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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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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 Sep 26. 2021

아들만 있는 게 어때서

들들이엄마의 속마음

아이고 어떻게 하려 그래? 어쩌다 아들만 둘을 낳았어?

지나가는 어느 아저씨의 말이었는데 지금 곱씹어도 황당하다. 둘째 아들이 태어난 이후로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많이 들었던 터라 그날도 굳이 답을 하지 않고 지나갔다. 어떤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아들 둘을 어떻게 잘 키울 것인지 앞으로의 계획을 말했어야 했나. 어쩌다 두 번 출산의 결과가 모두 아들이었는지 남편의 정자를 분석해 본다고 했어야 했을까. 


난 딸딸아들 삼 남매의 장녀로 살았다. 우리 셋이 다니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그래도 성공하셨네'였다. 장남과 장손이 최고였던 할머니는 둘째를 예뻐하는 이유가 '남동생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나마 주변 아랑곳하지 않고 똑같이 사랑을 주신 부모님 덕분에 할 말 다 하며 자랐지만 여전히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말들이다. 성인이 될 때까지 딸이라는 이유로 실패작이 될 뻔했는데 이젠 아들 둘 낳았다고 실패한 인생이라니. 참나. 세상 억울하다.


이제와 말이지만 난 아들만 키우는 것이 좋다. 남편은 보기만 해도 든든하지 않냐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런 느낌은 아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씻기고 입혀야 하는 건 딸 아들 상관이 없는데 딱히 어느 부분에서 든든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아들만 키워 좋은 점은 대부분 심적인 부분이다. 


먼저 주양육자가 엄마인 경우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육아의 양이 자연스럽게 아빠와 분산된다. 아이는 꽤 오랜 시간 엄마에 집착하는데 자랄수록 성별이 같은 아빠와 묶일 일이 많아진다. 화장실, 탈의실, 목욕탕 등 남자들만의 공간에서 엄마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요즘은 아이들 주변에서 성인 남자가 점점 더 사라지고 있어 올바른 '남성'의 본보기가 되기 위해 아빠는 부지런히 노력한다. 야근하고 들어와도 10분은 놀아 주고 주말 아침을 담당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만 데리고 산책을 한다. 남자들만의 시간은 아들에게 아주 좋은 교육이 되고 나에겐 자유시간이 된다.  


딸은 꾸미는 재미가 있다는 데 사실 나 꾸미는 것도 지친다. 탈코르셋을 외치려다가도 평생 신경 써온 타인의 시선을 여전히 외면할 수 없다. 내가 하고 있는 지금 이 분칠이 나를 위한 것인지 남을 위한 것인지 고민하면서도 멈출 자신이 없어 괴롭다. 이런 내게 아들은 예쁘게 입혀야 한다는 강박에서 조금 자유롭다. 실제로 우리 아들은 무슨 날이 아니고서야 불편한 옷을 절대 입어 주지 않는다.(중요한 날이라고 설명하면 참고 입어 준다) 예쁜 옷들은 대부분 불편하지 않은가. 


엄마는 딸이 있어한다는 전형적인 말도 크게 동감하지 않는다. 성인이 돼서는 딸이 더 살갑다는 말엔 백번 동감하지만 지금 생각으론 그게 아쉬울 것 같지가 않다. 우리 부모님 세대까지는 자식만 보고 사신 분들이 많지만 우린 다르다. 난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자신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한다. 내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늘 관찰하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끊임없이 생각한다. 난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서 죽을 때까지 심심하지 않을 자신 있다. 결혼하면 가정에 올인하며 주변 관계가 다 끊키는 시대도 아니다. 결혼 유무와 상관없이 연락하며 지내는 친구들이 있고, 생각보다 마음을 나눌 여성 연대가 많다.   


무엇보다 아들만 있어 마음 편한 이유는 '여성'에 대한 고민을 더 길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난 아직까지도 '여성'이라는 것에 대해 번민한다. 그나마 나이가 들면서 점점 사그라들고 있다. 딸이 있다면 아마 딸의 인생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고민이 딸에게 이전되어 늙은 여자인 나와 젊은 여자인 딸의 인생을 함께 살았을 것 같다. 남자로 살아본 적이 없기에 남자로 사는 고충은 남편에게 미루며 아들들의 삶을 그저 응원하고 또 응원한다.  


들들이 엄마라 이렇게 좋은데 아들에 대한 편견은 조금 속상하다. 아들이라는 이유로 엄마가 힘들 것 같다고 말하면 애 키우는 건 다 힘들죠라고 대답한다. 둘째도 아들이냐며 아연실색하는 아래층 할머니에게 순간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딸이 었으면 좀 나았을까 싶다. 자신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이에게 쿵쿵거리면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하는 건 성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들만 둘이라 엄마가 많이 힘들겠네'라는 말을 듣고 온 날 첫째가 자기 전 작은 목소리로 '동생이 여자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말을 했다. 난 아주 힘차게 '엄마는 너희가 둘 다 아들이라 너무 좋아'라고 말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다음엔 '엄만 성별 상관없이 언제나 너희를 사랑해'라고 말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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