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이렇게 치면 수많은 여행 정보가 쏟아지지만 '돌로미티' 이렇게 치면 생각보다 정보가 많이 없다. 로마, 피렌체, 베니스의 경우 여행에 대해 세세하게 기록해 둔 것들이 많았지만 '돌로미티'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완전히 계획을 철저히 세우는 과가 아니기 때문에 로마, 피렌체, 베니스의 경우도 그다음 날 일정을 전날에 세세하게 짜고 맛집을 구글맵으로 찾아보곤 했었다. 돌로미티 역시 3박을 할 숙소를 정하고 나서 3일의 코스를 대략적으로만 짜 놓고 베니스에 머물 때 트래킹 코스를 자세히 알아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정한 3일 코스는 1일 차에 트레치메 트래킹과 미수리나 호수, 2일 차에 친퀘토리와 라가 주오이, 3일 차에 세체다와 알페디시우시에 가는 것이었다.
1일 차 트레치메 트래킹을 위해 6시에 일어나서 7시에 호텔 조식을 먹었다. 3일간의 여정 중 제일 힘들다고 들었던 터라 배를 든든히 채우고 가야 했다. 일찍 서둘렀던 이유는 아우론조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올라가야 했기 때문이다. 성수기일 경우, 9시면 주차장이 만차가 되어서 다른 곳에 주차를 하고 올라가야 한다고 들었다. 다행히 우리가 갔던 6월 중순은 극성수기는 아니어서 8시쯤에도 여유롭게 아우론조 산장 주차장에 주차할 수 있었다. 아우론조 산장은 차 한대당 주차장비 30유로를 받았다. 트레치메 트래킹은 101번 코스로 가서 105번 코스로 오는 게 좋다고 들었던 터라 101번 - 105번 코스를 택했다. 스페인으로 트레스가 3을 뜻하는데 이탈리아어가 트레 역시 비슷한 뜻으로 트레치메는 봉우리가 3개였다. 소요 시간이 왕복 3시간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서 암벽등반하는 코스로 잘못 가기도 했고 트레치메가 보이는 동굴을 못 보기도 했다. 트래킹 도중 만난 한국인 어르신 말씀으론 동굴 뷰가 정말 좋다고 했다. 혹시나 101번 코스로 올라가신 분들은 정상에 가셔서 동굴을 꼭 찾아보시고 인생샷을 찍기를 바란다. 101번 코스보다 105번 코스가 조금 힘들긴 했지만 블로그 후기들이 말하는 것처럼 힘들어죽겠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오히려 한국의 속리산, 설악산 등산이 난코스에 속하면 속했지 트레치메 트래킹은 말 그대로 '트래킹'에 불과했다. 다만 돌산들의 장광을 보며 걸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감탄사를 연발할 수밖에 없다. 나는 워낙에 사진을 못 찍는 사람이라서 로마에서 베니스까지 여행하면서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는데 돌로미티에서는 나도 모르게 계속 사진을 찍고 동영상으로 남겨두었다. 위대한 자연 풍광에 압도당해서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어댔다. 트레치메 트래킹을 끝내고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을 연상케 하는 미수리나 호수 구경을 했다. 미수리나 호수는 카레짜 호수, 브라이에스 호수와 함께 돌로미티의 3대 호수라 불리는 곳이다.
미수리나 호수 구경을 하고 나니 2시쯤 되었다. 일단 숙소에 가서 쉬다가 코나드 마트에 가서 멜론과 체리 등 과일을 더 샀다. 이렇게 시간이 많이 남아돌 것이라고 예상을 못했던 나는 나머지 3대 호수 중 한 곳을 더 갈까 돌로미티의 최고봉인 파소 지아우에 갈까 하다가 후자를 택했다. 바다가 거기서 거기이듯 호수가 거기서 거기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거쳐 마침내 파소 지아우를 목전에 두었을 때 갑자기 비가 내렸다. 우리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한국에서 우비를 챙겨갔지만 그날 비가 올 것이라고 예상을 못해서 우비를 숙소에 놔두고 나왔던 상태였다. 아빠가 파소 지아우의 Gusela 북벽까지 올라가서 사진을 찍고 올 동안 엄마와 나는 차 안에서 아빠를 기다렸다. 그런데 곧 비가 그치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근처 트래킹을 하기로 했다. 30분 정도 436번 길을 트래킹 했는데 파소 지아우는 트레치메 트래킹에 비해 사람들이 거의 보이질 않았다. 걱정이 많은 엄마는 어둑어둑해지면 돌아오는 길이 무서울 수 있다며 돌아가자고 제안했다. 개인적으로 더 걷고 싶었지만 엄마 말씀이 일리가 있다고 판단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둘째 날은 친퀘토리와 라가 주오이 중 친퀘토리를 먼저 갔다가 라가 주오이로 갔다. 친퀘토리에 올라갈 때는 팔자레고 3 주차장에 친퀘토리는 팔자레고 7 주차장에 무료로 주차가 가능했다. 구글맵에서 팔자레고 3, 팔자레고 7이라고 쳐서 목적지로 지정하면 쉽게 갈 수 있으니 참고 바란다. 친퀘토리와 라가 주오이 케이블카는 인터넷으로 예매해 두었고 각각 23유로, 24유로에 예매할 수 있었다. 라가 주오이의 경우 현장구매보다 1유로가 저렴했다. 친퀘토리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다다르니 친퀘토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친퀘토리의 친퀘는 5를 의미했다. 