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가는 당신, 두고 간 가족은 없나요?
삼삼오오 휴대폰을 들고 연신 ‘귀여워!’를 외치며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주말 나들이 인파로 북적이는 연남동 골목에는 십여 명의 사람이 무언가를 두고 둘러싸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삼거리의 마스코트 ’ 이쁜이‘가 인조 잔디 위에서 자고 있었다. 두 달 전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는 매일 이 골목을 지키고 있다. 사람들의 소음 아이는 어디서 왔을까?
이쁜이를 만나게 된 것은 연남동에서 '동네고양이 사진 전시'를 열었을 때다. 전시장으로 가는 미로 골목 초입에 이쁜이가 있었다. ‘하얀 털에 젖소 무늬 옷을 입고 앞 머리를 예쁘게 한 고양이’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낯가림 없는 ENFP 성격이라도 잘 때만큼은 조용하게 쉴 공간을 찾아가기 마련인데, 이 아이는 왜 이러고 있을까? 외계에서 뚝 떨어진 고양이일까? 아무리 천진난만하고 사교성 좋은 고양이라도, 이 관경은 믿기지 않았다. 시끌시끌한 소음과 사람의 시선은 안중에 없어 보이는 아이는 고양이의 습성도 잊은 채 비가 오는 날에도 골목을 떠나지 않았다. 유기묘인 걸까? 추측만 할 뿐이었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니까.
2개월이 흘렀고 골목에는 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는 상점이 늘어났다. 아침은 일식집에서, 점심은 신발 가게에서. 저녁은 소품점에서. 아이의 사연을 알게 된 상점 사장님들과 따뜻한 연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우연히 마주친 고양이에게 바로 앞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서 먹이는 사람도 많아졌다. G편의점에서 이쁜이 덕분에 고양이 간식 매출이 몇 배로 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 오가며 얼굴 도장을 찍은 나는 이쁜이가 따라다니는 껌딱지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난 고양이는 연남동 미로 골목의 명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주변 식당과 카페에 대기줄이 서는 주말 저녁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삼거리에서 보여야 할 이쁜이가 사라졌다. 일식집과 신발 가게, 소품점, 편의점 앞에도 이쁜이는 없었다. 주말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 틈에서 ‘이쁜아~‘ 이름을 열 번쯤 불렀을 때였다. 자다 나왔는지 반쯤 감긴 눈으로 ‘이야옹~ 나 불렀냐옹?’하며 태연하게 등장했다. 삼거리를 떠나지 않던 아이라서 뒷골목에서 나왔을 때 잠시 당황했지만, 일반적으로 고양이는 숨어서 자고 16~20시간 잠을 자는 습성이 있으니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눈에 띄는 장소에서 자온 게 이상한 일이었다.
“왜 여기 있어? “ 이쁜이를 쓰다듬는데 배가 빵빵했다. ”대체 얼마나 얻어먹은 거야? 응?”
최근 들어 식욕이 왕성했던 이쁜이였다. 빵빵해진 배가 귀여워서 웃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혹시 많이 먹어서 배가 부른 게 아니라 임신한 게 아닐까?'하고.
밤 11시. 카페에서 개인 작업을 하고 늦은 귀가를 하던 날이었다. 몇몇 술집과 편의점만이 밝게 비추고 있었다. 사람들이 떠난 골목에는 이쁜이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 이 시간이면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갔겠지.'
모퉁이에 있는 편의점을 지나 버스 정류장으로 가야 했는데 야외 테이블에서 술에 취한 외국인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서둘러 그 자리를 뜨려는 찰나, 잠시 내 눈을 의심했다. 담배 연기로 자욱한 데크 위에 이쁜이가 누워 자고 있었다. 임신한 상태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계속 지켜봐야 할지 심란했다. 잠이 덜 깬 이쁜이를 무릎에 앉히고 외투로 감싸 안았다. '그릉그릉' 하는 이쁜이를 쓰다듬는데, 위층에서 재활용품을 들고 내려온 남자가 혼잣말을 한다.
"아직도 여기 있네. 왜 고양이를 버리고 가는지... 쯧."
"이 고양이를 아세요?" 물으니 손으로 바로 옆 골목을 가리키며 "저 끝에 빌라 2층에 살던 사람이 이사 가면서 두고 간 고양이예요."
이쁜이는 빌라에 살던 사람이 이사 가면서 두고 간 고양이였다.
이후 이쁜이의 배는 점점 불러왔고 ‘추측은 확신’이 되었다. 배 속에 아기를 품은 채, 여전히 많은 사람이 다니는 길목에 나와 지내는 이쁜이였다. 비가 내리는 날에도 자리를 지키던 아이는 드문드문 나타나기 시작했고, 공사장에서 나오는 걸 목격했다는 사람들의 말이 내 귀에 들어왔다.
'고양이는 출산을 앞두고 안전하게 새끼를 보살필 장소를 찾아다닌다'라고 한다. 공사장을 산실로 생각한 걸까?
다시 만난 이쁜이는 인근 공사장 앞에서 발견됐다. 알고 지내던 상점에 물어보니 연초에 공사가 진행되다가 중단된 곳이라고 했다. 언제 다시 공사가 진행될지 모를 일이었다. 고양이 입장에서는 사람이 안 다니고 조용한 곳이니 산실로 쓰기에 안전한 영역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겠다. 길 생활한 지 얼마 안 됐는데, 공사장에서 출산하고 아기를 키우는 걸 상상하니 이쁜이의 안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10개월령 고양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염려되었다.
임신이란 걸 인지한 이후에는 배가 불러오는 게 확연하게 보였다. 동그랗게 불어 오르던 배는 우주선 모양으로 옆으로 넓게 불러왔다. 숨어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뒤뚱뒤뚱 걷는 걸음걸이로 출산이 임박해 옴을 예감했다.
우주선처럼 불러 있었던 이쁜이의 뱃속에는 아기 여덟이 자라나고 있었다.
가족은 버리고 가는 '물건이 아니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대한민국 민법 ‘제98조 1항’은 반려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한다.
반려동물에게 해를 끼친 경우, 동물은 물건이기에 가치에 대한 피해보상은 ‘재물손괴죄’를 적용한다.
이에 '물건'의 정의에서 ‘동물이 제외되어야 한다 ‘는 위헌법률 제청이 신청되어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