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과 시작의 경계에서
늘 마음속의 긴 이야기를 할 때에는 어떤 공간을 사용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었는데, 즐겨보던 브런치를 떠올리게 되었어요. 다른 SNS로는 전할 수 없는 길고 긴 이야기들을 하고플때, 또 작디작은 마음속의 말들을 하고 싶을 때는 이 공간을 찾아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이렇게 가끔씩 잊혀져 갈 때 즈음에 이야기 나누러 올게요. 뭔가 무거운 말로 시작해서 엄청난 것을 얘기해야만 할 것 같은데, 내용은 전혀 무겁지 않으니 그저 가볍게 읽어 내려가 주세요.
처음 고민을 시작하고 나서 지금까지, 돌이켜보니 약 6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렀네요. 그만큼 수많은 선택의 연속과 과정이었고, 이제야 조금은 결론에. 아니 어쩌면 다시 시작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오래도록 사용했던 이름을 내려놓는 과정은요. 남들에게는 쉬워 보일 수 있지만 저에게는 참 어렵고 발이 떨어지지 않는 일이었어요. 오래된 친구와 작별하는 기분이라면 조금 가까운 표현일까요. 나의 선택이면서도 섭섭한 마음의 정체를 알 수가 없어, 요즘 이래저래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어렵지만 이 기점이 오히려 잠시 쉬어가는 것뿐이라고. 그렇게 조금은 무게를 덜고 나서야 저는 후련해지기로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저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마 스무 살이 막 넘었을 무렵, 진짜 나에 대해서 탐구해가던 시절. 펜을 잡고 공부를 한 시간만큼이나 오랜 시간 물감과 함께 살다시피 했던 저에게 '색'이란 굉장히 큰 의미가 있었어요. 당연히 예민하고, 민감할 수밖에 없었죠. 그건 나의 능력의 여부와 상관없이 그냥 당연한 것이었어요. 물건을 하나 고를 때도, 옷을 하나 살 때도, 머리색을 한번 바꿀 때도. 당연히 예민하고, 당연히 민감한 것. 그게 '색'과 저의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게 중에서 늘 아무 조건 없이 포용했던 색이 하나 있어요. 그게 바로 brown이었는데요. 이 깊고 오묘한 브라운을 보고 있다 보면 단순히 좋아하는 색을 넘어선, 어쩌면 나라는 사람을 색으로 표현해야 한다면 이 색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마음이 가곤 했어요. 그러니까, 아마 스무 살이 막 넘었을 무렵. 진짜 나에 대해서 탐구해가던 시절. 이 보물 같은 색에 흠뻑 빠져 브라운과 또 그 근처의 모든 따뜻한 색들을 찾아다니곤 했어요. 그렇게 7년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이 색은 저의 정체성과 같은 색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이름은 그렇게 탄생되었어요. 영어 이름인 'zoey'와 정체성과 같은 색 'brown'의 합성어.
사실 결정하기 직전까지 이 두 가지 단어의 순서를 두고 고민했어요. 어감이나 단어가 주는 느낌 등을 고려하다 보니 쉽게 결정 나지 않았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다가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더 좋은지 의견을 물어봤고 그들의 종합적인 선택을 모아 이 이름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정하고 보니 brown이라는 단어는 외국에서는 성으로 쓰이기도 해서 새로운 이름 같기도 했고, 느낌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zoeybrown>은 zoeyyoo의 'Archive(아카이브)'입니다.
아카이브라 함은, '기록 보관소'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저라는 사람은 무언가를 기록해서 남기는 방식으로 삶을 저장하는 사람이기에 저의 모든 기록들을 저장하는 저장소라는 개념을 부여했어요. 어쩌면 그동안 그림을 그려왔던 것도, 끊임없이 글을 써 왔던 것도 '기록'해야만 하는 저라는 사람의 한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또한 '기록'이라는 카테고리가 어느 한 분야만이 아닌 그림, 글, 영상, 사진 등 정말 많은 분야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앞으로 무언가를 하는데에 있어 제약이나 테두리가 없이 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멜랑스코그(MellanSkog)>가 저의 10대를 담은 브랜드라면, <조이브라운(zoeybrown)>은 저의 20대를 닮은 카테고리가 될 것 같아요. 그렇기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색과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모든 작업을 진행하고 그 결과물 역시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제품이 될지, 사진이 될지, 영상이 될지, 책이 될지 아직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기록을 위한, 또 기록에 관한 결과물들이 될 것입니다. (물론 멜랑스코그도 계속해서 이어나갑니다. 다만, <zoeybrown>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포함될 뿐이에요.)
지금도 저는 저를 알아가고 있어요.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떤 때에 기쁜지, 슬픈지. 무엇이 내게 힘을 주는지. 무엇이 나를 절망시키는지. 절망했을 때에 나를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내가 나를 알아가는 것은, 내가 아닌 그 누구도 할 수 없고, 도와줄 수도 없는데. 내가 나를 잘 안다고 착각 아닌 착각을 하며 방치해두고 있었던 지난날들을 또렷이 기억해요. 그렇기에 지금 나의 길이 어디로 갈지, 내 인생이 어디로 갈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올바른 길 위에 있다는 것 하나를 이정표 삼아 나를 알아가는 시간들을 아까워 않고 끊임없이 나와 대화하며 걸어 나가려 합니다.
새로운 이름으로, 또 새로운 세계에서 오래오래 만나고, 이야기하고, 소통해요. 우리.
좋은 밤 보내세요.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