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았다곰 Aug 07. 2023

[영화]리바운드

영화는 현실을 뛰어넘을 수 없다.

이들 때문에 신촌에 무척 가고 싶었더랬다.

90년대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농구였다. 말이 필요 없는 만화 '슬램덩크'를 위시하여 OST까지 화제였던 드라마 '마지막 승부', 허접한 화질의 AFKN을 통해서야 겨우 접할 수 있었던 NBA, 농구대잔치의 연세대 농구부 우승까지. 손대면 데일 정도로 끓는 청춘들이 마땅히 에너지를 쏟아부을 데를 찾지 못했던 그 시절에 유일하게 허락됐던 마약(?)은 농구뿐이었다. 정정하겠다. 추억은 참으로 간사하기 이를 데 없어서 이렇게 기억을 왜곡한다. 허락됐던 건 아니다. 운동마저도 공부할 시간 뺏긴다고 많이도 혼났다.


실내코트에서 농구공 튀기는 소리를 한번 들어보는 게 소원이었던 청춘들이었지만, 흙바닥이면 무슨 상관이랴. 간혹 돌출된 돌멩이에 농구공이 갈 데를 잃어버려도, 비가 오면 곳곳에 고인 물웅덩이를 삽으로, 헌옷으로 제거하느라 한나절이더라도, 골대에 그물망이 없어 간혹 골이 들어갔는지 아닌지 헷갈려도 상관 없었다. 혼자면 혼자 연습하고, 둘이면 1on1, 셋이면 소위 '88올림픽'이라는 슛게임으로, 사람이 많으면 많은 대로 온 코트를 누비며 아침부터 새벽까지 농구를 즐겼다.


그런 내게, 농구 소재의 즐길거리는 신발장 한켠의 초컬릿처럼 꺼내먹는 '슬램덩크' 전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장항준 감독의 '리바운드'는 포스터부터 매력적인 영화가 아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니까 캐릭터와 전체 줄거리는 적당히 각색했을 거고, 코메디 한 스푼, 감동 두 스푼 정도 뿌려준 데다가 감독의 유명세로 버무려 주는 정도라고, 혼자 영화를 찍었다. 딱히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평이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배꼽을 잡는정도는 아니더라도 한쪽 입꼬리를 올라가게 하는 수준의 코메디와 등장인물들 간 적당한 수준의 갈등과 갈등을 봉합하는 수순. 깨알같이 등장하는 까메오들의 맛깔스런 연기와 꽤 수준 높은 농구 실력을 보여주는 젊은 배우들의 연기가 적당히 대조되며 줄거리가 흘러간다. 옛날 생각이 많이 나면서 코를 훌쩍 거리기도 했고, '저 친구 손목을 잘 쓰네!'라며 건방진 훈수도 하고, 안재홍보다는 다른 감독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기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결국 마지막에는, 감동의 도가니를 위해 스포츠 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온갖 클리셰들을 투하하며 끝을 맺는다.


'시간 잘 때웠네.' '영화관 가지 않고 봐서 다행이네.' '저렇게 농구할 때가 좋았지...' '두 번 볼 영화는 아니네.'라는 푸념을 늘어놓으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감상의 마무리 절차인 '어디까지가 실화인가?'를 실천하기 위해 검색을 시작했다.


검색 후,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정독해야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볼 수 있게 글을 써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어린 시절의 뜨거운 열정과 우정이 목마르거나, 가끔은 그때의 감성에 젖어 허우적 거리고 싶은 아재들. 어이없거나 잦은 실패로 의기소침하고 자존감이 지하수를 찾을 만큼 파고들어간 청춘들. 이 길이 맞을까 혹시 내 선택이 틀린 건 아닐까 고민하며 첫 발조차 떼지 못하는 I형 인간들까지.


물론 이런 류의, 꿈과 희망을 주는 영화들 대부분은 볼 때는 힘이 나고 보람차긴 한데, 끝맛이 영 개운치 못할 때가 많다. 영화의 인물들이 지나치게 위대하고 그 결과가 사회와 국가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업적에 가까워서, 나같은 소시민들이 본받기에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결과 자체만 놓고 보면 기적 말고는 설명이 안된다는 점에서 '리바운드' 역시 유사하나, 등장인물들에서 다소 차이가 난다. 흔히 볼 수 있는 청춘. 자주 실패하고, 넘어지고, 태어날 때부터 누려야 할 몫보다 감당해야 할 짐이 더 많은, 심지어 뾰족한 재능조차 없는 청춘들. 그래서 더 공감이 됐는지도 모른다. 나도 그런 사람이고, 우리 모두는 대부분 그런 인생들이니까. 그런 사람들이라면, 그런 상황이라면, 지나치게 기대하지 않고 가볍게 보기 좋은 영화라 생각하고 찾아보길 바란다.


혹시 이 글이 동기가 되어 영화를 보게 된다면, 한 가지를 염두해 두고 보면 좋겠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진부한 설정들과 요소들이 어디까지 실화일까 생각하면서 볼 것.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 어디까지 실화인지 검색하면 훨씬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내가 왜 이 영화를 다시 봐야 했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리바운드: 놓친 공을 찾아오기 위한 노력

그래서 더 이상의 기회는 없을 거라고 무릎 꿇은 어떤 이에게 '리바운드'라는 응원의 메시지가 전달되길 바란다. 물론 주인 없는 공을 되찾기 위해 점프해야겠지만. 그러면 어떤가. 또 뛰어오르면 된다. 아직 공은 내 머리 위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작가의 이전글 [영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