친퀘토리는 다섯 개의 탑이란 뜻으로 실제로 암석 다섯 개가 탑 모양으로 서 있다. 친퀘토리는 Nuvolau 산장의 뷰가 예쁘다고 들었던 터라 기대가 컸다. 우리는 Averau 산장에 먼저 들렀다가 Nuvolau 산장으로 올라가는 트래킹 코스를 밟았다. 친퀘토리 트래킹은 경사가 져 있는 오르막길을 올라야 했기 때문에 트레치메 트래킹보다 더욱 힘들었다. 엄마, 아빠는 등산화를 신고 있었지만 나는 일반 운동화였기에 뾰족한 돌들을 지압하는 것처럼 느끼며 산장까지 올라갔다. 헉헉거리며 Nuvolau 산장에 도착한 후, 준비해 갔던 과일을 먹으면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친퀘토리는 전날 보았던 투박한 트레치메와는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친퀘토리 구경을 끝낸 후, 라가 주오이로 향했다. 라가 주오이 산장은 돌로미티 중 가장 풍경이 아름다운 산장이라고 불리는 곳이었기에 기대가 컸다. 개인적으로 친퀘토리보다 라가 주오이가 더 좋았다. 심지어 라가 주오이에는 포토스폿이 있어서 무료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둘 중 한 곳만 가야 한다면 라가 주오이를 추천한다. 이로써 계획했던 돌로미티 동쪽 투어를 끝내고 서쪽의 중심으로 자동차를 타고 이동했다. 5시쯤 목적지인 셀바에 도착했다. 숙소인 안타레스 레지던스에 도착한 후, 근처 마트에 들러 소고기, 와인, 멜론 등을 사서 저녁식사를 했다. 돌로미티 여행기를 보면 숙소에서 제공하는 저녁식사를 먹는 사람들도 있고 인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 가족은 조식 빼고는 마트에서 요거트, 소고기, 돼지고기, 와인, 과일 등을 사서 직접 해 먹었다. 직접 해 먹을지 레스토랑을 선택할지는 개인의 취향이니 알아서 선택하시길 바란다. 이탈리아는 소고기 가격이 매우 싸니 소고기를 사서 구워 먹거나 스테이크를 해 먹는 것도 추천드린다.
대망의 셋째 날, 세체다와 알페디시우시를 가는 날이었다. 둘째 날의 경우 케이블카를 각기 끊는 것이 나았지만 세체다, 알페디시우시의 경우 슈퍼서머카드를 구매하는 것이 이득이었다. 1일권은 56유로였다. 오르티세이에서 세체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공사 중이었기에 세체다로 가는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다행히 산타크리스타 콜라이저는 숙소와 10분 거리에 있었다. 콜라이저 오픈 시간에 맞춰 주차장에 도착했다. 산타크리스티나 콜라이저를 타고 올라간 다음, 페르 메다 리프트를 타고 세체다에 도착했다. 동쪽과 달리 서쪽은 푸르른 초원이 주를 이루었다. 생각보다 세체다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세체다 뷰 포인트를 찾느라 이곳저곳곳 걸어 다녔다. 뷰 포인트는 별 거 없으니 우리처럼 헤매지 말길 바란다. 주차장비 정산을 하느라 애를 먹었으나 행인의 도움으로 5유로를 지불했다. 7유로라는 후기를 보고 7유로를 낼 준비를 했으나 시간당 가격을 매기는 듯했다. 재빨리 정산을 하고 12시경에 알페디시우시로 향했다.
알페디시우시를 오르는 방법도 여러 가지였지만 알페디시우시를 파노라마처럼 조망할 수 있는 콤패치 파노라마 트레일을 택했다. Seiser Alm Bahn을 이동하는 데에 20분 정도 걸렸다. 하필 주차한 곳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요금이 부과되는 곳이었던 터라 다시 무료주차장에 주차를 해야 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콤패치에 도착한 후, 파노라마 리프트를 타고 알펜파노라마 호텔에 도착했다. 원래 내 계획은 에델바이스 산장까지 트래킹을 하는 것이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트래킹은 포기했다. 생각보다 케이블카 이동시간이 꽤 길었다. Seise Alm Bahn 케이블카를 15분가량 타고 콤패치에 도착하면 파노라마 리프트를 타는 곳으로 이동해야 했고 파노라마 리프트를 8분 정도 타면 알펜 파노라마 호텔에 도착했다. 실제로 그곳에서는 알프스 초원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개인적으로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 아쉬웠다. 렌터카 반납을 8시 정도로 할 걸 하는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세체다와 알페디시우시를 24시간 할애해서 본다면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처럼 촉박하게 렌터카 반납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세체다와 알페디시우시 구경시간 안배를 적절하게 하길 바란다.
덧, 처음 돌로미티에 도착했을 때는 자연의 풍광에 압도되어 일주일 정도 있고 싶다고 생각했으나 적당히 아쉬움을 남기는 3박 4일이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괜찮은 선택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위스 알프스와는 사뭇 다른 거친 돌산의 알프스를 경험할 수 있으니 이탈리아의 알프스, 돌로미티 여행은 정말 강력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