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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았다곰 Jan 02. 2023

우리가 중고가게에 가야 할 이유

2022. 우수환경도서 독후감 공모대회

 나와 아내는 욕심이 많지 않은 편이다. 누구를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지인들로부터 잇속을 좀 챙기라는 말을 종종 듣기도 하고, 남들 하나씩 품는다는 명품 브랜드 중 하나를 ‘채널’로 읽을 정도로 관심이 없다.  하지만 이러한 유사(類似) 청빈의 삶은 이사할 때마다 모조리 거짓이 된다. 이 많은 짐을 도대체 어디에 쌓아두고 살았나. 어느 성인(聖人)의 말처럼 탐욕을 위해선 부족하다더니, 고작 세 식구에게 이렇게까지 많은 물건들이 필요했을까. 

 무릇 죄짓고는 못 사는 법. 탐욕의 죄책감을 중고물품 온라인 거래 앱으로 회개한다. 원형의 형태가 어땠는지 의문인 아기용품부터 책꽂이에서 오매불망 주인의 손길만 기다리던 헌 책, 부풀어 오른 몸에 맞지 않아 원망스러운 옷, 그리고 언제 샀는지 모를 온갖 잡동사니까지. 어색하지만 처음 보는 누군가에게 내 세간살이를 넘겨주면 말끔해진 집안 곳곳부터 마음까지 가벼워진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 책을 골랐다. 유럽 여행을 한 번이라도 다녀온 사람이라면 ‘플리마켓’에 한 번은 들렀던 경험이 있으리라. 그중에서도 핀란드는 중고물품 거래가 가장 활발한 나라라고 한다. 작가의 질문을 나 역시 반복해 본다. ‘핀란드 사람들은 왜 중고가게에 갈까?’


 작가는 그 이유를 여러 방면에서 설명한다. 국토의 대부분이 척박하고 추운 기후에 속하며, 스웨덴과 러시아라는 강대국 사이에 낀 국가라는 지리적 배경과 국민 대다수가 루터교 신도라는 점은 핀란드 사람들이 어떤 성향의 사람들인지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모더니즘 사조의 유행과 유럽 특유의 개인주의는 스스럼없이 중고물품을 대하는 핀란드 사람들의 태도를 형성했다. 덧붙여 노르딕 모델의 경제체제를 통한 중산층 확대는 보다 실용적이며 효용이 높은 제품을 생산 및 소비할 수 있도록 부추겼다. 특히 최근 유럽이 지향하는 친환경 에너지 정책과 소비문화는 그들의 중고가게에 대한 애정에 윤리적 당위성까지 더해주었다.


 그러나 내게는 그러한 거시적 관점의 설명보다는 작가가 숨바꼭질처럼 책 곳곳에 숨겨놓은 미시적 관점의 해석이 더 마음에 와닿았다.

 우리에게도 아픈 과거였던 IMF사태처럼 핀란드에게도 1990년대 경제대공황이 있었는데, 당시 경제적 형편상 어쩔 수 없이 중고가게를 찾았던 어른들의 손을 잡고 함께 방문했던 젊은 세대가 지금의 중고 열풍을 잇고 있다는 것이다. 어른들에게는 뼈아프고 쓰린 과거였을지 몰라도 철없는 자녀 세대는 당시의 기억을 따뜻하게 추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생전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볼 일이 있을까 싶은 거대한 빙하가 녹는다거나, 인기 드라마의 주인공이 틈만 나면 읊어대던 고래의 멸종 위기 같은 환경 보호의 거대 담론은, 작가의 말처럼, 우리에게 너무 먼 이야기이다. 그래서 선뜻 와닿지 않는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자연을 아니 스스로를 함부로 착취하면 어떤 결과가 펼쳐질지 막연히 알고 있지만 당장의 편리가 너무 달콤하다.

 그에 비해 핀란드인들은 거창한 환경보호, 친환경 따위의 사명감이나 동식물에 대한 동정심 외에도 옛것에 대한 향수 그리고 그에 담긴 추억의 시간과 감정 등으로 중고 가게를 찾는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다를 바 없다. 어화둥둥 내 새끼가 무엇을 그렸는지 퀴즈로 맞춰야 할 법한, 속된 말로, ‘예쁜 쓰레기’인 그림 한 장도 버리지 못해 냉장고에 그리고 다시 서랍과 창고로 고이 간직하지 않나.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어느 노시인의 글처럼, 세상 쓸데없어 보이는 젖먹이 그림 한 장에도 그들만의 애환과 영겁과 같은 시간이 담겨 있어 버리기 어렵다.

