감으로 남몰래 눈물짓게 되기 마련이다. 떠난 이들을 따라 먼 곳으로 따라갈 수 없기에, 쉽지 않더라도 내일을 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제 겨우 8살 된 어린아이가 '이별을 이겨내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사랑했던 것들과 제대로 작별 인사하고
같은 상처를 가진 이들과 공감하며 살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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