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의 이삭 줍기를 보며 오징어 게임을 생각하다.
19세기 프랑스는 빈부격차가 극에 달했던 시기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이삭 줍기’는 부농(부자 농업인)들이 농촌의 극빈층에게 베풀어주던 일종의 혜택이었다고 합니다.
부자들이 베풀어주는 이삭 줍기,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멀리 추수를 하고 있는 농민들이 보입니다. 이 당시 유럽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사는 사람이거나, 못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중간 계층은 찾아보기 힘들었죠.
못 사는 극빈층에게 추수 후 남은 이삭을 주울 수 있게 배려를 해 준 것인데,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이 그림이 슬퍼 보이지 않나요?
한국의 중산층 비율은 위와 같이 2021년 2분기 현재 58.3%까지 낮아졌다고 합니다. 부의 대물림, 교육,
권력, 학벌의 세습이 심해지고 있다는 뜻이죠.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주인공이 456번입니다. 숫자가 1부터 9까지 있죠. 오징어 게임은 총 9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마도 감독이 의도한 것이겠지만 1, 2, 3에 해당하는 부자들, 7, 8, 9에는 극빈층, 그리고 4, 5, 6에 중산층을 대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이들 중산층은 아주 취약한 계층입니다. 직장에서 문제가 발생하거나 은행 관련 문제에서도 순식간에 극빈층으로 전락할 수 있는 집단입니다.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유는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삶이 얼마나 이들에게 처절한 전쟁터와 같은지를 비유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이 발전하고, 경제가 살아나도 우리는 이렇게 취약한 시스템에서 살고 있고 항상 긴장하며 살아가겠죠.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좌절감 또한 우리가 받는 급여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 스스로 위로하면서 말이죠.
밀레의 작품 '이삭 줍는 여인들'이
이제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슬퍼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