 비단 그림뿐이랴. 구성원만이 이해하고 공유하는 서사가 덕지덕지 묻은 살림살이를 허망하게 버리지 않고, 나보다 더 나은 주인을 찾았을 때의 설렘과 때로는 내가 행운아가 되었을 때의 희열에 주목하는 작가의 생각에 나 역시 전적으로 공감한다.

 덤으로 앞서 언급했던 친환경 지킴이로서의 자긍심과 저렴한 가격에 필요한 물건을 구입해서 얻는 효용감, 때로는 지인들과의 정겨운 쇼핑을 통한 스트레스 해소까지 획득한다면 누이에 매부뿐만 아니라 사돈에 팔촌까지 좋을 일 아닌가.     

 그렇게 힘을 북돋아 환경 보호 전선에 뛰어들며 끝내면 좋겠지만 핀란드의 중고 시장, 아니 대부분의 중고 물품과 가게의 흥행에 불편한 사실들이 존재한다. 우선 중고 물품을 찾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 나라의 경제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는 점 외에도 역설적으로, 중고 거래의 활성화는 그만큼 새로운 상품들이 생산 및 소비를 뜻한다는 점이다. 핀란드 역시 1990년대 중고가게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보다 삼십 년이 지난 지금 훨씬 많은 중고 물품이 기부 또는 판매되고 있다. 작가가 면담한 여러 디자이너의 고뇌처럼 Fast Fashion의 풍조는 사람들의 끝없는 욕망의 빈틈을 파고들어 보다 가볍게 소유하고, 다양한 소비를 부추긴다.

 거기에, 앞서 언급했던 ‘중고거래’를 통한 환경보호의 대의는 오히려 깃털처럼 가벼운 소유와 소비의 그럴싸한 핑곗거리가 되어 버린다.     

 그런 점에서, 중고거래가 순환경제의 장(場)이라는 작가의 주장은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 상품은 끝없이 순환하지 못하고 언젠가는 폐기해야 한다. 눈물겨운 서사가 담겨 있든, 희소가치가 높아 유리병에 보관하든지 상관없이 결국 버려져야 한다면, 순환하는 동그라미 모양이 아니라 ‘달팽이모양’의 선형경제가 맞다. 심지어 어제와 오늘의 욕망 사이의 간극이 없다면 그냥 ‘달팽이모양’이 아니라 ‘겹달팽이모양’의 선형경제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작가가 지적하는 역설, 즉 새로운 상품을 무분별하게 생산하고 소비해도 ‘중고거래’로 내놓을 상품이니 괜찮다는 논리적 정당성과 악순환을 충분히 지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들숨 날숨 마냥 한 번 입었던 옷을 거대한 쓰레기 더미의 일부로 만들어 버리는,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보다야 훌륭하다는 데 이견은 없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책을 쓰면서 핀란드를 절대선이나 교과서처럼 다루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데,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이다. 우리는 그들만큼 서로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이다. 핀란드 사람들이 중고가게에 가는 종교적, 역사적, 지리적 및 사상적 이유가 우리와 사맛디 아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가 주목했던 헌 물건에 담긴 서사와 희열, 설렘 등의 감정은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통하는 바가 있으니 이역만리 핀란드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 다양한 중고가게의 활성화 말고도 중고가게를 통한 고용 창출, 취약계층 지원 및 친환경 정책에 일조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심어줄 수도 있다. 더불어 작가의 일갈처럼 2천 리터를 소모한 옷, 제작 과정에서 병들고 죽어가는 많은 이웃들이 있다는 불편한 진실에 핀란드인처럼 똑바로 마주 서야 한다.


  당장 학교의 분실물 보관함을 열어봐야겠다. 중고가게를 거닐며 혹시 마주칠지 모를 설렘과 희열을 기대하는 핀란드인처럼. 그리고 집안 곳곳 잠자고 있는 우리 가족의 추억도 소환해야겠다. 다음 주인의 이야기가 덧칠해져 더욱 완벽해지는 서사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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