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언제타고 안 탄 건지, 기억은 불확실할 수 밖에 없지만 버스를 안 타게 된 기간동안 내구연한이 6년인 전동휠체어를 세대째 갈아탔으니 10년은 확실히 넘겼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장 첫 전동휠체어 때는 저상버스를 타려고 노력을 잠시 했었지만, 그래도 그 기간이 1년은 넘지 않았을 걸 고려해도 말이죠.
버스를 안 탔던 이유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버스를 타더라도 지하철과 다르게 버스를 탈 때, 문제가 가장 많이 발생하고 가장 위험하며 시간마저 촉박하다는 점이 가장 컸고, 그 외로도 막상 타고 난 후에 차량의 운행 상황에 따라 휠체어가 넘어지거나 해서 위험한 상황이 자주 발생할 수 있다는 점과 주변 승객들에게 버스를 타는 전 과정에 있어 지속적으로 피해를 줄 수 밖에 없다는 점 등이 있었습니다.
물론 무엇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담당 주치의 선생님의 권유로 인해 전동휠체어로 탈것을 바꿨기 때문입니다. 여차하면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쉽게 휠체어를 들어 이동시킬 수 있는 수동 휠체어에 비해 100~300kg 정도의 무게를 가지고 있는 전동휠체어는 들어서 이동시킨다는 선택지를 애초에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억이 정확할지는 모르겠으나 마침 내가 막 전동휠체어를 타기 시작했을 무렵이 저상버스도 유의미한 숫자로 국내보급이 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전동휠체어를 타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저상버스를 타보려는 노력을 꽤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엔 저상버스를 운행하는 기사님들도 해당 버스의 설비와 운행에 대한 노하우가 없어서 한없이 서툴렀고(가끔은 휠체어의 승차를 거부하는 기사님들도 있으셨음), 저상버스 자체의 설비도 오류가 많아 고장나거나 제대로 보도블럭과 버스 사이를 연결하지 못하거나 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같이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 일반 승객분들도 시간을 꽤 잡아먹는 휠체어의 승하차에 그다지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10여년 전의 어느 시점에서 버스 타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꽤나 지쳤었거든요.
그리고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그동안 나는 지하철 위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가끔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없는 장소를 이동해야 할 경우나 지하철을 이용할 수 없는 시간대에 이동해야 할 경우엔 장애인 택시를 이용하면서 나름 발발거리며 잘 돌아다니는 삶을 살았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 버스를 타는 일은 없었지만요.
그러다 얼마전 ‘바퀴가 있는 삶 ep. 17’의 글을 쓰다가 문득, 10여년 넘게 버스를 타본 적도 없는 위인이 버스에 대한 이야기를 과거의 경험만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한 거북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마감에 쫓기고 있던 터라 당장 버스를 타보고 글을 보충하자는 생각은 일단 뒷편에 미뤄둔 채, 해당글을 마무리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10여년만에 버스를 타보기로 했습니다.
평생 할 일 없을 줄 알았던 버스노선도를 검색하고, 버스 정류장을 검색하고, 기타 정보들을 알아 본 후, 꽤 떨리는(설렘보단 겁먹은에 가까운 감정으로) 마음으로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저 멀리서 버스가 다가옵니다. 두근두근.
어라? 그런데 버스 앞을 한 승용차가 가로막더니 버스 정류장 앞에 세워두고 사람 한 명을 내립니다?? 그리고 내가 타야했던 저상버스는 정류장에 정차하지 못하고 한참 뒷편에 잠시 정차했다가 떠나버리고 맙니다. 응???
그렇게 10여년 만에 다시 타보기로 했던 첫버스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왠지 불길하고 일진이 사나울 거 같으며, 과거 버스에 대한 트라우마들이 고개를 들이밀며, 할만큼 했으니 돌아가자. 버스는 여전히 포기야. 라고 말하는 듯
하지만 애초에 이렇게 된 이유가 버스 때문도 아니니 한 번 더 기다리기로 합니다.
그리고 저상 버스가 아닌 버스 몇대를 그냥 지나쳐 보냅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저 멀리서 다시 내가 타야할 저상버스가 들어오는 것이 보입니다.
버스는 자연스럽게 내 앞에 섭니다. 그리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리프트를 내려 저상버스와 정류장이 있는 보도블럭을 연결합니다.
어라 너무 스무스한데? 라는 기분으로 자연스럽게 버스에 오릅니다. 기사님은 친절하게 휠체어석 부분의 의자들을 접어 휠체어를 세울 공간을 확보해주시고 함께 탄 일반 승객분들도 전혀 반발없이 오히려 잘 탔냐? 불편하지 않냐? 어딜가냐? 물어보십니다.
어……?
순간 나의 세상이 조금 더 넓어졌습니다. 그동안 나의 세상엔 버스라는 대중교통수단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익숙하진 않아도 필요할 때 고려하게 될 거 같습니다. 저상버스라는 교통수단을 말이죠. 그리고 저상버스가 운행하는 노선만큼 내가 갈 수 있는 나의 세상도 확장될 거라는 기분이 듭니다.
그렇게 행복한 기분으로 10여년만의 버스체험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이 글을 적으며 다시 한 번 저상버스에 대한 이슈나 기사들을 검색해봤습니다.
… 아직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어쩌면 그날 저상버스를 탄 나의 운이 꽤나 좋았던 편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날의 경험 덕에 나라는 사람은 다시 버스를 이용해볼 용기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내 세상이 그렇게 조금씩 넓어지고, 나의 경험이나 경험담으로 인해 주변의 세상이 조금씩 넓어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모여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휠체어나 유아차가 많아지고, 늘어난 이용량만큼 저상버스가 늘어나고 저상버스에 대한 호의적인 인식도 늘어나길 바라봅니다.
그래서 마침내 버스를 타는 것이 더 이상은 떨리는 일이 아닌, 그저 일상인 넓은 세상에서 좋은 날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코알라 한 마리를 꿈꿔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